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침입한 괴한, 곡괭이로 라디오 부스 유리창 박살… 공영노조 "국가중요시설 방호 허술"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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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40대 괴한이 '곡괭이'로 KBS 라디오 부스 유리창을 박살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 "국가중요시설에 대한 자체방호가 너무 허술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 ▲ 파손된 KBS 본관 라디오 스튜디오 창문. ⓒKBS공영노조 제공
곡괭이에 가스총까지 지닌 괴한이 난동을 부리는 데도 출동한 KBS 보안요원들이 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KBS공영노동조합에 따르면 당시 라디오 스튜디오 창문을 다 부순 괴한이 경찰차 사이렌을 듣고 자진해서 흉기를 보안요원에게 건네면서 사건이 종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 겨냥 가스총 발사도 안 해… 폭발물 테러였다면 큰일났을 뻔"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5일 오후 3시 42분경. KBS 쿨 FM '황정민의 뮤직쇼'가 생방송 되고 있는 여의도 KBS 본관 2층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 앞에 한 남성(47·A씨)이 접근했다.
건물 외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온 A씨는 가방에서 곡괭이를 꺼내 조립하더니 느닷없이 오픈 스튜디오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A씨가 "황정민 나와"를 외치며 난동을 피우자 KBS 경비를 맡고 있는 KBS 시큐리티 소속 직원들이 출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A씨가 유리창 6장을 깨부술 동안에도 A씨 주변을 에워싸기만할 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후 A씨가 곡괭이를 건네며 범행을 멈추자, 그제서야 A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출동한 경찰에 인계했다.
당시 상황이 찍힌 CCTV 영상을 살펴본 KBS공영노조 관계자는 "괴한이 곡괭이로 스튜디오 창문을 다 부수고 난 뒤에도 시큐리티 요원들은 괴한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고 묘사했다.
이어 "괴한이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시큐리티 요원은 눈을 돌려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면서 "요원들은 괴한이 곡괭이를 끌고 다니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제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괴한이 흉기인 곡괭이를 자진해서 포기한 뒤에야 요원들은 괴한을 따라가며 어쩔지 몰라했다"며 "한 요원은 상황이 다 끝난 뒤에서야 뒤늦게 방패를 들고 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한 보안요원, 상황 끝나자 방패 들고 오기도"
이 관계자는 "통상 이런 종류의 테러사건이 벌어질 경우 KBS 시큐리티 요원들은 생방송시설 내부 방어조, 유인조, 제압조, 체포조 등의 4개조로 나뉘어 범인을 유인·제압하고 체포하는 방어전술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해지는 데도 어느 요원 하나 가스총을 발사하거나 전자봉 혹은 방패 등으로 제압하며 범인을 체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며 "만일 범인이 폭발물 등을 휴대하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KBS 건물은 현행 통합방위법상 대통령령 제28호에 따라 국가중요시설 가급으로 분류되는 만큼 철저한 방호계획이 필수적인데, 이번 사건으로 KBS 시큐리티 요원들의 허술한 경비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양승동 사장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시큐리티 보안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건 발생 원인과 문제점 등에 대한 감사에 즉각 돌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호·순찰 인원 줄인 KBS 경영진이 '곡괭이 테러' 자초"
반면 KBS노동조합 관계자는 "시큐리티 직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괴한을 포위한 뒤 침착하게 설득해 곡괭이를 회수할 수 있었다"며 "자칫 괴한이 흥분하면 더 위험한 상황까지 번질 뻔했지만 침착한 대응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시큐리티 요원들을 두둔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사측이 지난해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방호·순찰 인원을 줄이고, 비상호출장치만 남겨놔 이런 초유의 사고를 자초한 것"이라며 "'연구동 몰카 사건'에 이어 또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청사 보안'을 허술하게 운영한 사측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한편 KBS는 시큐리티 요원들이 괴한을 제지하는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공영노조의 지적에 대해 "모든 과정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마련해둔 '조치 매뉴얼'에 따라 진행됐다"며 "시큐리티 안전요원들은 추가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난동자를 자극하지 않고 회유해 안전한 장소로 유도한 뒤 제압해 경찰에 인계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휴대전화가 25년째 도청되고 있는데 다들 말을 들어주지 않아 홧김에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과거 치킨 배달원으로 일한 적은 있으나 현재는 무직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6일 A씨에 대해 특수재물손괴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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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괭이로 라디오 스튜디오 창문을 깬 괴한을 시큐리티 요원들이 둘러싼 모습. ⓒKBS공영노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