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사실상 권한 있다면 남용한 불법행위는 처벌해야"1심, 대법원장에 직권 없어 … 남용죄 성립 불가 판단
  •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20년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데일리DB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20년 6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데일리DB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항소심이 시작된다. 1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하지 않았다고 보고 관련된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등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검찰은 "법상 권한이 없더라도 사실상 권한이 있다면 이를 남용한 불법행위는 처벌해야 한다"며 직권 남용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어 2심 재판 과정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4-1부(부장판사 박혜선·오영상·임종효)는 오는 11일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연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재임 시절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47개 혐의로 2019년 2월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2심서 '직권남용 유죄' 주장할 듯

    검찰은 대법원장이 재판에 관한 일반적 권한을 갖고 있어 '월권적 남용' 또한 직권 남용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지난 2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에 대해 "(법원의) 직권남용 해석에 이의가 있다"며 항소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재판의 독립, 일반적 직권남용과 권한 유월형 직권남용(원래 있는 직권의 한도를 넘어선 남용 행위)의 법리에 관해 1심 법원과 견해차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법상 권한이 없더라도 사실상 권한이 있다면 이를 남용한 불법행위는 처벌해야 한다"며 "직권의 '월권적 남용'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은 일선 법관에 대한 ▲인사·감찰권 ▲사법 지원 권한 ▲재판 사무에 대한 직무 감독으로 주의·촉구를 하는 권한을 갖고 있어 '재판에 관한 일반적 권한'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이 이 권한을 남용해 일선 법관의 재판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검찰 측은 이를 바탕으로 항소심에서 1심이 무죄로 판단한 직권남용 혐의가 유죄라는 것을 밝혀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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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 '월권적 직권남용' 인정한 바 있어

    실제로 검찰의 '월권적 남용' 논리가 받아들여져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 한 판례도 있다. 

    앞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021년 3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직권 남용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관련성이 인정되는 직권의 '월권적 남용'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의 여러 사안을 보면 직권남용죄가 인정된 사안이 모두 일반적 직권의 정당한 범위 내에서 행해진 사안인 것은 아니고 일반적 직권에 속하는 사항과 관련해 행해진 사안도 여럿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통합진보당 소송에 개입한 점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을 와해하려 한 점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사건 정보를 수집한 점 등이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 "대법원장, 재판 개입 권한 없어"

    반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심리하는 1심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다고 보고 이를 남용했다는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관련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죄가 적용된 범죄사실 중 대다수가 ▲직권의 존재·행사 여부 ▲직권의 남용 여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등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형법 123조에 따르면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 성립한다.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과 범행에 공모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일부 재판 개입에 대한 정황은 인정하지만 공모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직권남용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한편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사법부 숙원사업에 대한 청와대·외교부 지원을 얻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사건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