안양-창원 구단 장내 아나운서 맡아청소년대표 출신에 하나은행 등 감독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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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구대잔치에서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던 고인. 041207 ⓒ연합뉴스
한국 농구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한 염철호씨가 별세했다. 향년 90세.유족은 22일 14시5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염철호씨는 1980년대 '점보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농구대잔치가 시작됐을 때부터 마이크를 잡아 한국 농구 최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안양 SBS 스타즈(현 안양 정관장 레드부스터스), 창원 LG 세이커스 등 구단의 홈경기 장내 아나운서를 맡았고, 1999년 남북통일농구대회에서도 사회를 맡았다.1935년 1월15일 함흥에서 태어나 월남한 고인은 서울사대부중에 다닐 때 외국인 선교사에게서 배운 농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성동고, 중앙대에서 선수로 뛰었고 1950년대 말에는 청소년대표로 뽑힌 적도 있다.이화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1968년 농구부 창단 감독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서울은행(현 부천 하나은행), 전매청 농구부 창단 감독으로 활용했다. 신용보증기금 감독도 맡았다.'농구 대통령(허재)', '람보 슛터(문경은)' 등 선수들 별명도 고인이 지었다. 전희철은 '한국 농구의 자존심'이라고 표현했고, 허재가 뛰어난 플레이를 펼칠 때면 "허재뿐이(허재 밖에) 할 수 없는 농구"라고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다.인기가 높아지며 사인을 받으려는 팬까지 생길 정도였다고 아들 염제인씨는 회상했다. 인기에다 기자들과의 친분까지 겹친 덕에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8년까지 요청이 있으면 간간이 장내 아나운서로 등장했고, 제2의 고향인 대전에서 농구 꿈나무를 지도하기도 했다.2008년 9월 부인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2009년 뇌경색을 일으킨 뒤로는 농구장에 돌아가지 못했다.아들 염씨는 "대전에 살면서도 열차를 타고 서울로 매일 오갈 정도로 농구를 워낙 좋아하시는 분이셨다"며 "여러 별명 중에서도 '농구 할배'라는 말을 그렇게도 좋아하셨다"고 말했다.유족은 1남2녀(염제인·염정민·염은민)와 사위 김광욱·박종선씨 등이 있다. 빈소는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 24일 오전 7시20분이며 장지는 대전추모공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