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확보·조국 수사 연기·검찰에 부담 지우기… 법조계 "건강 핑계 조사 거부, 고도의 지연전략"
  • ▲ 정경심 동양대 교수. ⓒ정상윤 기자
    ▲ 정경심 동양대 교수. ⓒ정상윤 기자
    '조국 일가'의 각종 의혹을 주도했다는 의심을 받는 조국(54)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가 구속 이후에도 검찰 조사에 비협조적인 모습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에도 1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조서 열람으로 눈총을 받았던 정 교수는 구속 이후에도 건강문제 등을 호소하며 검찰 소환에 수시로 불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가 이같이 '시간끌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법조계에서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정 교수가 고도의 지연전략을 쓴다고 봤다. 검찰 수사는 물론 향후 이어질 재판까지 염두에 둔 정 교수 측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변론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고 △조 전 장관 소환 등 전반적 수사 일정을 늦춰 △수사 장기화로 검찰에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고형곤)는 5일 정 교수를 불러 변호인 입회 하에 조사 중이다. 검찰은 전날에도 정 교수를 소환하려 했지만 정 교수가 건강문제로 출석이 어렵다는 처지를 밝히면서 조사가 미뤄졌다. 정 교수 조사는 지난 2일에 이어 사흘 만이다. 정 교수는 이날로 구속 13일째였지만 조사받은 것은 다섯 차례뿐이다. 이 중 두 차례는 정 교수의 요청으로 조사가 도중에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①재판에서 주장할 '변론 준비시간' 확보

    정 교수는 검찰 조사에서 사실상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전방위적 압수수색으로 증거가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정 교수는 향후 이어질 재판에서도 혐의를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정 교수가 수사지연전략을 쓰는 데는 재판에서 검찰과 다툴 변론을 준비할 시간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교수가 받는 혐의는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투자 의혹, 증거인멸 등 크게 세 가지다. 지난달 21일 검찰이 청구한 정 교수의 구속영장에는 이들 세 가지 의혹에 대해 11개 혐의가 적시됐다. △업무방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 작성 공문서 행사 △위조 사문서 행사 △보조금관리법 위반 △업무상 횡령 △자본시장법상 허위신고 △자본시장법상 미공개 정보 이용 △범죄수익은닉법 위반 △증거위조 교사 △증거은닉 교사 등이다.

    혐의가 워낙 많은 데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해 조 전 장관의 동생과 5촌 조카 등 조국 일가의 인물이 다수 얽힌 사건이다 보니 변론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 고위 법조인은 "수사와 재판 절차가 지연될수록 정 교수 측은 그 시간 동안 무죄 주장에 대한 논리를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서 "이처럼 건강문제와 조서 열람으로 시간을 끄는 상황은 일반적인 형사사건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특혜성으로도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건강문제와 관련해서는 정 교수가 보석 청구를 계획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법조인은 "건강문제를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구속 상태로 수사받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구속적부심은 영장이 발부되면 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향후 보석을 청구하려는 계획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②조국 전 장관, '본인 수사'도 늦춘다

    정 교수에 대한 조사가 지연되면서 검찰의 최종 목적이기도 한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도 덩달아 늦어진다. 검찰은 정 교수의 구속만료일이 오는 11일이라는 점을 고려해 그 안에 조 전 장관을 소환조사하고 혐의를 확인한 뒤 정 교수를 추가 기소할 예정이었다. 또 정 교수의 기소 이후에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도 이어간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검찰의 계획도 정 교수의 지연전략으로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검찰은 현재 조 전 장관의 뇌물 혐의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조 전 장관 뇌물죄 입증의 핵심은 정 교수의 주식투기 행위를 조 전 장관이 사전에 인지했는지 여부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조 전 장관이 부인의 투기행위를 알았다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은 것으로 공직자윤리법과 함께 뇌물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조 전 장관의 뇌물 혐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 교수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비공개 소환이긴 하지만 전직 장관이었던 조 전 장관을 여러 번 불러 조사하는 것은 검찰로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정 교수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검찰은 조 전 장관의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다. 

    ③이어지는 '검찰 압박'… 수사 지연될수록 검찰은 '부담' 

    정부와 여당, 여론의 검찰 압박이 지속된다는 점도 정 교수가 시간을 끌수록 유리해질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 재직시절 출범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최근 검찰개혁안을 연달아 내놨다. 발표된 개혁안 중 △특수부 축소, 파견검사 복귀 △장시간·심야조사 제한 △공개소환·촬영 전면 금지 △검찰의 내사·피의사실·수사상황 공개 금지△부당한 별건수사, 수사 장기화 금지 등은 조국 일가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으로 해석된다. 

    여권 주요 인사들의 구두 압박도 이어진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조국사태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이번 일은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오만한 권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검찰개혁을 향한 우리 국민들의 열망도 절감하게 됐다"며 검찰을 다시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조국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조용히 수사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은 적절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인근 여의대로에서 '제12차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이 단체는 검찰이 '조국 수사'에 착수한 이후부터 '검찰개혁'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촛불집회를 개최한다. 이 단체는 지난달 5일 서초동 집회에는 총 3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검찰개혁에 지지부진한 국회를 압박하겠다며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이어나간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사 장기화는 검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정 교수는 법무부의 검찰개혁안에서 인권 관련 부분이 자신부터 적용되는 부분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