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기본설계 완료 후 KDDX 지지부진HD현대-한화오션 간 이전투구 대립만 지속탄핵 정국, 조기 대선 가능성에 결정 미룬다는 비판도양사, 기약 없이 기다려야 … 해외 수주활동에도 영향
  • ▲ HD현대중공업이 공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 기본설계 모습. ⓒHD현대중공업
    ▲ HD현대중공업이 공개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 기본설계 모습. ⓒHD현대중공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정세가 혼란스럽습니다. 게다가 북한 이슈는 항상 국가안보 과제이구요. 이런 상황일수록 적기에 군(軍)의 핵심 전력이 보강돼야 하는데,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계속 지체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방산업계 관계자가 KDDX 선정 과정을 두고 토로한 말이다. KDDX는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구축함 사업이다. 총 6척을 건조하게 되며, 총 사업비는 7조8000억원에 달한다.  

    KDDX 선도함은 오는 2030년 10월 실전 배치가 목표이며, 이를 위해서는 2029년까지 함정이 인도돼야 한다. 하지만 HD현대와 한화오션 간 끝없는 대립, 여기에 방위사업청의 우유부단함이 겹치면서 당초 계획보다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방사청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이달 27일 열리는 사업분과위원회(분과위)에서 KDDX 사업 방식을 논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방사청이 이날 분과위를 열어 사업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내달 2일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또다시 미뤄진 것이다. 

    KDDX는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한화오션이 지난 2012년 개념설계를 수주하면서 승기를 잡았지만 HD현대가 2020년 기본설계를 따내며 반격했다. 

    KDDX 기본설계는 2023년 12월 완료됐지만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착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HD현대와 한화오션은 소모적인 대립을 계속하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보이고 있다. 
  • ▲ 한화오션이 지난해 3월, HD현대 군사기밀 유출 혐의와 관련해 설명회를 가졌다. ⓒ뉴데일리DB
    ▲ 한화오션이 지난해 3월, HD현대 군사기밀 유출 혐의와 관련해 설명회를 가졌다. ⓒ뉴데일리DB
    2023년 11월 HD현대 직원 9명이 KDDX 관련 군사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3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HD현대 직원 외에도 임원이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HD현대는 한화오션을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맞대응했다. 

    최근에는 2020년 KDDX 기본설계 제안서 제출 당시 한화오션이 ‘개념설계 보고서’ 무단 활용 의혹이 제기됐고, 해당 사안을 ‘문제없음’으로 종결한 해군 고위 간부가 3년 후 한화오션에 임원으로 입사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방사청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을 두고 ▲수의계약 ▲경쟁입찰 ▲양사 공동개발 등 3가지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HD현대는 기존 관례대로 기본설계를 수주한 업체가 상세설계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 직원들이 과거 군사기밀 유출 전력을 감안해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사가 워낙 치열하게 대립하면서 방사청이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다만 방사청이 ‘최선의 선택’을 위해 장고(長考) 하는 게 아니라 부담을 지기 싫어 결정을 미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이후 지속되고 있는 탄핵 정국, 조기 대통령선거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방사청이 KDDX 사업방식 결정을 차기 정부로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2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이같은 시나리오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 ▲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뉴시스
    ▲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뉴시스
    방사청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업계 간 상생협력 방안을 추가로 보완해 분과위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산업계에서는 HD현대와 한화오션의 갈등 구도를 보면 상생 방안 도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우선 사업규모가 7조8000억원으로 8조원에 육박한다. 

    게다가 KDDX 사업은 정기선 HD현대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라는 재계 뉴리더 간 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승자는 그룹 승계를 위한 경영능력을 입증할 수 있지만 패자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를 감안해 미봉책으로 양사 공동개발 카드가 거론된다. 다만 업계에 따르면 ‘칼로 두부 자르듯’ 영역을 나누는 것도 쉽지 않으며, 향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다. 누가 더 많은 영역을 맡았는지에 대해 또 다른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HD현대, 한화오션 모두 K-방산 신화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방사청의 결정장애로 인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해외 수주 활동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방사청은 원칙대로 KDDX 사업 방식을 결정해 더 이상의 실기(失期)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