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간부들, 캄보디아·베트남 등 해외서 北 접선창원 간첩단, 첩보영화처럼 미리 정한 수신호로 교신
  • 해외에서 북한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해외에서 북한 인사들과 접촉해 지령을 받고 활동한 혐의를 받는 경남진보연합 관계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노총 전·현직 간부와 창원 간첩단은 북한으로부터 최근까지 '반일 감정 자극 투쟁 선동', '윤석열 대선 후보 모략 자료 작성', '한미일 군사 동맹 해체', '이태원 참사 정부 퇴진 투쟁' 등 정국 조작을 위한 구체적인 지령문을 하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24일 경기 군포시 민노총 경기중부지부 사무실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무실 등 4곳에서 추가 압수수색을 벌였다. 공안당국은 지난 1월 민노총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북한 지령문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25일 현재까지 파악된 공소장을 살펴보면 민노총 조직국장 A씨는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 노동당 산하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의 전(前) 부위원장 B씨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C씨와 금속노조 출신으로 알려진 제주평화쉼터 대표 D씨는 2017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각각 북한 공작원을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핼러윈 사고 이후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이게 나라냐' 등 반정부 시위 구호를 직접 적어 A씨 등에게 지령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15일에 보낸 지령문에선 "윤석열 퇴진 함성이 서울 시내를 뒤흔들어 놓은 것", "2014년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A씨 등에게 '반미(反美) 투쟁 공세' 지령도 내렸다. "한미일 군사 동맹(협력) 해체 등의 구호를 들고 반미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일 것", "주한미군 철수 투쟁 구호로 전 지역적 범위에서 넓혀 나갈 것" 등 구체적인 지령이었다. A씨는 북한 김정은을 '총회장님'이라고 칭했고, 북한 측에 민노총 상황과 국내 정세 등을 상세히 보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창원·경남지역에서 조직된 간첩단 '자주통일민중전위(자통)'도 국내 정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지령문에서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걸고 지역 사회의 반일 민심을 부추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사회(자통)에서 운영하는 여론 유포팀들은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괴물고기 출현, 방사능 오염수에 의한 기형아 출생과 같은 괴담들을 인터넷 공간에 대량 유포시켜라"라고 지시했다. "어민들을 내세워 삭발농성과 대규모 해상시위를 진행하라"고도 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의 출마가 예상되던 2021년 4월에는 "보수 세력 내부 대립·갈등을 격화시킬 모략 자료들을 만들어 유포하라"는 지령을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한국의 정세를 읽고 여론 공작을 지시한 사실도 파악됐다. 2021년 7월 2일 북한이 내려보낸 지령문에는 "최근 보수야당(국민의힘)이 30대의 정치 애숭이인 이준석을 당대표로 내세운 이후 혁신과 변화를 떠들어대면서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사회각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면서 "이사회(자통)에서는 지역 민중들 속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차단하기 위한 실천활동을 공세적으로 벌여야 한다"고 지시했다.

    자통 조직원들이 미리 정해둔 수신호를 이용해 가며 북한 공작원들과 첩보 영화처럼 접선해 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출입을 반복해 미행을 따돌려야 한다", "관광지도를 들고 와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북한 공작원을 확인하라", "약속된 번호로 전화를 하면서 이쪽은 '권'이고 저쪽은 '박'이다" 등을 교신했다. 국내 조직원끼리 만날 때도 스터디카페나 대학교 등 의심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골랐다. 이들은 "보고 자료가 저장된 이동식 저장매체(USB)는 가방에 넣고, 수사기관에 발각될 경우 부숴서 삼켜야 한다"는 수칙까지 공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