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와 국정철학 다른 한상혁… '버티기' 들어갔나권성동 "문재인 정부 기조 수행한 분… 자진사퇴해야"지상파 사장들과 면담 직후… '친민주당 보도' 쏟아져공약 이행률 제자리… '방송편성권 침해' 외압 논란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4일 열린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을 두고, 한 위원장이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와 '불편한 동거 중'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관례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 왔던 한 위원장이 회의 시작 전, '윗선'으로부터 참석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고 회의장에 나오지 않은 것을 현 정부와 한 위원장 사이의 온도 차로 해석한 것.

    조선일보는 15일 '전현희·한상혁엔 국무회의 참석 통보 안했다... 불편한 동거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발탁된 한 위원장이 새 정부 출범 후 사의를 표명한 일부 기관장과 달리 '버티기'에 들어갔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관가에선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의 동거를 불편해하는 윤석열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란 말이 나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닷새 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자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위원장 등을 가리켜 "전임 정부 기조를 하나부터 열까지 수행했던 분"이라며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이 관례상 맞다. 새 정부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했다.

    조선·아투·서경 "새 술은 새 부대에…" 이구동성

    조선일보는 이처럼 정부와 일부 공공기관장들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짚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사들의 '자진 사퇴'를 권면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지난 9일 '한상혁·전현희·홍장표…文정부 기관장 69%, 임기 1년 넘게 남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공공기관장 임기는 3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임기 5년의 대통령과 '미스매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 '기관장 임기를 3년으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3년 이내로 고쳐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고 조선일보만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아시아투데이와 이데일리, 서울경제, 서울신문 등 주요 일간지 역시 지난 9~10일 사설과 전문가칼럼 등을 통해 "정부와 국정철학이 다른 기관장들이 큰 문제"라며 문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의 '용퇴'를 주문하고 나섰다.

    아시아투데이는 "양립하기 어려운 국정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한 팀'이 되면 국정동력은 떨어진다"며 "'소신'에 따라 불협화음을 내든지 아니면 세금을 축내면서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든지 어느 경우든 바람직하지 않다"고 우려했고, 이데일리는 지난 3월 16일자 사설에서 "새 정부의 국정 추진 동력을 극대화하고 공공기관 개혁의 속도를 내기 위해 새 정부와 이념·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로 자리를 채워 인적 쇄신과 조직혁신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서울경제는 "합의제 기구 수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나, 문재인 정부는 정파성이 강한 '코드 인사'를 강행해 합의제 기구의 정신을 훼손했다"며 "전임 정권과 노선을 함께했던 방통위원장 등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이자 도리"라고 꾸짖었다. 서울신문도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은 임기가 남아 있어도 자진 사퇴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최근엔 '버티기'가 새로운 관행처럼 번지고 있어 유감스럽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尹과 국정철학 다른 한상혁‥ 사퇴 NO, '버티기'로 일관?

    물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만고불변의 격언인 것은 분명하다. '공존하기 어려운 국정철학을 지닌 인사들이 요직을 맡게 되면 국정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여러 언론의 우려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러나 방통위원장이 그 어떤 자리보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요구받는 직책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물러나는 건 부적절하다는 반론도 있다. 법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윤석열 정부가 아직 임기도 끝나지 않은 기관장을 섣불리 갈아 치우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반대 여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산하 기관 인사들에게 일괄 사표를 강요한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문 정부 초기 산업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사직서를 강요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도 새 정부로선 부담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이 임기 동안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윤석열 정권에 비판적인 미디어오늘도 "한 위원장의 자질을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이 경우엔 위원장 재임 시절 구체적 문제 사례를 제시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순리' '도리' '몰염치' 같은 감정적 단어만 내세우지 말고, 팩트를 제시해 한 위원장이 물러날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다.

    연임 성공 한상혁 위원장… 공약 이행률은 제자리

    그렇다면 취임 3년째로 접어든 한 위원장의 업무 수행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일단 본지가 5기 방통위의 성과를 살펴본 결과, 공정성과 이중규제 논란 등으로 한 위원장의 공약 이행률이 미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2년 전부터 설립 논의가 있었던 미디어혁신위는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들어서면서 올해서야 윤곽을 드러냈고, 방통위가 예산을 지원하는 '팩트체크 오픈플랫폼'은 여전히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내놓은 방안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웨이브와 티빙, 시즌, 왓챠 등 국내 OTT 사업자와 간담회를 통해 'K-OTT 민관협의체'를 가동했으나 시장 혼란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 위원장이 임기 초기 방송 편성권을 침해하는 등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있다.

