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회 넘은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유도신문, 추측성 증언 등 검찰-재판부 '한통속'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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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70·사법연수원2기) 전 대법원장 재판이 13일 기준, 51회까지 진행됐다. ⓒ정상윤 기자
"증인이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것 아니냐' 이렇게 묻는 건 유도신문이다. 수사할 때에야 가능하겠지만, 법정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지난 10월18일 37회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헌재) 파견판사에 대한 검찰의 주신문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이 이의를 제기한 발언 중 일부다.'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에서 유도신문 지적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추측성 증언, 사실관계가 아닌 '의견'을 가미한 증언도 난무한다.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박병대(61·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 재판에서 검찰의 주신문 질문에 대해 법조계에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다.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재판연구관 등이 지금까지 주요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임종헌(60·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실무진의 지시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작성에 '관여'했다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은 검찰이 주장하는,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개입' 혐의의 증거로 지목된다. 증인들과 임 전 차장 등 실무진 간 연결고리, 나아가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개입 여부가 관건이다.검찰, 증인 상대로 '마구잡이' 유도신문문제는 검찰의 유도신문이다. 유도신문은 신문하는 측에 유리한 내용의 답변을 암시하면서 하는 신문을 말한다.검찰은 10월18일 37회 공판에서 문성호 전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을 두고 최희준 판사를 신문했다. 당시 검찰 측은 2015년 9월15일 헌재가 심리 중 주요 사건 문건을 제시하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문성호가 작성한 이 문건을 확인했는데, (중략) 문성호는 증인으로부터 받은 내부정보를 바탕으로 (이 문건을) 작성한 것인가"라고 물었다.양 전 대법원장 측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다. '증인이 이 문건을 당시 봤는지 먼저 물어보고 질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유도신문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돌아온 검찰 측 답은 "이해 못하겠다"였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차 "증인께서 당시 행정처에서 작성됐다는 보고서를 전혀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것 아니냐 이렇게 묻는 건 유도신문"이라며 "수사할 때에야 가능하겠지만 법정에서 허용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박남천 부장판사는 '증인이 경험하지 않은 사항을 검찰이 질문했다'며 변호인의 이의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38회 공판에서도 통진당 해산 관련 검찰 측 질문을 두고 "질문 마지막에 증거의 내용을 계속 읽으시면서 한 방법은 거의 유도신문에 가까워서 그대로 허용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재판부가 검찰의 질문을 수정하는 상황도 목격된다. 지난 11일 50회 공판에서의 일이다. 검찰 측은 김세윤 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을 상대로 '2015년 9월 무렵 감사위원회 규칙이 제정돼 운영되는 것을 박병대 당시 처장 등이 알았는가'라며 곧바로 "(관련) 보고서에는 '대법원장님께는 미보고 상태'로 기재돼 있는데, 원칙적으로 보고 대상인데…"라고 말했다.재판부, 질문 수정 유도하기도… "추측했다" 추측·의견 포함 증언 반복그러자 박 부장판사는 "자, 123항 질문도. 주신문할 때는 '대법원장 미보고 상태'라고 기재돼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정 답변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 "증인이 경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하도록 하는 질문이 아니라서 제한한다" "검사님, (질문 중) 앞의 것을 전제하고 물어보겠다고 하면 먼저 확인을 하시죠" 등 검찰의 질문을 수정하기도 했다.증인들의 추측·의견을 더한 증언도 반복된다. 이들의 재판 증인으로 법정에 선 전·현직 판사들은 "과거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그럴 거라고 추측했다" 등의 증언을 내놓기 일쑤다. 이종혁 전 연구관, 심준보 전 재판연구관,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 파견판사, 김종복 전 사법정책심의관, 문성호 전 사법정책실 심의관 등이다.이종혁 전 연구관은 9월27일 31회 공판에 나와 " 이(전교조 재항고) 사건은 여러 차례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모든 방향이 일단 위헌 제청을 이유로 한 집행정지가 대단히 부당하다는 전제에서, 교원노조법 (2조가) 합헌이라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이런 형식의 보고서는 저게 처음이었고, (중략) 특별한 보고서인가 싶어 보고 대상이 아마도 (양승태) 대법원장이거나 (법원행정처) 실장 등 높은 분이 아닐까 추측했다"고 증언했다.또 "전교조 판결의 전제가 된 교원노조법 2조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을 선임 지시에 따라 검토했는데, 선임이 2015년 6월 대법원장 지시라고 했고 직접 지시를 들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는 교원만 조합원으로 본다는 교원노조법 2조다. 헌재가 2015년 5월28일 이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하자, 대법원은 법원의 판단 여지가 제한된다고 우려했다.심준보 전 재판연구관은 10월11일 35회 공판에 나왔다. 검찰 측은 2013년 12월4일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통보처분 사건 관련 보고서를 두고 질문을 이어갔다. 심 전 연구관은 "검찰 조사 중에도 말했듯 5년이 지나 전혀 기억이 안 나고, 행정처 누군가가 부탁했겠지만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통진당 행정소송결과 보고문건과 관련, 이규진 실장과 임종헌 차장이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보고했는지 알았느냐는 질문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만 답했다."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10월18일 37회 공판에 나온 최희준 전 헌법재판소 파견판사도 비슷한 취지의 증언을 내놨다. 최 판사는 2015년 4월12일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확인 및 향후 대책 대외비 문건'에 대해 "내가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2015년 11월 통진당 관련 결과 보고문건 관련 "당시 이규진 양형실장이 문건을 양 대법원장과 박 처장에게 보고한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검찰 측 질문에 "보고했다는 말을 한 기억은 없고, 이규진 실장이 상급자에게 보고를 했겠거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전 판사는 2015년부터 헌재로 파견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동향보고 등 헌재 내부 사건이나 정보를 이규진 양형실장 등에게 전한 인물이다.양 전 대법원장 측은 40회 공판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서증조사 중 "법정에서 검사가 제시한 조서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추측, 의견에 불과하다"며 "다른 여러 증인에게서 추측성 진술이 많이 있었는데 검찰 측의 교묘한 유도신문이나 확인되지 않은 게 들어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