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외교에 성공한 일본...파란 리본 브랜드화국군포로-납북민간인 송환에 관심 없는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라
  • ▲ 뉴욕의 한일정상회담. 기시다 일본총리 양복 옷깃의 파란리본은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납북일본인과 조총련 북송자 일본인 부인들 송환을 촉구하는 상징물이다.ⓒ뉴데일리
    ▲ 뉴욕의 한일정상회담. 기시다 일본총리 양복 옷깃의 파란리본은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납북일본인과 조총련 북송자 일본인 부인들 송환을 촉구하는 상징물이다.ⓒ뉴데일리
    죽창가만 부르지 말고 일본에 배우자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과 UN 순방은 여러 가지 후일담을 남겼다.
    특히 우리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기시다 일본 총리와 가졌던 정상회담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한일정상회담에 나온 기시다 총리의 옷깃에 달려 있던 파란 리본에 주목하고자 한다.
    "태극기도 없이 정상회담 했느냐"라는 일부의 비판과는,
    결이 조금 다르기도 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1. 21세기 외교는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정상들간의 만남이 약식회담이냐 간담회냐 하는 형식적인 논의는
    사실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금은 외교의 형식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다.
    19세기나 20세기의 외교는,
    제국주의나 군비경쟁 등 주로 힘겨루기가 주목적이어서
    의전과 형식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21세기 외교는,
    그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와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보여주는 브랜딩,
    즉 연성권력(soft power)이 작동하는 무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가 당면한 기후변화 문제, 코로나 등 보건 문제, 세계경제 문제, 테러 공동대응 방안 등 각국에 공통적인 당면 문제를 풀기 위한 각종 다자외교가 많아지는 동시에,
    자국이 중시하는 ‘가치(value)’를 고리로 질서가 재편성되는 형태로
    외교무대는 변모하고 있다.
    미국이 내세우는 ‘인권’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중국이 내세우는 ‘일대일로’는
    아직도 전근대적 외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나 냉전시대의 외교는 '미소 띤 채 총을 숨긴 외교'였다.
    21세기 외교는 각국이 당면한 공통의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는 공공외교다.
    이 것이 과거와 현재가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 ▲ 바이든 미대통령을 만나는 기시다 일본총리. 이때도 그의 양복 옷깃에는 파란 리본이 달려있다.ⓒ뉴데일리
    ▲ 바이든 미대통령을 만나는 기시다 일본총리. 이때도 그의 양복 옷깃에는 파란 리본이 달려있다.ⓒ뉴데일리
    2.  ‘파란 리본’ 단 일본 총리
    국가의 신뢰구축과 이미지 메이킹이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
    기업의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상품이 아니라 그 기업의 이미지를 브랜드화하는 광고가 주를 이루고 있다.
    외교도 그렇다.

    21세기 공공외교, 실용외교, 가치외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회담장소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있었느냐는 문제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태극기는 우리 대통령 가슴에 달려 있었으니 논외로 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의 가슴에는
    일장기 대신 그 자리에 파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기 대신 총리 가슴에 달려있는 파란 리본.
    그것이야말로 21세기 외교의 표징이다. 
    파란 리본.
    그 파란 리본은 기시다총리만이 아니라
    1997년 이후 역대 모든 일본 총리 가슴에 항상 달려 있다.
    언제 어디를 가든.

    "일본은 납북국민을 기억하고
    납북자를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반드시 송환해 오겠다."
    바로 그런 다짐을 담은 상징이 바로 파란 리본이다.

    모든 일본 총리들은 취임 연설에서 항상 납북자 송환 문제를 거론한다.
    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의 만남도 공개적으로 진행한다.
    일본 총리는 선출된 바로 그 날,
    일본납북자가족회가 만든 파란 리본 핀을 총리가 돈을 주고 직접 사서
    늘 가슴에 달고 다닌다..

