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오보'에 '청부보도 의혹' 이중고… KBS 직원 105명 "양승동 사장, 제3 인물 정체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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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재(35·구속) 전 채널A 기자의 구속을 결정지은 '스모킹 건'이라며 이 전 기자와 한동훈(47) 검사장의 대화 녹취를 보도한 KBS가 사전에 '외부 인물'로부터 왜곡된 녹취록 내용을 전달받아 리포트의 방향을 설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 KBS 기자들이 사용하는 '보도 정보 시스템' 리포트 입력창. 왼쪽 창에 방송용 자막이나 인터뷰 워딩 자료를 참고용으로 올려놓고, 오른쪽 창에서 본문 작업을 하는 식으로 기사 작성이 이뤄진다. (이 사진은 특정 기사와 무관함) ⓒ뉴데일리
오보 논란 일자 기사정보 삭제… 감춰야 할 비밀 있나?
22일 사내 게시판에 '검언유착 오보방송 진상규명을 위한 KBS인 연대서명'이라는 기명 성명을 올려 양승동 사장 등 KBS 경영진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던 KBS 직원 105명(이하 'KBS인 연대')은 23일 'KBS는 청부보도 여론조작 브로커에 놀아났나? 양승동 사장은 즉각 진상조사하라'는 추가 성명을 통해 지난 18일 KBS가 보도한 기사(유시민-총선 관련 대화가 스모킹건…수사 부정적이던 윤석열도 타격)에 '외부인'이 개입한 흔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KBS인 연대'는 "이OO 사회부 기자가 최초 작성하고 이OO 사회부 법조팀장이 승인한 문제의 기사는 누군가에 의해 통째로 삭제돼 현재 KBS보도 정보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없다"며 "혹시 그 기사 안에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디지털 흔적이나 감춰야할 디지털 증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KBS인 연대'는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지난 18일 '제3의 인물'이 주도한 '청부 여론조작'에 KBS가 이용당한 사건의 전말과 증거를 확인했다"며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대화 녹취록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KBS 취재진에게 왜곡된 내용을 전달했고, 이 내용이 또 다른 대화 녹취록으로 만들어져 사회부 기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제3자 '뇌피셜 코멘트' 듣고 검언유착 보도
'KBS인 연대'에 따르면 제3의 인물이 "이번 총선에서 어찌 됐든 야당이 승리하면 총장한테 힘 실리고 현 정부는 레임덕이 오고 이런 구도를 짜고 간거야"라고 KBS 취재진에게 말한 녹취록을 전달받은 담당 기자는 "총선을 앞두고 보도 시점에 대한 이야기도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썼다.
이어 담당 기자는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이 짜고 일반 민심을 한쪽으로 오도시켜서 판세를 뒤집으려 한 거거든. 일반 강요미수가 아닌 거지"라고 제3의 인물이 한 말을 토대로 "법원이 이 사건을 단순 '강요미수'가 아니라고 본 이유"라고 썼다.
또한 담당 기자는 "유시민 이름을 한동훈 검사장이 언급한 내용이 있다던데요?"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허허 그건 상상에 맡겨야지. 그런 뉘앙스는 있지만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라고 제3의 인물이 답한 것을 근거로 "KBS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기자는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등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련 취재 필요성을 언급했고"라는 문장을 작성했다.
이처럼 해당 기사가 작성되는 과정에 제3자의 '전언'이 십분 활용됐음을 폭로한 'KBS인 연대'는 ▲'뉴스 청부공작'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제3의 인물이 누구인지 밝히고 ▲이번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물론 ▲이번 보도와 관련된 책임자 전원을 직무에서 배제시킬 것을 양승동 사장 등 보도본부 수뇌부에 주문했다.
기사 쓸 때 참고한 제3의 '대화 녹취록' 있어
23일 한 KBS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클라우드 기반인 KBS보도 정보 시스템은 오직 기자들만 로그인할 수 있는데, 기사 작성 과정 중 발생한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다"며 "누가 언제 어떤 내용을 입력했고, 어떤 식으로 데스킹했는지 다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인터뷰 등이 들어가는 리포트는 좌우 두 개로 나뉜 창에 입력하도록 돼 있는데, 왼쪽 창에는 인터뷰 풀워딩이나 그림 설명 등을 입력하고, 오른쪽 창에는 방송에 나갈 기사 본문을 입력한다"고 소개했다.
이에 "문제의 리포트를 작성·데스킹한 기자도 왼쪽 창에 제3의 인물과 취재진의 대화 녹취록 원본을 붙여넣기하고, 그걸 보면서 오른쪽 창에서 기사를 작성했다"며 "완고 후 관련 자료가 저장돼 있는 상태로 승인이 이뤄져 다수가 녹취록을 열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기사의 원본은 삭제됐지만 다행히 'KBS인 연대' 측이 사본을 입수해 리포트 소스로 사용된 대화 녹취록도 확보했다"며 "다만 이 자료가 '직무상 취득한 사내 영업 비밀'에 해당할 수 있어 당장은 직접적인 공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또 다른 KBS 관계자는 "최근 KBS나 MBC 등 공영방송에 검찰 관련 취재거리를 던져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권 실세 혹은 검찰 관계자 가운데 제3의 인물이 있다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하다"고 말했다.KBS 사회부 기자 "청탁받아 쓴 기사 아냐" 반박
한편 KBS 사회부 최OO 기자는 23일 오후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해당 보도는 누군가의 하명 또는 청부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며 '청부보도 의혹'을 제기한 'KBS인 연대' 측 주장을 반박했다.
최 기자는 "저희 법조팀 보도로 인해 안팎으로 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면서도 "그동안 법조팀은 기자 개개인의 자율적인 의지와 판단에 따라 관련 정보를 축적해왔고, 그 근거도 갖고 있으며 기사 발제에 이르는 과정 역시 내부 논의를 거쳐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또한 보도 정보 시스템에서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며 "보도 이후 일부 내용에 대해 보도 당사자의 문제 제기가 있어 홈페이지 등에서 해당 기사에 대한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지했고, 불필요한 억측을 막기 위해 21일 해당 기사를 지정된 대상자만 열어볼 수 있는 '보안 기사'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