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5천만원 들여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 "사실상 교복 규제" 우려
  • ▲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오전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 발대식을 열었다. 좌측부터 김종욱 추진단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조희연 서울교육감. ⓒ연합뉴스
    ▲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오전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 발대식을 열었다. 좌측부터 김종욱 추진단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조희연 서울교육감.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30일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을 발족했다. 11월까지 '교복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일선 학교에 배포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불편한 교복’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추진단 발족의 배경이다. “단정한 교복을 입히면 지도가 잘 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는 교육청의 설명도 가세한다.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는 '학교규칙의 기재사항‘ 항목에서, 학교 자율에 따라 교복을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인사권을 쥔 교육감의 말 한마디가 사실상 ‘지시’로 받아들여지는 일선 학교의 풍토도 무시할 수 없다. 공론화와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교복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교육감의 가이드라인, 일선 학교들은 '지시'로 인식”
    공론화 추진단은 김종욱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단장으로 외부위원 5명, 교원 4명, 학부모 2명, 학생 2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됐다. 추진단은 8월부터 10월까지 △시민의견 수렴 △숙의자료 도출 △시민 참여단 토론회 등의 과정을 거쳐 11월에 '교복 가이드라인'을 마련, 개별 학교에 안내할 예정이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교복 개선을 위해 공론화를 추진하는 곳은 서울교육청 뿐이다.

    시교육청은 "학생과 밀접한 문제에 공론화 절차를 적용해, 시민의 지혜와 역량을 교육정책에 도입하는 첫 번째 시도"라며 "공론화 추진을 계기로 정형화된 교복 및 경직된 관련 규정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청이 공론화위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교복 가이드라인'이 개별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 '학교규칙의 기재사항 등'에는 교복을 학교 자율에 따라 결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공론화'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교복 가이드라인은 안내가 아닌 하달, 즉 '교복에 대한 새로운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교육청 사정을 잘 아는 교육계 관계자 A씨는 "교복은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교육청이 공론화 추진단까지 꾸려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것은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더운 날씨 속에 아이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반바지, 티셔츠와 같은 간편복을 입게 하고 있다"며, "학교마다 사정이 다른데 교육청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을 의식했는지, 시교육청은 추진단 발족 당시 "일선 학교는 도출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자율적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복장 규정을 개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교육청이 '자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일선 학교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교장 및 교사에 대한 인사권을 갖고 있는 교육감의 가이드라인을 단순한 '안내'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A씨는 “인사권을 쥐고 있는 교육감이 어떤 안을 내놨을 때 거부할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안내라고 말하지만 '교복 가이드라인'이 나오는 순간 기준이 될 것이다. 사실상 지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교복 가이드라인' 공론화 비용, 5,000만원+α
    교육청은 '교복 가이드라인' 공론화를 위한 예산으로 5,000만원을 편성했다. 내부적으로 추가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어, 실제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A씨는 "조 교육감이 진정으로 자치와 자율을 중시한다면, 예산과 시간을 들여가며 공론화를 거칠 것이 아니라 교복 편리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학교에 안내를 하는 정도가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자치 학교'는 조희연 교육감의 정책 기조이기도 하다.

    자사고 존폐·교권 침해 심화 등 교육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교육청이 나서서 교복 가이드라인까지 공론화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공론화를 꼭 해야겠다면 우선순위를 정해, 그 사안이 무엇이고 왜 해야만 하는지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론화를 거쳐 아무리 편한 교복을 만들어도, 그것을 입는 학생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학생들이 교복 치마나 바지 밑단을 줄여 입고 있다. 일선 고등학교 교사는 "오래 전부터 그래왔지만, 멋지다고 생각하는지 교복을 줄여 입는 학생들이 있다"며 "학생들의 교복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을 한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아이들이 교복을 받으면 더 수선해서 몸에 딱 맞는 식으로 입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청와대와 교육당국은 "불편한 교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지만, 이른바 '핏'을 맞추기 위해 학생들이 교복을 줄여 입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불편한 교복을 개선한다는 취지는 인정하지만, 동시에 겉모습을 중시하는 학교 현장의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100% 준비가 돼 있는 것이 아니다. 열린 행정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며 "관련 교육도 앞으로 진행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