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발발하자 오전에 수색대 사단사령부로 원대복귀… 목숨 걸고 방어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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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웅 광복회장이 지난 24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박성원 기자
고(故) 백선엽 장군의 6·25전쟁 당시 공적을 깎아내린 김원웅 광복회장 발언과 관련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거짓이라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미래통합당 하태경의원실이 최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백 장군(당시 제1사단장)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열흘 전인 1950년 6월14일 시흥보병학교 고급지휘관 교육에 참가 중이었다. 따라서 전쟁 발발 당일에는 11연대장 최경록 대령이 사단장대리였다.군사편찬연구소 "백선엽, 6·25 발발 당일 방어전투 지시"김 회장은 지난 17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통화에서 "6·25가 난 그날 백선엽 장군이 이끌던 육군 1사단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1사단에 있던 참모나 군인들이, 장군은 없는데 그 다음날 할 수 없이 한강을 넘어 도망갔다"고 주장했다.하지만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백 장군은 6·25가 발발한 당일 오전 용산 육군본부에 출두해 원대복귀를 확인한 후 사단장대리인 최 대령과 수색대의 사단사령부로 복귀했다.이후 당시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84호'에 따라 주저항선을 임진강으로 설정하고 방어전투를 지시했다. 다음날(6월26일) 야간에는 최후저항선인 봉일천으로 철수해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조치했다.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당시 우리 1사단은 김원웅 회장의 말처럼 지휘관의 공석으로 겁을 먹고 도망친 비겁한 군인들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1사단, 미군 지원받아 전투 수행"김 회장이 "다부동전투의 핵심전략은 미군이 전부 포로 쏴 죽인 것"이었다며, 백 장군의 1사단은 진군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답변이 나왔다.군사편찬연구소는 "당시 국군 1사단은 미군 제25사단 제27연대의 포병 및 전차 지원을 받아 전투를 수행했다"며 "다부동전투는 수암산·유학산 등 주요 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해 대구 방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했다.이어 "이로써 대구·부산 축선의 방어선을 견고히 할 수 있었고, 낙동강전선을 돌파해 부산까지 밀고 내려오려는 북한군의 공격 의도를 좌절시켰다"고 강조했다.하 의원은 "백 장군이 이끌던 1사단 보병들이 없었다면 미군의 포나 전차가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과 고지를 지켜낼 수 없었다는 것"이라며 "1사단의 군인들은 김 회장의 말처럼 미군 전력 뒤에 숨어 그저 걷기만 하던 무기력한 군인들이 아니었다"고 일갈했다.하태경 "공인인 광복회장이 가짜뉴스로 국민 편 갈라"하 의원은 가짜뉴스로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민을 분열시킨 김 회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경고를 촉구했다.하 의원은 "공인인 광복회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가짜뉴스로 국민을 편 가르기 하고 있다"며 "공인의 신분을 이용해 여전히 나라를 두 동강 내려 하고 있다. 이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