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데이터 왜곡" 보도 이어지는데…“중국 미세먼지 저감 배워야” 대변인 논란
  • ▲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KBS 국민대토론회에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열린 KBS 국민대토론회에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이기륭 기자

    정부의 미세먼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크다. 국민 10명 중 8명가량은 중국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미세먼지를 우려하는데도, 정부는 중국을 대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국내 탓’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 경험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펴 논란을 자초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지난 4월29일 출범한 대통령 직속기구다.

    반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9일 KBS의 국민대토론회 '신(新) 만민공동회, 미세먼지 해법을 말한다'에서 나왔다. 정부 측 패널로 참여한 반 위원장은  미세먼지 원인에 대해 “중국만 탓할 일이 아니고, 국내적으로 먼저 저감노력을 해야 한다”며 “우리가 중국의 저감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기문 “중국의 저감 경험 배워야”... 국민들 ‘공분’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 등 국외요인’을 꼽은 국민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편 것이다.

    이날 대국민토론회에 참여한 택시기사·정비업자·교사·자영업자 등 일반국민으로 구성된 국민참여단 대부분은 반 위원장의 주장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반 위원장이 “중국의 미세먼지 저감 경험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근거는 중국정부의 발표다.

    류빙장 중국 생태환경부 대기환경관리국장은 지난 3월5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2013년부터 중국의 공기 질이 40% 이상 개선됐으나 한국의 공기 질은 그대로이거나 심지어 조금 나빠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반 위원장도 “중국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미세먼지 농도의) 40% 이상 절감했다”며 “우리도 그런 중국의 경험을 배워 스스로 저감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국내적으로 먼저 저감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정부가 공기의 질이 개선됐다”며 제시한 수치는 많은 부분 조작됐다고 홍콩과 중국의 복수 언론이 보도했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19일 “중국의 상당수 지자체가 그동안 데이터 조작과 부패로 거짓 모니터링 정보를 입력했다”며 “산시성 린펀시 공무원들이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53차례에 걸쳐 대기오염 측정 데이터를 왜곡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중국 닝샤자치구 스쭈이산 관리들은 대기오염관측소 주변에 살수차로 물대포를 뿌리는 꼼수를 쓴 것으로 알려졌고, 안후이성 보저우시 공무원들은 기업들과 담합해 대기오염조사 당시 공장 가동을 중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중국 광저우의 지역일간지 <난팡저우모>는 2012년부터 광저우 내에서 대기오염수치 조작 비리로 연루된 관리들만 118명이 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과 인접한 동부 연안에 총 113개의 석탄화력발전소와 227개의 쓰레기소각장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국내 유입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국제환경단체 ‘엔드콜’(EndCoal)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중국내 건설이 진행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는 총 113개로, 총설비용량(최대가능생산용량)은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 3만7773MW의 약 1.37배에 달하는 총 5만1750MW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앞으로 464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지을 계획이라는 외신보도도 있다. 지난 3월7일 국제 비영리 환경연구단체인 ‘콜스웜’(CoalSwarm)에 따르면 “중국이 2~3년내 464기에 달하는 석탄발전소를 추가로 지을 계획”이라며 “이는 한국이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78기)의 약 6배에 달하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중국정부의 발표만을 근거로 ‘미세먼지는 국내요인 때문’이라는 발언을 하는 반 위원장의 경솔함을 지적하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 지난 9일 KBS공영미디어연구소가 밝힌 전국 성인남녀 260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0.3%가 미세먼지의 주된 발생 원인으로 '중국 등 국외 요인'을 꼽았다'고 했다. ⓒKBS 유튜브 갈무리
    ▲ 지난 9일 KBS공영미디어연구소가 밝힌 전국 성인남녀 260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0.3%가 미세먼지의 주된 발생 원인으로 '중국 등 국외 요인'을 꼽았다'고 했다. ⓒKBS 유튜브 갈무리

    반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중국 등 국외요인이라는 답변이 80%가량 나왔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어떠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사실이 아니다”라며 “어떻게 국외요소가 80% 이상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주장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날 사회자의 질문은 토론회를 주최한 KBS가 발표한 조사 결과다. 이날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밝힌 전국 성인남녀 2602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0.3%가 미세먼지의 주된 발생 원인으로 '중국 등 국외요인'을 꼽았다. 국민의 75.3%는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대책을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은 공공기관 2부제, 노후차량 운행 금지, 석탄 및 화력발전소 출력 제한 등 기존 비상저감조치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과반수인 51.6%가 이러한 비상저감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답했다.

    국민 80% "미세먼지 주요 원인은 중국"... 정부 미세먼지 저감조치 신뢰도도 바닥

    ‘미세먼지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54.4%가 ‘중국과 외교적 공조를 통한 해결'이라고 답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시설의 가동률 조정’ ‘인공강우 등 신기술을 통한 해결’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국민의 80%가량은 정부의 미세먼지대책은 실효성이 없고, 과반수는 미세먼지의 주요 요인인 중국에 대한 정부의 ‘외교력’이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도 고농도 미세먼지가 공장과 석탄화력발전소 등이 밀집한 중국 동해안지대에서 나온 오염물질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지난 3월5일 “국내 고농도 미세먼지 원인의 약 80%가 중국요인이라는 사실을 대통령께 직접 보고했다”고 말했다.

    설령 중국이 미세먼지 저감에 ‘탁월한 행정력’을 발휘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미세먼지 급증의 근원인 ‘중국 내 요인’부터 해결하는 게 미세먼지 해결 기구의 수장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다.

    반 위원장은 국민 대부분이 아는 것처럼 외교력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발 ‘가짜뉴스’에 의존해 국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국민의 비난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중국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소리도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