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등 기사를 주장 근거로 활용… 법조계 "증거능력보다 증명력에 문제 있을 수 있어"
  • ▲ 지난해부터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모펀드 비리' 의혹의 정경심씨 등 사회적 주목을 받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뉴데일리 DB
    ▲ 지난해부터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모펀드 비리' 의혹의 정경심씨 등 사회적 주목을 받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뉴데일리 DB
    "2017년 11월 당시 (관련) 생산공장이 착공됐고, 이미 기사가 났기 때문에 정보는 만들어진 상태였다. (음극재 부분은 내부 정보가 아니라) 공개된 정보라는 것이다."(2020년 2월5일 '사모펀드 비리' 의혹 정경심씨 3차 공판기일 중 변호인 측 발언)

    "서증조사됐다고 해서 혐의가 입증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유감이다. △△신문 기사는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는 것일 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시했다는 내용이 없다. 재판부가 판단해야 할 부분 같다."(2019년 7월12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 14차 공판기일 중 변호인 측 발언)

    법정에서 언론기사가 증거로 제출될 때가 종종 있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의 재판에서 주로 이 같은 장면이 목격된다. 기사 내용을 통해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알았고, 피고인 범죄 결과 이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는 취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명예훼손의 경우 기사 직접 증거 가능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씨 측은 '정씨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기사를 두고 설명을 이어갔다. 2017년 당시 음극재 사업이 '기사에 나올 만큼' 알려진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를 유지하는 검찰 측 사정은 조금 다르다. '양 전 대법원장 지시로 헌법재판소를 겨냥한 기사가 실제로 나왔다'는 부분을 입증하기 위해 기사를 증거로 냈다.

    일각에서는 기사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의구심을 표한다. 기사에 기자 개인의 견해가 가미된 경우 혹은 기사 자체가 오보일 가능성 등의 이유에서다.

    물론 기사가 '직접증거'로 사용되는 경우는 있다. 기사로 인해 명예가 훼손된 피해자가 기자를 고소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명예훼손(형법307조)·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형법309조) 등에 대한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명예를 실추시킨' 그 기사가 직접증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이 외의 재판에서는 기사가 직접증거로 활용되기 어렵다. 기사가 증거로 제출돼도, 보통 '간접적인 증거'로 사용될 뿐이다. 기사 내용의 원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거나, 취재원을 직접 법정에 불러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자의 가치관이 들어간 기사, 오보, 일방적 주장을 담은 기사 등의 가능성도 있다. 기사가 증거 대신 '참고자료'로만 주로 사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국정농단 재판에서도 다수 기사 증거로

    이런 경향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조금씩 바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의혹의 최서원씨 등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1심 법정에 제출된 증거 목록 중에는 기사가 상당수였다. '최서원씨 딸 후원 관련 언론보도 출력물(2016년10월12일자)' '딸 독일 연수에 승마협회, 거액 지원 중장기 로드맵 수립 기사(2016년10월13일자)' 등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판단 당시에도 다수의 기사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법조계는 기사를 되도록 '참고자료용'으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기사의 증거능력이 자주 인정되지 않았다는 설명을 하는 법조계 인사도 있다.  

    강태근 법률사무소 '신록' 변호사는 "과거에는 언론기사가 주로 참고자료로만 제출된 경우가 많았고 증거로 제출돼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은 사례가 많지 않다"며 "기사 자체가 직접증거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기사 내용의 출처가 확인이 안 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가령 기사에 담긴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을 법정에 불러야 하는 경우 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강 변호사는 다만 "정경심 측 변호인단이 '음극재 사업 등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것 아니다'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기사를 증거로 제출한 경우, 이는 '(그 사업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공지의 사실인가'라는 부분을 다투기 위함이라면 의미는 있을 수 있다"며 "이 때에도 언론에 알려진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보도 이후 또다른 정보를 얻었을 수 있는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사의 증거능력을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되도록 참고자료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기사가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 기사가 어느 정도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실로 인정할 수 없고 추측성 기사, 의혹을 보도한 기사 등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기사를 참고자료가 아닌 증거로 사용할 때는 그만큼 법원에서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공인(公人) 관련 사건을 직접 담당한 검찰 출신 법조인도 기사는 되도록 참고자료로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 법조인은 "기사가 증거가 되는 경우는 통상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명예훼손 사건'이다"라며 "그 외의 사건에서는 (기사를) 참고자료로 제출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만일 언론기사가 법리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판사가 본다면, 간접증거로는 사용될 수 있다"면서도 "예를 들어 기사 내용의 로데이터(raw data)를 판사 등이 못 보거나 그 로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 기사 내용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다만 "언론기사의 진위 여부가 확정이 안 된 경우 위험성은 있을 수 있지만, 검찰이나 변호인 측이 자기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 증거로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