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재규는 의인도 영웅도 아니다'…영화계 '김재규 미화' 움직임에 '경종'
  •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국사범(國事犯)'인 김재규를 마치 '영웅'처럼 묘사해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책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도서출판 해윤이 펴낸 '김재규는 의인도 영웅도 아니다'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20여년간 6·25전쟁, 국군발전사 등을 연구해온 남정옥 박사의 역작이다.

    군사학자답게 전후 건군 과정과 현대사를 꿰뚫고 있는 저자는 "김재규는 영화처럼 5.16혁명의 모의자나 참여자도 아니고,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장군과 함께 총알이 난무하는 한강교에 서 있지도 않았다"며 "그런 사람이 영화에서 5.16혁명을 주도한 사람으로 그려진 것은 역사의 진실과 가치를 부정하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6.25전쟁 당시 주로 후방의 예비부대를 전전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심으로 '출세 길'이 열린 김재규를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과 함께 거사를 같이 한 혁명지도자의 반열에 올려놔 '부마사태'를 전후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신랄히 비판하는 장면을 연출했다"며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시해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오인하도록 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저자는 전쟁을 치르면서 이렇다 할 전공을 못 세운 김재규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시키고, 호남비료사장을 시작으로 6사단장·6관구사령관·보안사령관·3군단장·국회의원·중앙정보부 차장·건설부장관·중앙정보부장 등 분에 넘치는 요직에 앉힌 것은 순전히 '정'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애당초 경북 선산군 출신으로 자신과 고향이 같은 김재규를 막내 동생처럼 대해왔고,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는 이종찬 장군이 김재규를 추천하자, 그렇지 않아도 고향 후배로서 동생처럼 여기던 김재규를 능력을 떠나 중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정희, '동향 후배' 김재규를 막내 동생처럼 아껴"

    이 책에는 박 전 대통령이 생전 김재규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일화가 실려 있다.

    박정희 장군이 동향 후배인 김재규를 특별히 자신이 지휘하고 있는 5사단으로 불러 연대장을 맡겼는데, 어느 날 56연대 병기 창고에서 불이 나서 연대 주요 병기가 모두 불에 타버린 커다란 사고가 났다. 연대장이 옷을 벗을 정도의 대형 사고였다. 사색이 된 김재규는 박정희 사단장에게 가서 "각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큰 사고를 책임지고 연대장 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보고를 받고 있던 박정희 사단장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김재규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던 사단장 차에 김재규를 태우고 사단장 공관으로 갔다. 공관에 도착하자 박정희 장군은 양주병을 꺼내들고 맥주잔에 술을 가득 따른 다음 김재규에게 줬다. 김재규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으나 죄인이 된 몸이라 꼼짝없이 마셨다.

    그렇게 해서 연거푸 두 잔을 마신 김재규는 쓰러졌다. 김재규가 술에서 깨어보니 캄캄한 밤중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은 사단장 침대에 누워있고, 박정희 장군은 옆의 부관 방에서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박 사단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을 먹으러 온 김재규에게 또 다시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 붓고, "입을 떼지 말고 마셔"라고 했다. 밤중에 똥물까지 토해낸 김재규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또 마셨다. 그러던 중 사단 참모장이 와서 "각하, 준비가 다 됐습니다"라고 하자, 박 장군이 김재규에게 "연대장은 이제 가봐"라고 했다.

    그때 김재규는 "이제 옷을 벗고 나가라는 것이로구나"하고 체념하고 연대장실에 들어가니 군수참모가 “어제 화재로 불에 탄 화기들은 모두 각 연대와 타부대의 협조를 받아 충당했고, 소소한 장비는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해 채워 놓았습니다. 병기고는 밤새 전 장병이 동원돼 깨끗이 완성시켜 놓았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이에 김재규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처벌받아 마땅한 나를 사단장 각하는 이렇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백골난망, 이 은혜를 입고 사나이로서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김재규와 박정희 전 대통령 간에 얽힌 '비화' 외에도 5.16혁명 당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보낸 서신과 10.26 사건을 수사한 합동수사본부의 최종 수사 발표문, 김재규에게 사형을 언도한 군사재판부의 판결 이유 등이 부록으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