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톰 홀랜드(Tom Holland), 젠데이아 콜먼(Zendaya Coleman) 커플. ⓒ스플래시뉴스닷컴
    ▲ 톰 홀랜드(Tom Holland), 젠데이아 콜먼(Zendaya Coleman) 커플. ⓒ스플래시뉴스닷컴
    철 없는 대학생이던 필자가 역시 공부할 마음이 없어보였던 후배를 구슬려서 전공수업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명동에서 스파이더맨을 본 것이 벌써 20년 전이다. 당시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웹 스윙'을 피터 파커의 시선으로 완벽히 재현한 실사 그래픽에 극장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작년 연말부터 이번 설 연휴까지 부동의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 원조 피터 파커가 재등장해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근 마블 시리즈의 단골소재인 '평행우주이론'을 바탕으로 현역 거미 톰 홀랜드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첫 실사판의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 리부트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앤드루 가필드가 한 데 모인 것이다.  

    평행우주이론은 여러 개의 세계(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A라는 대학에 입학했다면 그 외에 B나 C대학을 선택한 세계들이 생성되고 각각의 역사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네티즌 용어로 '뇌내망상'처럼 들리지만 일각에서는 이 평행우주설이 과학적으로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방에 문이 두 개가 있다면 둘 중 하나의 문을 통해 출입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문 외에 다른 문으로 들어간 또 다른 세계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전자는 입자의 형태로 둘 중 한개의 문(슬릿)을 통과하기도 하고 파동의 형태로 동시에 두 개의 문을 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문과인 필자의 부실한 설명은 여기까지로 하고 자세한 내용은 '데이비슨-거머 실험(1927)'을 검색하면 된다. 핵심은 전자 단위에서 보면 내가 선택한 문 외에 다른 문을 선택한 세계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위적으로 전자의 이동을 관찰하면 사람처럼 한 개의 문을 입자 형태로 지나가고, 관찰하지 않으면 파동의 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윗 사람이 감시를 안하면 엉뚱한 짓을 하는 인간의 본성은 전자 단위에서부터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신작 <노웨이홈>에서 평행우주설은 선·후배 거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개연성을 주고, 20년간 두 번의 리부트가 초래한 혼란과 염증을 수습하는 좋은 설정이었다. 비록 박수를 받으며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두 명의 선배 거미들을 각기 다른 세계에 사는 영웅으로 예우하는 방식은 다른 장편 시리즈 영화들이 참고해볼만 하다.

    특히 대선배 격인 토비 맥과이어가 톰 홀랜드에게 자신이 스파이더맨으로서 행했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이야기하며 후배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충고하는 장면은 벌써 20년을 이어온 장수 영화다운 무게감을 보여줬다.

    실제 토비 맥과이어는 자기관리나 사생활 면에서 모범적인 영화배우로 평가받는다. 1975년 생으로 반백살을 앞두고 있지만 평소 금주와 채식으로 최강의 '동안'과 날씬한 체구를 유지하며 이번 영화에서 스파이더 수트가 어색하지 않았다.

    2020년 이혼한 후에도 전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전 부인 제니퍼 메이어의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이는 이혼하면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마는 헐리웃 영화판에서 종종 미담으로 소개된다.

    업계에서 대인관계도 좋은 편으로 알려졌다. 2002년 스파이더맨 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가기로 돼있었지만 그가 10대부터 절친이었던 토비 맥과이어를 적극 추천하면서 친구를 돈방석에 앉게했다. 평소 친구에게 잘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기회였다.

    이 외에도 총각 시절 토비의 극중 연인 메리 제인을 연기한 커스틴 던스트와 잠시 '다정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둘은 부인했지만 야구장이며 식당에서 다정하게 데이트중인 사진들이 온라인상에 돌았다. 이후 2대 스파이더맨 앤드루 가필드와 MJ 엠마 스톤, 3대 톰 홀랜드와 젠데이아까지 연인사이로 발전하면서 역시 후배는 선배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게 돼있다는 말이 회자됐다.

    실수라면 실수도 있었다. 2011년 한 펀드 사기꾼이 겁없이 포커판에서 선수출신인 토비에게 도전했다가 꽤 많은 돈을 잃었다. 이후 펀드 피해자들이 토비에게 소송을 걸어 약 8만달러를 합의금으로 물어낸 것을 제외하면 크게 물의를 빚은 일은 없었다. 도박중독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가 포커 선수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의 20년 궤적을 요약하면 토비 맥과이어는 여러 평행우주 가운데 비교적 좋은 선택을 한 배우라 할 수 있다. 이번 <노웨이홈>에 '거미'들의 귀감이 되는 선배로 출연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평판과 자기관리가 한 몫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2002년에 디카프리오가 순하고 어리숙한 피터 파커를 연기했다면 같은 해 개봉한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천재 도둑 역할이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비슷한 예로 영화 '도둑들(2012)'에서 줄을 타고 날아다니던 전지현이 2년 뒤 영화 '베를린'에서 창가에 매달린 채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관객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토비 맥과이어는 통상 장편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흥행부진이나 제작사와의 마찰로 중도하차하는 것과 달리 샘 레이미 감독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스파이더맨 수트를 벗었다.

    우선 흥행성적만 놓고 본다면 토비 맥과이어는 하차할 이유가 없는 배우였다. 신작 <노웨이홈>의 최종성적을 봐야겠지만 일단 이를 제외한 8편의 스파이더맨 가운데 전 세계 기준으로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한 3편(2007)이 1위, 1편(2002)이 3위의 흥행수익을 기록했다.

    물론 3편의 작품성을 두고 말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소니(SONY) 픽쳐스가 악당 '베놈'을 억지로 출연하도록 압박을 하는 바람에 샘 레이미 감독이 구상했던 스토리 전개가 꼬여버렸다. 이후 샘 감독이 소니와의 불화를 수습하지 못하고 메가폰을 놓으면서 토비 맥과이어도 함께 하차한 것이다.  

    그랬던 그가 <노웨이홈>에 재등장해 오랜 팬들의 갈채를 받으면서 스파이더맨 이력서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극장을 나서면서 토비 맥과이어가 스파이더맨으로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는 일종의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필자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해 찬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3편이 나올 당시 평단에서는 그의 연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진부하다는 지적도 나왔고, 흥행성적과 달리 3편이 특히 혹평을 받으면서 불명예스러운 하차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영화나 현실이나 '잘한 선택'이 당대에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당시 이를 격렬히 반대하던 야당이 훗날 집권여당이 되고, 장관이 고속도로 50주년 기념비에 슬쩍 자신의 이름을 올리면서 만장일치 판정승을 받은 셈이 됐다. 세상만사 지나봐야 아는 것이다.

    3월 대선을 거치며 대한민국은 어떤 세계와 어떤 평행우주로 나뉘게 될까 궁금하다. 미래 전현직 대통령들이 <노웨이홈>의 거미들처럼 한 자리에 모여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들을 현역에게 충고하는 그런 따듯한 자리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무리일까.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여러 상업적인 이유와 감독들의 과욕으로 리부트를 거듭하며 어떻게 손 써볼 여지가 없을만큼 망가져버린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향후 <노웨이홈>의 따듯한 설정을 참고해 오랜 팬들에게 '말이 되는' 방식으로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
  • 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 제니퍼 메이어(Jennifer Meyer) 부부. ⓒ스플래시뉴스닷컴
    ▲ 토비 맥과이어(Tobey Maguire), 제니퍼 메이어(Jennifer Meyer) 부부. ⓒ스플래시뉴스닷컴
    [사진 제공 = SplashNews (www.splashnews.com 스플래시뉴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