    다수 언론에 따르면 한상혁 위원장은 2019년 9월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 사장단과 정책간담회를 갖고 미디어 비평 등 '저널리즘 기능의 복원'을 요구했다.

    한 위원장은 당시 "저널리즘 기능의 복원은 공정성 수호를 위한 지상파의 가치와 국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한 뒤 "광고·편성 등 비대칭 규제를 재검토해 개선하겠다"며 당근을 제시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당시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위법적이고 위험한 언론외압 발언으로 노골적인 편성권 침해"라며 "법무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국면에서 홍위병 언론이 더 절실해졌나. 이는 지상파 방송을 연장삼아 다른 언론을 치라는 것. 정권 우호언론과 적대 언론으로 갈라치기하겠다는 음모"라고 비판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조국 보도' 비평에 총력


    박 의원의 우려는 즉시 '현실'이 됐다. 본지 확인 결과 KBS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인 '저널리즘 토크쇼 J'는 한 위원장과 방송 3사 사장단의 면담 이틀 후인 2019년 9월 29일 '조국 사태 두 달, 언론이 논란을 끌고가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이른바 '조국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평했다.

    이 방송을 기점으로 '저널리즘 토크쇼 J'는 2020년 말까지 ▲조국 논란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 ▲미디어법 10년, 종편은 어떻게 미디어 생태계를 교란시켰나? ▲검‧경 마케팅에 활용되는 언론의 쓸모 ▲조선 동아 100년... 지워진 진실은? ▲감염병을 대하는 언론의 기억상실 화법 ▲코로나 사대주의, 언론이 한국을 '후진국' 만드는 법 ▲'교묘' 혹은 '뻔뻔'.. 총선 기술자 언론- 보수 언론의 자기 반성 주장 ▲누구를 위한 '윤석열 대망론'인가 ▲윤석열 vs 추미애, 언론의 편파중계에 가려진 본질 ▲한명숙부터 채널A까지.. 검찰발 뉴스 영점조준 맞추기 등,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한 언론보도를 문제삼으며 여권에 우호적인 방송을 30건 가까이 내보냈다.

    MBC의 시사·교양프로그램도 움직였다.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2019년 10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조·중·동 등 보수일간지와 포털사이트 네이버, 우파 유튜버를 집중 공략하는 10건의 방송(▲추적! 조선일보와 국론분열 ▲추적! 종편 출생의 비밀 ▲신종 코로나 틈타 '혼란·혐오' 부추기는 언론들 ▲조선, 동아, 100년의 민낯 ▲극우 유튜버들의 상상초월 '슈퍼챗' 돈벌이 ▲왜곡·혐오·막말 극우 유튜버 후원하는 대기업 광고 ▲집값 폭등의 또다른 주범은 언론 ...언론은 정말 집값 안정을 바랄까? ▲심각한 보수편중– 네이버 뉴스의 비밀 ▲네이버 뉴스 집중 해부, 보수만 추천하는 AI ▲동남아 'K-신문' 열풍의 비밀)을 내보냈다.

    MBC 'PD수첩'은 2019년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검찰 기자단 ▲가짜 뉴스와 음모론 ▲7년의 침묵: 검찰, 언론 그리고 하나고 ▲국정원과 언론장악 등, 문재인 정권의 논리를 답습하는 다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KBS·MBC, 한상혁 면담 후 '보수언론 비판' 쏟아내


    홍세욱 경제를생각하는변호사모임 상임대표는 "한상혁 방통위원장과 지상파 방송사 사장들과의 간담회는 2019년 9월 당시 조국 사태에 대한 각 언론의 경쟁적인 보도가 이어지는 도중 실시됐다"며 "이는 대중 영향력이 가장 큰 방송을 장악해 조·중·동과 보수 종편을 견제해야 한다는 파당적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홍 대표는 "실제로 MBC와 KBS는 한 위원장을 만난 이후 자사 프로그램을 통해 질적·양적으로 보수 언론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를 실시했다"며 "이는 방송 재허가 등 사실상 방송국의 운명을 좌우할 감독기관의 장이 직접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편성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방송법 위반(제4조 2항, 방송편성 규제 및 간섭 금지)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위원장이 2020년 2월 4일 종편 재승인을 앞둔 상황에서 종편 4사(TV조선 제외) 대표를 불러, 정부가 제공하는 코로나 정보의 적시 전달과 가짜뉴스 대처를 요구한 사실도 거론한 홍 대표는 "그해 4월부터 JTBC와 MBN의 재승인 절차가 시작됐음을 감안할 때, 이 역시 위력에 의한 편성권 침해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 혐의로 기소돼 10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 받은 전례에 비춰보면 더 중대한 범죄 혐의"라고 홍 대표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