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발의 법안 3000여 건 분석… 실적 부풀리려 '법안 수 늘리기' 구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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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대 국회 개원(5월30일) 후 84일간 발의된 3000여건의 법안 중, 과거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을 '재탕'하는 등의 악습이 반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뉴데일리 DB
지난 5월30일 21대 국회 개원 후 84일간 발의된 법안은 총 3000여 건. 그런데 법안 발의자 명단에 일단 이름을 올리고 보는 식의 '실적 부풀리기'가 과거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횡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의원은 수백개가 넘는 법안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1인당 법안 발의… 민주당 159건, 통합당 116건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9시 기준 민주당에서 법안을 가장 많이 발의(공동발의 포함)한 의원은 △김경만(486건) △박정(458건) △박성준(384건) △정춘숙(376건) △임종성(375건) △황운하(359건) 의원 순이었다.미래통합당의 경우 △추경호(335건) △박덕흠(296건) △김석기(287건) △권명호(252건) △김정재(223건) △강기윤(205건) 의원 순으로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로 보면 민주당은 1인당 평균 159건의 법안에 이름을 올렸다. 통합당은 평균 116건이었다.법안은 현행법상 10인 이상 서명이 있어야 발의 가능하다. '대표발의'는 해당 의원이 대표로 법안을 냈다는 의미다. 공동발의는 다른 의원의 법안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박성준·황운하, 300개 넘는 법안에 이름 올리고 대표발의 '0건'그러나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법안을 많이 발의한 상위 10명의 의원들 가운데는 정작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전무한 경우도 있었다. 박성준(서울 중구성동구을)·황운하(대전 중구) 의원은 각각 384건, 359건의 법안에 이름을 올려 법안 발의 상위 10위에 들었으나 대표발의한 법안은 '0건'이었다.그 외 민주당의 김경만(비례) 의원은 17건, 박정(경기 파주시을) 30건, 정춘숙(경기 용인시병) 82건, 임종성(경기 광주시을) 12건 등을 대표발의했다. 전체 291건의 법안에 이름을 올린 윤미향 민주당 의원은 4건만 대표발의했다.통합당의 경우, 발의 상위 10명 의원은 모두 10~20건(추경호 25건, 김석기 15건, 박덕흠 15건, 김정재 16건, 강기윤 24건 등)을 각각 대표발의했다.20대 국회 때 폐기된 법안 '재탕'도 상당일부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재탕'하기도 했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법 일부 개정안'은 같은 당 정재호 의원이 20대 때 발의한 법안과 제안이유까지 같았다. '또한' '한편' 등 일부 조사를 변경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같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도 같은 당 권칠승 의원이 20대 때 발의한 법안과 내용이 같았다.19대 때 법안을 베낀 경우도 있다. 박정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은 19대 당시 김희국 통합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과 똑같다. 김 의원이 과거 제안이유에서 '현행법에 따르면'이라고 한 표현을 '현행법은'이라고 고친 것 등 외에는 제안이유부터 법 조항까지 판박이였다. 민주당 발의 상위 5명의 의원 중 재탕·삼탕 법안을 안 낸 의원은 없었다.신현영(비례) 민주당 의원이 7월31일 발의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도 20대에서 같은 당 신동근 의원이 낸 법안을 제안이유까지 그대로 베낀 법안이었다.'법안 수 늘리기'는 시민단체들이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수 등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시민단체 '법률소비자연맹'은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 시 법안 발의 수를 중요한 실적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국회의원 정책자료를 보면, 의원들은 자신의 의정활동보고서를 통해 법안 발의를 주요 활동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대표발의와 공동발의 건수를 같이 기재하는 식이다."의정활동 평가 기준, 법안 발의 건수로 따지면 안 돼"한 국회 보좌진은 "의원이 과거 아쉽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다시 낼 수는 있지만, 다른 의원의 법안을 재탕·삼탕해 내는 경우는 심각하다"며 "전체 발의 건수는 300건 이상인데 정작 대표발의한 건수가 0건인 경우도 '발의 건수 늘리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다른 보좌진도 "의정보고서에 통상 대표발의뿐 아니라 전체 발의 건수도 올리며 치적을 홍보하기 때문에 법안을 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시민단체가 주기적으로 의원들에게 상을 주는데, 이때 평가지표 중 하나가 발의 건수라서 건수 늘리기만 하는 문제도 생긴다"고 우려했다.국회 의정활동의 평가 기준을 정량평가에서 정성평가로 바꿔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꾸준하다. 김종석 전 새누리당(통합당 전신) 의원도 2016년 7월25일 한국규제학회와 공동으로 연 '의원입법 규제영향평가 도입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의원들의 과잉입법을 우려한 바 있다.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발의된 법안 중에는 공동발의도 많고,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 법안, 청부발의 등도 많다"며 "법안 발의 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발의된 법안 중 몇 %가 법으로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그러면서 "발의 건수만으로 국회의원의 업무 능력, 업적 등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