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학교폭력 신고했지만 당시 학폭위 안 열려…잊혀지길 기다리는 불상사 생기지 않길"
  • ▲ ⓒ청와대 청원게시판 화면 캡처
    ▲ ⓒ청와대 청원게시판 화면 캡처
    성폭행과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투신자살해 충격을 주었던 '인천 미추홀구 여중생 투신자살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딸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숨진 피해자의 아버지는 청원 게시판에서 학교와 경찰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엄정한 수사로 가해자를 처벌할 것과 학폭위를 제대로 열지 않은 학교 관계자를 징계할 것 등을 요청했다. 이 청원은 현재 청원 당일 오후 2시 30분 기준으로 3000명 이상의 참여를 받았다. 

    28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성폭행과 학교 폭력(집단 따돌림)으로 투신 자살한 우리 딸의 한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얼마 전 언론에 많이 보도됐던 성폭행과 학교 폭력으로 투신 자살한 인천 미추홀구 여중생의 아빠"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인은 "우리 딸이 살아있다면 가해자의 죄에 대한 명명백백한 증언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죽어서 없다"며 인천교육청과 경찰 측에 명확한 조사를 요구했다.

    ◆ "투신자살한 딸, 2년 전에 학교폭력 신고 했다"

    이 청원인은 "지난 7월 19일 저녁 8시 10분경 중3인 딸아이가 자기 방 창문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청원인은 "딸 친구를 통해 투신 전 동급생 3명의 이름을 언급하고 투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몰랐지만 장례식 때 친구로부터 하나 둘 씩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며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여러 친구들에게 망신을 당했다' 등의 내용이었는데 딸이 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알지 못했던 우리 가족들은 그런 일들 모두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이어 "아빠로서 어디서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몰라 우선 학교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며 "이후 경찰에서 자세한 조사를 해준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청원인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미 중학교 1학년 시절(2년 전)인 2016년 5월, 학교 전담 경찰관을 통해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고 한다. 당시 '따돌림'으로 신고됐지만 결론적으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담당교사가 '아이들과 다툼이 있었고, 화해했다'고 말해 "충분히 그 시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수긍하고 통상적인 학업상담만 한 뒤 집에 왔다는 것이 청원인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학폭위는 신고 접수가 안 된 것으로 처리, 학폭위가 열릴 수 없었다고 한다.

    청원인은 "학폭위는 결국 딸이 투신한 이후인 11월 13일, (딸 학교폭력을 신고한 지) 2년 6개월 만에 열린 셈"이라며 "그때 학폭위가 열렸었더라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지금 우리 딸이 죽지 않고 살아서 더 많은 것을 증언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후에 청원인은 인천 교육청에 학교 측의 태도에 대해 민원을 제기해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한 학교에서만 학폭위가 열리고, 다른 학교에서는 혐의없음으로 결론 났으며, 가장 나쁘다고 생각되는 학생에 대해서는 학폭위도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 경찰에 딸 핸드폰 맡겼지만… 

    청원인은 경찰의 태도에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청원인은 "딸이 죽고 난 후 딸의 휴대폰에 뭔가 남아있길 바라며 경찰에 딸의 핸드폰을 맡기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화면 패턴의 암호를 알 수 없어 딸의 휴대폰이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라는 형사의 대답을 들었다"며 "지인들에 물어 '구글 아이디로 암호를 풀 수 있다'는 정보를 형사에 문자로 알려드렸으나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다"고 적었다.

    청원인은 심지어 딸의 휴대폰을 돌려받아 암호를 풀고 난 뒤 혹시 딸의 휴대폰에서 증거가 나오면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하는지 연락했지만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경찰이 가해자 중 한 명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으로 종결하려 해,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청원인은 청원 말미에 "가해자가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명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호받아야 할 청소년인 피해자 우리 딸은 죽어서도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했다.

    청원인은 "혹시라도 직접 피해자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빨리 종결하고 잊혀지기를 기다리며 시간 끌기만 하는 불상사가 절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며 "아빠인 저는 어쩌면 늦어버렸지만 제 남은 삶을 다 내어놓고서라도 우리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같은 한 맺힌 피해자 아버지의 청원은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다. 청원 당일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3000명 이상의 청원을 끌어냈다.

    ◆ '억울함 호소' 넘쳐나는 청원게시판

    하지만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청원게시판을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생겨난 이후로 '가해자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청원은 꾸준히 올라왔다. 심지어 많은 공감을 받아 청와대의 답변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집권 후 현재까지 꾸준히 반복되는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는 다락방에서 목을 매 숨진 인천 여중생 자살 사건의 가해자 처벌 요구가 청원 답변 기준을 충족하기도 했다.

    청와대도 이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 16일 청와대 김형연 법무비서관은 '청원답변 54호'로 올라온 인천 여중생 자살 가해자 강력 처벌 요구 청원에 대해 '지난 답변'을 소개하면서 "엄벌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보호처분은 실질화해 소년범들을 사회로 제대로 복귀시키는 노력도 중요하다, 또 소년범의 예방과 교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말했다.

    또 "청원을 통해 여러 차례 국민들이 주신 의제로, 현행법과 국민의 법 감정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저희도 청원 답변을 준비하면서 관계 부처와 함께 고민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