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만큼은 스스로 싸워 쟁취해야 진짜 야당… 좌파들의 '선처'나 '자비', 꿈도 꾸지마라"
  • ▲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 용산점의 한 전자제품 판매점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공판이 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 지난해 8월 서울 용산구 전자랜드 용산점의 한 전자제품 판매점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공판이 중계되고 있다. ⓒ뉴시스
    작년 12월 25일 성탄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지 꼭 1000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12일) 기준으로 박 대통령의 인신구속 1353일을 맞고 있다. 내년 3월이면 수감 4년째를 맞는다.

    작년 이맘때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면설’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성탄절을 앞두고 형집행정지나, 적어도 이듬해(2020년) 2월경에는 사면을 통한 석방이 이뤄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필자의 기자 생활 경험상 언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확정되지 않은 비중 있는 정치기사는 실제로 당사자들이 여론을 떠보기 위해 고의로 흘리는 경우가 많다. 박 대통령의 사면설도 이런 과정을 통해 유포되고 재생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한 대중의 염려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오른팔을 10도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고, 결국 어깨 수술 후 78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또한, 허리디스크로 극심한 고통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청와대 처지에서는 정치적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작년 8월에 불거진 이른바 ‘조국 사태’는 10월 3일 개천절날 대규모 정권 퇴진 집회의 동기가 되었다. 이날 단군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한곳에 모여 “조국 퇴진”과 “문재인 하야”를 외쳤다. 일부 언론이 KT의 통신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개천절 당일 광화문 일대에 최소 40만 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개천절 광화문 범보수 집회 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국정 수행평가는 집권 이래 최저로 떨어졌고,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야당인 한국당의 지지율이 여당인 민주당을 앞서는 현상이 벌어졌다.

    실제로 ‘조국 사태’가 한참 타오를 여름 무렵부터 기자들 사이에 박 대통령 사면설이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만약 정권 내부에서 사면 논의가 정말로 있었다면 이는 4·15 총선을 앞두고 결집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분열을 노린 포석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박 대통령 장기 구금은 정의를 가장한 폭력


    하지만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석방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필자는 박근혜 사면카드를 만지작거릴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꼈던 집권 세력이 4·15 총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의 결집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보수분열용으로 박근혜 석방카드를 쓸 필요조차 없이 보수세력의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이야기다.

    작년 연말부터 보수세력은 탄핵파와 통합문제로 분열을 거듭했다. 박 대통령 석방설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올해 2월 중순 무렵에는 탄핵파를 아우른 미래통합당이 출범했고, 이른바 ‘태극기 세력’은 신당 창당으로 맞섰다.

    보수세력의 분열에 위기를 느낀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3월 초 범보수 단합을 요구하는 옥중편지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미 2월 중순 탄핵파와 통합을 시작한 거대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절박한 호소를 태극기 세력의 완전한 항복으로 받아들이면서 선거 때까지 이들과 어떤 통합 시도도 하지 않는 철저한 무시 전략을 펼쳤다.

    필자는 박 대통령의 석방을 간절히 기원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설사 그것이 집권 세력의 일방적인 ‘정치적 고려’나 뻔한 ‘정치적 아량’이라는 외투를 쓰는 형태일지라도 박 대통령이 하루빨리 영어(囹圄)의 몸에서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수감 3년째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주요 구속 사유가 되었던 뇌물수수죄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이다.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은 전직 대통령을 3년이나(올해 연초 기준) 가두어 둔다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의를 가장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권의 문제이자 법치를 추구하는 문명사회의 수치이기도 하다.

    더구나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죄가 아니고서 재직 중에 형사상의 소추를 받을 수 없도록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마치 일반 잡범처럼 ‘혐의’만으로 탄핵을 받고 수감됐다. 실제로 내란죄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2년 정도의 형을 살고 석방되었다.

