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론자’ 권영빈 중앙일보 前사장의 '변심'…저서 '나의 삶 나의 현대사'서 회고
  • ▲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이 발간한 저서  ⓒ출판사 '살림'
    ▲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이 발간한 저서 <나의 삶 나의 현대사> ⓒ출판사 '살림'
    “나는 햇볕론자였고 ‘퍼주기’ 주창자였다. 북을 통족의 가슴으로 보듬고 개혁 개방 노선으로 유도한다면 서로의 적대관계는 개선되고, 그것이 통일로 가는 멀고도 바른길이라고 생각했다.”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은 이번에 발간한 저서 <나의 삶 나의 현대사>에서 4차례 방북 취재기, <중앙일보>와 북한의 밀회 등을 상술했다. 그의 경험을 통해 현 정권 대북정책에 대한 시사점도 제시했다. 

    권 전 사장은 광복 후 공식적으로 북한을 취재한 최초의 기자였다. 1996년 6월 <중앙일보> 칼럼에 “북에 식량을 보내자”며 우파 언론으로선 최초로 ‘퍼주기’ 글을 쓴 기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1997년 구성한 ‘북한문화유산답사단’의 실무 책임자를 맡으며 그의 신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북한문화유산답사단은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당시 오랫동안 구상한 대북 민간사업의 일부였다. 

    성금 보냈는데 배달사고… 北 "다시 보내라" 적반하장

    발단은 ‘北으로 보낸 <중앙일보> 성금의 증발’이었다. 그는 “1996년 겨울, 베이징에서 만난 전금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부위원장이 ‘쌀 보내기 성금’을 부탁했다. 나는 그대로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에게 보고했고 결론은 성의를 보이자는 쪽으로 모였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성금이 전달되지 않았다, 다시 보내라’는 통지가 왔다”고 했다. “영수증을 받을 일이 아니라 마카오에서 돈이 담긴 ‘골프채 통’을 넘기는 것으로 성금 전달이 끝났는데, ‘이창희 사무장이 들고 튀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더욱 가관은 ‘다시’ 성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금을 다시 보냈다. 그런데 방북사업이 끝난 1년 뒤 쯤 이창희가 (미국에서) 서울에 와 면담을 요청했다”며 “이창희 명의로 성금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 국세청에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리라 예측하고 미리 성금 일부를 챙겼는데, 세금이 그보다 훨씬 많이 나왔으니 <중앙일보>가 보전하라는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에 이런 낯 두꺼운 자들이 널려 있음을 언론보도를 통해 늘 봤음에도, 내가 이런 자와 상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다”고 회상했다. 
     
    홍석현-홍라희, 北이 불러서 예정없이 추가 방북

    권 전 사장은 중앙일보와 북한의 ‘밀회’를 소상히 서술하기도 했다. “98년 8월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 홍라희 삼성 리움 미술관장과 함께 방북길에 올랐다. 처음 방북 사업 협의 시작부터 따지면 3년차가 된다.” 

    책에 따르면 권 전 사장이 홍석현 사장, 홍라희 관장과 함께 한 방북은 중앙일보 차원의 4번째 방북이었다. 그는 “<중앙일보> 대표와 남한 최고 갑부 부인이 동행한 방북단에 대한 북측의 배려가 각별했다”고 술회했다. 다만 홍 사장과 홍 관장의 방북 목적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당초 중앙일보의 방북은 3차까지만 약속했다”는 그의 설명으로 미뤄 볼 때, 홍 사장과 홍 관장을 대동한 추가 방북은 계획되지 않았던 것 임을 알 수 있다. 


  • ▲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 ⓒ출판사 '살림'
    ▲ 권영빈 전 중앙일보 사장 ⓒ출판사 '살림'
    권 전 사장은 이에 대한 후일담을 지난 1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에서도 원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중앙일보 뒤에 있는 삼성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아태는 현대와 삼성 담당이 있었다"며 "현대를 맡은 쪽에서는 1998년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 성과를 거뒀다. 삼성에는 TV 조립공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당시 삼성을 담당한 김철 아태 부위원장이 권 전 사장에게 “삼성은 돌다리를 두드리며 올 듯 올 듯 하다가는 돌아선다. 어찌 그 모양인가”라며 면박을 줬다. 북한의 아태 부위원장이 대한민국 기업에 노골적으로 대북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북한 경제' 우려하는 칼럼 내자, 북한이 상하이로 호출 

    모욕적인 사건이 있었지만 홍 전 사장은 북한과의 ‘은밀한 접촉’을 이어갔다. 1998년 8월 북한문화유산답사 사업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후였다. 권 전 사장은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한 것을 두고 북한 경제 체제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의 칼럼을 <중앙일보>에 게재하자 보름 만에 북한이 홍 사장과 나를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만나자고 ‘통지’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은 만남의 이유에 대해 어떤 언질도 없이 ‘만나자’고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홍 사장은 상하이로 향했다. 홍 사장은 이종혁 부위원장을 만났고, 권 전 사장은 김철 부위원장을 만났다. 여기서 김철은 “공화국이 통일연구소에 얼마나 큰 혜택을 안겨줬는데 소장(권 전 사장)이라는 자가 우리를 비판하는 글을 버젓이 발표할 수 있냐”며 권 전 사장을 질책했다.  

    "공화국이 혜택 안겨줬는데 비판하는 글 싣나" 질책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권 전 사장은 ‘반(反)햇볕론자’가 됐다. 권 전 사장은 1999년 10월 15일 ‘주사파들의 전향’과 관련해 쓴 칼럼에서 “주체사상에 빠져들었다가 전향하는 과정을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며 “어째서 외곩의 한 눈으로 북한에 쉽게 빠져들었다가 북한에 발을 딛고 나서야 북의 실상을 알게 되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교류협력을 하고 지원해본들 북한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전쟁보다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북핵 제거를 위해 남북 화해·협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현실적이고 이성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핵과 생화학 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에 ‘우리 민족끼리로’ 접근하고 있다. 평화협정과 군사합의로 무장 해제를 진행 중이다. 국가 보위의 최종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정작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