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곳곳에서 당선 안정권 요구… 다 들어주면 대표 몫 없어
  •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지난 20일, 중앙위원회 파행이후 좀처럼 사퇴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는 오후 2시 기자회견에서 거취를 문제를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지난 20일, 중앙위원회 파행이후 좀처럼 사퇴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는 오후 2시 기자회견에서 거취를 문제를 정리할 것으로 전해졌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셀프공천' 논란을 빚었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비례대표 2번을 다시 제안받았지만 여전히 사퇴하겠다고 버티면서 강공을 펼치는 모양새다.

    앞서 김종인 대표는 지난 20일, 중앙위원회가 비례대표 안을 거부하자 당무를 거부하고 사퇴를 시사했다. 김 대표는 "그따위로 대접하는 정당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중앙위는 김종인 대표가 당무를 거부하자 기다렸다는 듯 투표를 통해 비례 순번을 바꿨다. 그 과정에서 비대위는 김종인 대표를 14번으로 재배치했고, 김종인 대표가 당선권에 배치한 인사들이 뒤로 밀려나거나 빠졌다.

    비대위는 비례대표 원안을 수정한 것에 대해 뒤늦게 사과에 나섰다.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히며 김종인 대표를 달래기에 나섰다. 비례대표 4명의 순번도 김 대표에 위임하기로 해 2번에 배치될 수 있도록 약속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비례대표 2번을 비워두라"며 여전히 사퇴를 암시하는 말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종인 대표가 자기 자리를 보전받았음에도 버티는 이유는 뭘까.

    김종인 대표는 비록 총선을 위한 구원투수로 영입됐지만, 그는 총선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그는 평소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문재인 대표 역시 김종인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히자, "비례대표 2번은 당연하다. 대선 때까지 역할을 해주셔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친노·운동권보다는 보수적 성향에 가까운 인사들을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했다. 이른바 '김종인계'가 등장할 수 있는 비례대표 구성을 한 셈이다. 이렇게 되면 총선이 끝나도 당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김종인 대표가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문재인 대표는 전통 지지층을 껴안는 투트랙 전략이 가능하다.

    김종인 대표는 지난 22일 문재인 전 대표에게 "당신들 표만 갖고는 총선 승리도, 정권 교체도 안 되니 당의 확장성을 위해 그렇게 비례대표 명단을 짠 게 아니냐"고 말했다.

  •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안에는 그간 더불어민주당 인사들보다는 보수적 색채를 지닌 인사들이 많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안에는 그간 더불어민주당 인사들보다는 보수적 색채를 지닌 인사들이 많았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실제로 김종인 대표 안에서 당선권에 이름을 올렸던 인사들 다수에게서 당 정체성 논란이 벌어졌다.

    김종인 대표가 1번으로 제시한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위원을 지냈고,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야권으로부터 2012년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숙희 서울시 의사회장 역시 그간 더민주가 추진해온 무상교육과 무상의료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운열 서강도 교수는 론스타를 옹호했다는 논란이 나왔다.

    그러나 당내 다수의 조직이 이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사무직 당직자 노동조합, 을지로위원회, 청년위원장협의회 일동, 전국농어민위원회 등이 일제히 김 대표의 비례대표 안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사무직 당직자노동조합은 "노동, 청년 및 기타 부문에 대해서는 대다수 남녀 2명씩의 후보자를 경선에 참여시키고 있다"며 "유독 당직자 부문의 후보자만 1명을 경선 후보로 선정한 점은 당헌 당규의 규정에도 어긋나 있다"고 설명했다. 당헌과 당규에 따라 각 부문에서 2명씩을 비례대표에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민주가 당선 안정권을 20번 정도로 보고 있음을 감안할 때, 각 부문에서 2명씩 경선에 참여시킨다면 대표가 임의대로 배치할 수 있는 몫은 거의 없어진다. 비대위가 수정한 비례대표 안에서 김 대표 몫은 고작 4명이었다.

    때문에 김 대표로서는 총선 이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20대에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 배수의 진을 치지 않으면 공천권 행사 이후에는 급격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단 총선이 끝나면 이후 정치권의 무게중심은 일제히 대선에 쏠릴 수밖에 없다"며 "김 대표는 그간 대선 정국에서 확실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해왔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대표는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