    탄핵 후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워


    박근혜 대통령은 죄가 밝혀져 탄핵을 받은 것이 아니라, 먼저 탄핵으로 파면된 후 죄가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재판 절차에 들어갔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언론기사와 검찰의 일방적인 기소내용 짜깁기의 나열이었다. 촛불에 겁을 먹은 헌법재판관들은 전원일치라는 비겁한 ‘인민재판’을 감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8월 국정농단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관련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박영수 특검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18가지 혐의로 구속·기소한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

    박근혜·최서원에 대한 선고 결과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고 믿고 있던 사법부까지 여론과 진영논리에 휘둘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소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박 대통령의 측근 수십 명이 구속되었고, 전직 장·차관, 국방과 안보 최고 책임자들이 줄줄이 구속된 것은 물론, 대한민국 최대 기업의 총수가 1년 가까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일평생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을 지시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적법하게 설립된 재단은 하루아침에 범죄단체가 되고, 뇌물죄로 기소당한 대통령이 단돈 1원 한 푼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자, ‘경제적 공동체’라는 법률 용어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논리가 등장했다. 대통령의 지시와 통치행위, 행정절차는 직권남용으로 둔갑하고, ‘포괄적’ 심증만 가지고도 기소가 되고 구속 영장이 떨어졌다. 역대 정부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기관의 특수활동비가 ‘뇌물상납’으로 둔갑했다.
     
    박 대통령 탄핵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하며 <대통령을 묻어버린 거짓의 산(1, 2권)>이란 책을 펴낸 우종창 전 월간조선 기자는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박영수 특검팀과 검찰이 증거라고 제시한 상당수의 자료가 언론에 보도된 기사, 그것도 사실 여부가 전혀 검증되지 않은 보도들인데 그 양이 증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라고 말했다.

    법이 휘두르는 자의 사유물로 전락


    법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박 대통령 탄핵과정과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검찰 수사와 재판과정은 우리의 법치주의가 얼마나 사상누각 위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글자 그대로 ‘촛불 혁명’이라도 난 것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 앞에서 제일 야당조차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으며, ‘무죄 추정의 원칙’이니, ‘죄형법정주의’니 하는 법 원칙은 언급 자체가 사치로 보일 정도였다.

    유례가 없는 주 4회의 살인적인 재판일정으로 방어권 보장은 고사하고 심신이 물리적으로 위협받는 단계까지 내몰렸다. 2018년 2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30년을 구형했을 때 당시 자유한국당은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나. 사형보다 더 잔인한 구형이고 차라리 사형을 구형하는 것이 무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평을 내놓았다.
     
    검찰이 박 대통령에게 구형한 30년은 유기징역의 최고형이다. 이는 반정부세력을 말살하기 위해 수만 명을 고문 살해한 캄보디아 킬링필드 주범들이나, 2차 대전 당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독일 나치 전범들이 받은 형과 비교해서도 절대 가볍지 않다.

    법치국가에서 형벌은 한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박탈할 수 있기에 모두에게 공평하고 준엄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법치국가에서는 모든 죄에 대해 죗값에 상응하는 형벌주의를 취하고 있다. 형벌이 모자라도 안 되고 과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은 검찰 구형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법은 휘두르는 자의 사유물로 전락한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의 적폐 수사를 통해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탄핵문제 회피하면 안 돼


    좌파와 손잡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한국당 의원들은 “좌파집권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들 중 대다수는 18대에서 20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당시 공천을 받기 위해 서로가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내세우는 진풍경이 수없이 펼쳐졌고, 친박비박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차량에 박근혜 사진을 걸어놓고 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이들 의원 중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단 한 명도 항의표시를 하는 이 없이 모두 뒷짐만 지고 지켜보았다. 야당 스스로 탄핵에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당론을 모아 강력하게 박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지 않았다. 총선에서 야당이 지리멸렬하고, 보수세력이 단합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한국 정치가 배신을 밥 먹듯이 하고, 증오, 분열, 저주의 코드 속에 갇혀 있다고 해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좌파와 손잡고 자당의 대통령을 탄핵한 패륜적 행위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이 뭉쳐 만든 정당은 정당이 아니라 정상배(政商輩) 집단일 뿐이다.

    야당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보수세력 통합의 구심점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박근혜 대통령 석방부터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미 보수의 핵심을 유린한 좌파들의 ‘선처’나 ‘자비’를 기다리지 말고, 이 문제만큼은 최소한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탄핵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진정한 자기 성찰과 반성이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