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부실 개표 시연회가 의혹 더 키워… 전문가·시민단체 참여해 재검표 실시해야
  • ▲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검정색 우산을 들고 검정색 복장을 차려입은 시민들이 '진실을 개표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선거부정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한갤러리' 회원들이 주축이 됐다.ⓒ디시인사이드 우한갤러리
    ▲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검정색 우산을 들고 검정색 복장을 차려입은 시민들이 '진실을 개표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선거부정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우한갤러리' 회원들이 주축이 됐다.ⓒ디시인사이드 우한갤러리
    지난 주말 검정우산을 든 '우붕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검정우산'은 전체주의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이들은 "진실을 개표하라"고 외치며 부정선거 의혹 규명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만 열리던 시위가 이날은 부산과 대구로 확대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사전투·개표 절차를 시연하며 선거부정 의혹 해명에 나섰지만 관련 의혹을 명백히 밝히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중앙선관위의 부실 해명이 시민들을 다시 거리로 내몬 것이다. 

    선관위가 이날 개최한 사전투·개표 시연회는 말 그대로 '시연회'에 불과했다. 100여 명의 기자를 모아놓은 자리에서 사무총장의 인사말도 없었다.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는 일절 배제했고, 기자의 질문을 뒤로 한 채 서둘러 행사를 끝내버렸다. 

    선관위 "의혹 말고 근거 가져오라"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투표와 개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아니었다. 이날 중앙선관위는 의혹과 해명이 담긴 자료집을 제작해 취재진에게 배부했지만, '외부와 통신이 불가능하다' '작은 실수에 불과하다'는 설명뿐이었다. 

    '의혹 말고 근거를 가져오라'는 선관위 관계자의 요구에는 말문이 막혔다. 이날 유훈옥 선거2과장은 "해킹이나 조작을 했다는 근거를 가져와달라. 의혹 제기만으로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는데 증명할 수도 없고 사실관계도 확인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대응을 해달라고 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판석 선거국장은 우리나라 선거 시스템은 전자시스템이 아니라고 했다. 김 국장은 "우리나라는 실물투표지를 가지고 선거를 진행한다. 통신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작한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믿겠나. 그것은 우리 선거 시스템에 기반한 문제제기가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주셔야지, 근거 없이 부정 의혹만 제기하고 그걸 해명하라고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믿을 수 있을지 기자님들께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김 국장은 '신뢰를 주셔야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책상을 내리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김 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실물 투표지를 사용한 나라에서는 선거부정이 일어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조차 우리나라가 관외투표에서 사용하는 우편투표 시행을 반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에서 "우편투표는 대규모 선거부정을 초래하며, 이를 허용하면 공화당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관위, 선거운영 부실은 "실수"

    중앙선관위는 선거운영 부실조차 사과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날 한 기자가 "부정선거까지는 아니더라도 투표지 유출이나 빵상자에 투표지를 보관하는 등 관리 부실은 확인됐는데 사과할 의향은 없는가"라고 묻자 김 국장은 "투표지 유출은 초유의 사태이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검찰에서 철저히 수사해주기 바란다"며 "투·개표 사무원이 많다 보니 일부 실수가 있었다. 좀더 꼼꼼하고 세밀하게 정비해나가겠다"고 답했다.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니라고 봤거나 사과하면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날 중앙선관위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 한 채 서둘러 공식행사를 끝냈다. 본지 취재진이 손을 들고 질문 의사를 표시했지만, 이미 한 번 질문했다는 이유로 추가 질문을 받지 않았다. 질의·응답에 응했던 김판석 선거국장, 조규영 선거1과장, 유훈옥 선거2과장 중 김 국장과 조 과장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퇴장했다. 

    '500만 명 개인정보 보유 근거' 묻자 "정확한 조항은 기자가 찾아보라"

    본지 취재진이 행사장에 남아 있던 유훈옥 과장에게 다가가 '선관위가 5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보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언가'라고 묻자 그는 "공직선거법에 규정이 있다. 500만이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라"고 답했다. '정확하게 어느 규정에 그런 근거가 있느냐'고 재차 묻자 유 과장은 "기자가 찾아보라"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본지 취재진과 유 과장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일어났다.

    현재 컴퓨터 시스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표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선관위가 이들 전문가를 초청해 다시 해명의 자리를 만들면 된다. 중앙선관위가 부정선거를 방치했거나 스스로 조작에 나섰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만에 하나 통신을 통한 조작이 있었다면 선관위가 그것을 인지했을 수도 없다. 그런 만큼 시민단체와 국가기관이 힘을 모아 공동으로 의혹을 규명하면 될 일이다. 시민단체로부터 검증위원을 추천받고 몇 개 선거구를 골라 이들과 함께 재검표하면 된다. 

    선관위, 부실해명에 그치면 또다른 의혹 당사자 될 것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공동대표인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선거는 개표와 동시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검증까지 마쳐야 비로소 완료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가 선거부정 의혹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지속된 요구를 시연회라는 홍보행사 한번으로 묵살하려 한다면, 검증책임을 회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두고 더 큰 의혹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