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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전사(戰史)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라고 기록될 만큼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국군전사자가 신원이 확인되어 66년 만에 가족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1일, 1950년 8월 미 7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故 임병근 일병(1930. 5. 5. 생)의 유가족 집을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은 태극기 등을 부산에 거주하는 장조카 임현식(71)씨에게 전달했다.
국유단은 故 임 일병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건 천우신조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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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임일병을 유해를 유가족에 전달하는 국유단.ⓒ국방부
북한 함경남도 장진에서 전사한 임 일병은 북․미합의에 따라 美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 JPAC(Joint POW/MIA Accounting Command) :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現 DPAA 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가 2000년부터 북한 지역에서 미군 유해 발굴작업을 진행하던 가운데 2001년에 발굴되어 하와이에 있는 JPAC 본부로 옮겨졌다.
신원확인을 위한 정밀 감식 과정에서 12위가 아시아계로 확인되었고 국유단이 JPAC으로 이동해서 한․미 공동 감식을 진행한 결과 국군전사자로 최종 확인되어 2012년 5월 국내로 봉환되었다. 유해가 이동한 거리는 21,000km로 부산~장진호~판문점~하와이~서울로 왔다.
만약, 북한이 한국군 유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미군 유해만 반출한다는 합의 조항 때문에 유해 반출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외조카 권순영(79)씨는 “66년 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유해로나마 다시 외삼촌을 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라며 촉촉해진 눈시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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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진호 전투당시 미군.ⓒ유튜브 영상캡쳐
신원이 확인된 임 일병의 유해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앞서 장진호 전투에서 함께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故 김용수․이갑수 일병처럼 6월 중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 될 예정이며, 남은 9위의 유해는 신원확인 시 까지 국유단 유해보관소에 안치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 이학기)은 “아직도 DMZ 이북에 4만여 위의 호국용사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북한과의 협의만 이뤄진다면 언제든지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발굴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한편, 2012년에 북한에서 발굴된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첫 봉환한데 이어 오는 28일에는 미측(JPAC/現 DPAA)이 북한에서 발굴한 유해 중에서 한․미가 추가적으로 공동 감식을 진행하여 국군전사자로 확인된 15위의 유해와 국유단이 지난해 11월 美 2사단이 참전했던 강원도 양구 백석산 일대에서 발굴한 미군 유해 2위를 최초로 상호 봉환하는 뜻 깊은 행사가 국방부장관과 연합사령관 주관으로 연합사 연병장에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