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汎소상공인 생존권 연대' 투쟁

     ‘범(汎)소상공인 생존권 연대’가 촛불을 들었다. 촛불은 어느 특정집단의 전매특허가 아닌 모양이다. 이 촛불은 직업적 ‘꾼’들이 ‘아지프로(agit-pro : 선동선전)’를 하고 ‘오르그(org : 조직)’를 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당사자들 스스로 타오르는 순수 화염(火焰)이다.

     투쟁대상은 자칭 ‘진보’ 정권이다. 자칭 ‘진보’ 정권은 지금 최저임금제, 소득주도 성장론이라는 걸 내걸고 자신들의 운동권 이데올로기 도식(圖式)에 현실을 꿰맞추려 하고 있다. 정권 내부에도 현실주의적 온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강경한 교조적(敎條的) 분파가 경제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모양새디. 

     그들의 경제정책 아닌 ‘변혁 이데올로기'는 소상공인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있다. 그걸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아, 소상공인들 본인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그렇게 부르짖고 있으니 그걸 ‘가짜 뉴스’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이의(異意) 있으면 당장이라도 광화문에 나가 그들 앞에서 “야, 이 거짓말쟁이들아” 하고 한 번 외쳐보면 될 것 아냐? 

     전이나 지금이나, 동쪽에서나 서쪽에서나, 좌파 중에서도 ‘교조적 극단파’엔 경제 합리성이라는 발상 자체가 없다. 그들은 시장 자유주의와 철학적 자유주의 자체를 허물고 그것을 국가 통제적 체제로 대치하는 정치적 목적에나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하다가 사회주의는 망했고, 스스로 21세기 사회주의임을 자처하던 중남미의 핑크 물결(pink tide)도 이젠 다 망했다. 베네주엘라의 차베스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웃기는 것은, 그렇게 망하면서도 교조적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끝까지 시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를 하다가 경제가 나빠지면 그것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 ‘경제’라는 게 반동(反動)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들 식 사고(思考)다. 1950년대 헝가리의 스탈린주의자 라코지가 만약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을 파려다 실패하면 그건 라코지의 잘못이 아니라 부다페스트의 땅이 반동이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래서 우리 소상공인들이 투쟁의 횃불을 들어도 그들을 울게 만든 당사자들은 지신들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의로움)에 반대하는 소상공인들에게 ‘적폐’의 기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기들끼리는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집권 2년도 안 돼 소상공인이라는 국민들에게 등 돌림 당한 자칭 ‘진보’ 정권. 최선의 길은 덩샤오핑의 중국과 도이모이(개혁)의 베트남이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더 선생 급(級) 좌익이면서도 왜, 어떻게, 시장경제를 “자본주의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초기 사회주의 국가도 채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했는지, 그 경위를 한 번 돌아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자칭 ‘진보’는 그만한 유연성과 현실감각도 없어 보인다. 그들은 대단히 오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곤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피차에게 불행한 일이다. 갈 데까지 가봐야...?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2018/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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