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에 주재관 파견 계획…獨에 새 사령부도 설치미군 아닌 나토가 직접 관리…"트럼프 재집권해도 유지"유럽 '극우 부상' 등 정치적 변화 속 "지원 지속가능 위한 조치"
  •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31011 AP/뉴시스. ⓒ뉴시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31011 AP/뉴시스. ⓒ뉴시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민간 주재관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유럽에서 부는 극우 바람과 한층 더 커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우크라이나 장기 지원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각국이 자국 내 정치 상황에 따라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을 중단하거나 철회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그동안 러시아와의 정면충돌을 우려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거리를 뒀던 나토가 이제는 전면으로 나서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WSJ은 미국 등 나토 동맹국의 당국자 여러 명을 인용해 다음 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 같은 계획이 포함된 우크라이나 장기지원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키이우에 파견될 민간 주재관은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 독일 비스바덴에 새로 창설되는 사령부 등과 연계해 우크라이나의 군사 현대화를 위한 장기적 필요사항과 비(非)군사적 지원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사령부 신설 역시 나토 정상회의에서 발표될 지원방안에 포함된 계획 일부로, '우크라이나를 위한 나토 안보 지원 및 훈련(NATO Security Assistance and Training for Ukraine, NSATU)'이라는 이름 아래 군사장비 제공 및 군사훈련 조정 등 역할을 맡는다.

    NSATU는 32개국 700여명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합군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2022년 2월부터 진행됐던 임무를 인계받을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동맹국에 준하는 지원을 하기 위한 것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11월 대선 승리 가능성 및 유럽 내 극우 득세 등 세계 안보 지형 변동에 대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달 27일 첫 대선후보 토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말을 더듬고 맥락과 무관한 발언을 하는 등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미국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역대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취임 전에 전쟁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WSJ은 "나토의 새 계획은 수개월에 걸쳐 수립됐지만,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거둔 부진한 성적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쓴 돈에 대한 트럼프의 불만으로 인해 긴급한 상황을 맞게 됐다"고 짚었다.

    이보 달더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나토의 계획은 "지원과 훈련을 조정하는 책임을 미국보다는 나토가 맡게 되는 것이며 미국이 지원을 줄이거나 철회해도 그 활동은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이는 "트럼프의 영향을 차단하기(Trump-proof)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나토의 새 계획은 최근 유럽에서 일고 있는 우파정당의 부상에 대비한 측면도 있다.

    앞서 지난달 6~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파들이 약진한 데 이어 지난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도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극우정당들은 대부분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RN도 우크라이나에 군수품과 방어용 장비는 보내더라도 프랑스군 파병이나 러시아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제공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더글러스 루트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 유럽연합(EU)의 선거 결과에 따른 각국의 잠재적인 정치적 지형 변화 속에서 나토의 계획은 (우크라이나 지원의) 내구력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현직 당국자들은 이번 계획이 시행되면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서방국간 조율이 더욱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거리를 두며 미국에 대부분 지원을 의존해 온 나토가 향후 더 확대되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미국 국무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나토 동맹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의 90% 이상을 제공한다"며 나토를 지원 조율을 위한 플랫폼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