    97년 이래 모든 일본총리(당적 불문)는
    당선된 날 자신의 돈으로 직접 사서 단다
    당이 달라도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달고 다닌다.
    그것이 일본의 관례로 자리잡았다.
    선출직 최고위층으로서 자국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다짐과 맹세인 동시에
    국가의 존재이유를 말해 주고.
    ‘민간인 납치’라는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는 소리 없는 외침을 상징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인권과 자국민 보호란 국가의 정책의지를 파란 리본으로 브랜딩하는데 성공했다.
  • ▲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일본납북대책사무국 제공
    ▲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있다.ⓒ일본납북대책사무국 제공
    3. 김정일의 사과를 받아낸 고이즈미
    그런 다짐과 의지의 결과일까, 기적일까?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로부터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해 간 사실을 인정받고,
    그런 행위에 대해 김정일이 직접 사과토록 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북일 간에 외교관계도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적같은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납북됐던 일본인 5명을 ‘일시귀국’ 형태로 일본으로 데려온 것은
    일본의 일방적인 외교승리였다.
    납북자의 상징이 된 메구미가 죽었다며 가족에게 가짜 유골을 보낸 북한은,
    그 행위 자체로 ‘불량국가’이자 ‘악의 축’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이같은 노력과 결실이,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는데 큰 지렛대 역할을 했음은 공지의 사실이디.
    2006년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을 백악관에서 만나면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국제이슈화 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지난 6월 일본을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도
    일본인 납북자 가족들을 만났다.
    빠듯한 정상회담 일정을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다.
  • ▲ 2019년 5월 방일중인 트럼프 미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뉴시스
    ▲ 2019년 5월 방일중인 트럼프 미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피해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납북은 아니지만, ‘지상낙원, 파라다이스’라는 거짓 선전에 속아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 한국인 남편을 둔 일본인 부인 1,831명을 데려오기 위해서도
    일본정부는 꾸준히 노력했다.
    아직 돌아오지도 않은 일본인 부인들을 돌보기 위한
    <일본인 처 등 정주지원센터>를 만들 정도였다.
    결국 귀국을 희망하는 일본인 부인들을 고향 방문 형식으로 돌려받기로 합의한 내용이 현실화하지 못 하고 실패하자,
    일본은 1998년,
    북한에 대해 북일수교 교섭중지, 식량지원 유보, 직항 전세기 운항 중지 등 독자적인 제재를 가했다.
    그 제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파란 리본' 국가 브랜드화 성공

    납북자든 북송자든,
    일본은 자국민의 생명과 자유가 침해되면 끝까지 그들을 돌려 받고 책임도 묻겠다는 무서운 의지를,
    파란 리본이란 상징을 통해 침묵으로 항변하고 있다.

    최근에 거행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함께 나서달라"고 추모사를 했다.

    그러니 국가 브랜딩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일본 총리는 국제외교무대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다는 것보다
    파란 리본을 다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 외교활동을 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 ▲ 탈북 국군포로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데일리
    ▲ 탈북 국군포로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데일리
    4. 손 놓고 얼 빠진 우리는?
    10만 국군포로-5백여 납북자 송환 노력, 신경도 안써!
    일본정부가 보이는 납북자 해결 의지에 비하면,
    한국정부의 노력은 요원하고 초라하다.
    우리 납북자는
    6·25 전쟁 동안에 10만 여 명.
    전후에 500 여 명이나 된다.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들을 송환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관련법도 2010년에 내가 법안을 제출, 겨우 제정했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전쟁 중 민간인을 강제로 납치해 가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이자 제네바협약 위반이다.
    그런데도 최성용씨같은 피해자 가족이나 물망초같은 NGO가 나서서 송환과 구출을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국가적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6·25때 북한공산군과 중공군 포로가 된 국군포로 10만 여 명에 대한 송환 문제도 전혀 공론화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슈화될까봐 쉬쉬하고 있다.

    내년이면 정전 70주년.
    이들 국군포로들의 연령대는 이미 평균 수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지만,
    스스로 탈북해 온 80명의 국군포로 외에는
    아직도 수 백 명이 북한의 탄광지역에서 노예같은 억류상태에 놓여 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자유란 무엇인가?
    만일 우리 대통령도,
    납북자나 국군포로를 잊지 않겠다,
    반드시 구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핀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면,
    국제사회가 도와줄 것이고, 결실도 얻어낼 것이다.
    일본처럼.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런 생각을 안 한다.
    미국은 ‘인권’을 외교의 기치로 내걸고 있고,
    유럽인권재판소를 설치-운영 중인 유럽은 인권의 메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왜 우리 정부는
    이렇게 좋은 인권이슈를 국제사회에 제기하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는 북한으로서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의제다.
    그 아킬레스건을 외교현장에서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익에도 어긋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UN이 처음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언급했다.
    제46차 UN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는
    ‘송환되지 않은 북한 내 전쟁포로 및 그 후손들이 지속적인 인권침해에 시달리는데 우려를 표한다’(Noting with concern the allegations of continued violations of the human rights of unrepatriated prisons of war and their descendants)라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히지만, UN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이제라도 우리도 일본처럼 하자!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도 일본의 파란 리본처럼 외교적 기적을 일으켜보자.

    ‘너무 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

    이런 정신 아래 정전 70주년을 계기로
    국군포로 문제와 전시-전후 납북자 문제를 외교 무대에서 지렛대로 활용해 보자.
    21세기는 공공외교의 시대이자 가치중심의 외교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