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서울답방 무산 위기… 김정은 ‘文신뢰’ 추락 가능성
  •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시험대에 올랐다. 1차 회담에서 실질적 결과물을 얻지 못한 데 이어 2차 협상도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돼,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다.

    1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미북 간 중재자 역할을 당부했다.

    靑, 트럼프 '중재' 요청에 '운전자론' 다시 강조

    약 25분 간 이어진 양 정상간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 후 결과를 알려달라는 등 적극적 중재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전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안에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보다 심도 있는 협의를 계속해 나가자”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재차 강조하는 모양새다. 김의겸 대변인은 양 정상간 통화 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룬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과 북한 앞으로도 여러 차원에서 활발한 대화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감이 더 깊어졌다.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반도 운전자론은 문 대통령이 미북 간 중재 역할을 자임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차 미북 회담이 결렬 위기에 빠지자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비공개 정상회담을 진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형식으로 김 위원장과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 文 '한반도 운전자론' 한계 봉착

    하지만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 관측이다.

    우선 문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뢰가 지속될 지가 미지수다. 이번 협상에서 북한이 내민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가 미국에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남북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중점을 두고 미북 협상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협상 결렬 배경에 대해 “미국은 처음부터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론 안 되며 ‘플러스 알파’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우리는 영변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 게 이를 방증한다.

    때문에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신뢰도가 하락, 남북 관계도 당분간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일정이 무기한 연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번 협상 결렬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조금의 진전도 없는 상태에서 맞아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더욱 타격이 크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경제상황이 회복되면 비핵화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주장, 대북제재를 일부 완화해 왔다. 그런데 북한은 남북 경제 협력이 착수된 후에도 비핵화의 실질적 결과물을 내놓지 않았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의 주장이 힘을 잃는 대목이다.

    "대북제제 유지" 트럼프 발언에 꼬이는 신한반도체제 구상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초 문 대통령이 내세운 ‘신한반도체제’ 구상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신한반도체제의 핵심은 북한과의 전면적 경제협력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신(新)한반도 체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하겠다”며 ‘하노이 선언’ 후 남북 경협에 박차를 가할 뜻을 시사했다.

    문 정부는 이번 미북 정상회담 후 남북경협을 추동할 계획을 세워온 것으로도 알려진다. 최근에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철도·도로 관련 자료를 주고받고 연결사업을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미북 회담을 11일가량 앞둔 지난 16일 금강산‧설악산 연계 관광 사업을 목적으로 여당 의원들의 방북도 진행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제재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히면서 신한반도체제 구상의 동력이 한풀 꺾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