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헌법수호수단이지만 과잉으로 이어질 경우 헌법 파괴·국가사회의 통합 저해
  • ▲ 김학성 강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 김학성 강원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한국헌법학회 고문.
    필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불법 탄핵이라는 주제로 ‘미래를 여는 변호사연대’가 세미나를 열고자 하는데 주제 발표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을 했다. 발표의 내용이 어렵고, 이 발표가 가져올 파장이 매우 크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운,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는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위 발표 내용을 축소한 것이다. 

    탄핵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 정돈되어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역시 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탄핵은 국민을 나누었고, 반목과 갈등과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국민화합의 발목을 잡았으며, 새로운 출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탄핵 논의’는 금기시되면서 나라를 침묵하게 했다. 아직도 미해결로 진행 중이며, 한 번 더 거대한 폭풍이 일 것 같다.  

    헌재 결정에 대한 올바른 평가, 우리 모두위해 필요

    필자는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2016년 11월 21일 모 일간지에 “고래가 새우에게 먹힌 나라”라는 제목으로 박 대통령을 통렬히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오늘 이 주제를 맡아 발표하기로 한 것은, 위 칼럼에 대한 ‘자기 반성적 고백’을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푸는 것도 학자로서의 바른 자세라 보았기 때문이다. 또 헌재의 결정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을 보면 첫째,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적절했다. 국정농단행위 인지 여부는 무죄추정의 원리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나, 헌법재판소는 직무집행의 위헌·위법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헌법이 부여한 탄핵심판권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이 되어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3차례의 변론준비기일과 17차례에 걸쳐 변론절차에서 증거를 조사했고,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행위를 중대한 ‘헌법·법률위반’으로 보아 탄핵심판을 ‘적법한 것’으로 본 것은 정당하다.  

    둘째, 형사소추를 중단하지 않은 것도 적절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사건을 중단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법 제51조를 적용하지 않고 사건을 진행 시켰는데, 부당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불가피했다고 본다. 대통령 탄핵이 지니는 중대함과 무게감을 감안하면 위 규정을 적용해 시간을 버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헌법재판소 심판대상이 되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므로 임기가 1년이나 남은 대통령의 권한을 잠정적 대행체제로 운영케 하는 것은 ‘국가안보·사회질서·공공복리’에 도리어 저해될 수 있다.  

    헌재, 대통령 탄핵 후폭풍 인식 부족, 민주주의 비용 예상치 넘는 과잉

    셋째, 다만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후폭풍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려면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여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이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행위가 국민을 실망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은 맞지만, 대통령 파면으로 나타날 국가적 대혼란과 국민분열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신임배반’이나 ‘신뢰손상’으로 본 것은 적절치 않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라고 했지만, 그 비용은 예상치를 훨씬 넘는 과잉이었다. 

    헌법재판에서 법익형량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그 결론이 매우 다르게 나타나며, 또 논리적 사고의 결과도 아니어서 합리적 결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객관적 사실이 드러난 조국과 정경심 사태를 놓고도 찬반이 갈리는 세상인데, 주관적 판단의 개입이 필연적인 법익형량에서, 그것도 대통령의 진퇴를 두고 행해지는 법익형량은 난제 중 난제다. 역사는 어려울수록 신중해야 하고 내질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넷째, 대통령 탄핵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적절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일반 탄핵과 달리,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아니라 ‘소극적·방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은 ‘적극·소극’의 접근이 모두 가능하겠지만 대통령 탄핵과 같이,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에는 ‘소극적·방어적’ 접근이 타당하다. 헌법재판소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헌법수호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대통령 탄핵의 경우는 소극적이고 방어적 방법을 취할 때 ‘도리어’ 헌법수호의 효과가 더 클 수 있음을 인식했어야 했다. 

    헌재, 헌법수호 사명 감당하기보다 여론에 떠밀렸다는 비판에 자유롭지 못해

    다섯째, 처음 접하는 사안일수록 또 중대할수록 신중해야 하는데, 신중하지 못했다. 필자는 강원도 소청심사위원회에서 위원장 또는 위원으로 6년간 활동했는데, 공무원에 대한 파면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면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위법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에 한 해 파면을 하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본질이 이현령비현령일 수 있는 법익형량에서, 깊은 성찰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헌재는 파면을 감행했다. 확신이 없다면, 그것도 처음 접하는 사안에서, 또 그 파장을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면, 파면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매우 경솔했다. 최선보다는 차선을,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했어야 했다. 

    여섯째, 헌법수호 의지가 부족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결정이 자신에게 부여된 헌법수호 의무를 다한 것이라 항변할 수 있다. 당시 모든 언론은 연일 박 대통령의 무능과 국정농단을 비판했고, 수많은 국민이 한 달 넘게 거리를 점령하면서 박 대통령을 규탄했다.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조속한 시일 내에 결론을 낼 것으로 요구했고, 헌재를 겁박하는 말과 행동이 넘쳐났다. 헌재의 탄핵 인용은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졌는데, 헌재에 부여된 엄중한 헌법수호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다기보다는 여론에 떠밀려 소신 없이 이루어진 인민재판이라는 비판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반대의견이 1명도 없는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전원 일치의 결정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겁했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기에 일치된 결론을 내는 것이 필요했겠지만, 반대의견 없는 헌재의 결정은 ‘맛 잃은 소금’에 불과하다. 재판관들은 ‘정당’의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소신을 꺾었고, ‘전원’의 형식 뒤로 자신을 숨겼다. 그래서 헌법수호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朴, 직무상 위헌·위법했지만 사익 추구 없고 탄핵할만한 위반 아니라고 주장했다면

    일곱째, 민주적 정당성으로부터 크게 벗어났다. 헌재는 민주적 정당성의 부족으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법이 직접 부여한 권한이므로 헌재가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할 만큼의 민주적 정당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법률의 위헌 결정’ 등과 같은 일반 헌법재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중대한 사안이어서, 헌재는 자신의 민주적 정당성의 부족을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존재여서, 헌재가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못 할 수는 없지만 쉽게 해서는 안 될 정도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함을 의식해야 하는데,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여덟째, 박 대통령도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자유롭지 못하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박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절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자신이 본의 아니게 직무상 위헌위법을 저질렀지만, 자신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고 탄핵을 받을 만큼 위헌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면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파면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으로 본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직 공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국정의 대혼란을 막아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었는데 그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해 대통령 탄핵이 얼마나 엄중한지 온몸으로 학습했다. 미국이 240년의 헌법 역사 속에서 대통령을 탄핵으로 쫓아낸 적이 없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명의 대통령이 상원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통령 탄핵이 주는 ‘국가적 혼란’을 충분히 감안한 지혜였다.   

    헌법 이론적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고 가능하며 또 가능해야 하지만, 직선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제도가 꼭 필요한 제도인지 회의가 든다. 경험의 학교에서 배운 학습이다. 대통령 탄핵이 헌법수호수단이지만 그것이 과잉으로 이어질 경우,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며 헌법의 안정성을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터득한 학습효과다. 탄핵으로 대한민국의 민주가 더 깊어지고 성숙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독선을 경험하고 보니 더더욱 후회와 회한뿐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4년이 지난 지금, 국민 간의 갈등을 경험 한 지금’ 다시 이 사건을 심리한다면 그래도 동일한 결론을 내렸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