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정치 신인도 '호남'내세우는데… 야당은 호남서 된서리 비판
  • ▲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부천 소사에 출마를 선언한 강일원 전 청와대 행정관은 '친박'이자 '호남'인사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이번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부천 소사에 출마를 선언한 강일원 전 청와대 행정관은 '친박'이자 '호남'인사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4.13 총선을 앞둔 정치 신인의 키워드는 단연 '친박'과 '호남'이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약한 정치 신인들은 유권자의 귀에 익숙한 단어인 친박과 호남을 자주 입에 올린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유권자에게 자신을 각인시켜야 하는 정치 신인으로서는 개인을 알리는 것보다 이미 익숙한 단어에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한 당의 강세가 확실하지 않은 수도권에서 호남과 친박의 키워드는 달콤한 유혹이자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다. 어디까지나 '잘 쓰면 약'이고 '못 쓰면 독'이라는 것이다.

    ◆ '호남'은 '진보 정통성'의 대명사? 글쎄…

    정치권에서 '호남' 마케팅은 일반적으로는 야권의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으로 인식된다.

    야권에서는 '호남'을 야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너나 없이 끌어다 쓰는 단어가 됐다. 결정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분당 사태 이후, 특히 국민회의를 이끄는 천정배 의원과 국민의당을 이끄는 안철수 의원은 앞다투어 광주를 방문해 '호남'을 외쳤다. 이들은 '뉴 DJ정신'을 외치며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를 꾀했다.

    반면 여권에서는 '호남'이란 키워드는 자칫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남'을 언급하는 것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여당 예비후보도 존재한다. 부천 소사에 출마를 준비 중인 새누리당 강일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이다.

    비록 강일원 전 행정관은 곡성 출신이지만 호남에서 엘리트로 승승장구한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탓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검정고시와 방송통신대학을 거쳐 법학 박사를 마쳤다.

    그는 호남 사람들과 과감하게 소통하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했다. 강 전 행정관은 "과거에는 (호남 출신 사람들이)아무리 친해도 새누리당은 아예 이단으로 여겨졌는데, 이번에는 화기애애하게 도와주려고 오히려 신경 써주시더라"라고 귀띔했다.

    무조건 야권 정당 한 곳을 밀자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정말 지역을 챙겨 줄 수 있는 사람을 봐가면서 투표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강 전 행정관이 호남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은 수도권의 팽팽한 구도와 맞물려 여당 지지자들에게도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야당후보와의 경쟁력에서 유리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또 전직 청와대 행정관 출신으로 친박이라는 점 역시 그에게는 플러스 요인이다. 박근혜 대통령 이외에 다른 콘텐츠가 적을 수 있는 후보들과는 달리, 두 번의 부천시 기초의원 경력으로 지역 사정에 밝은 그에게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서로 전혀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호남'과 '친박'이라는 키워드가 그에게는 꼭 맞는 옷이 됐다.

    ◆ 성급한 '호남' 마케팅, 신인 아닌 당도 역풍 불면 장사 없어

    반면 야당이라 할지라도 섣부르게 '호남' 마케팅을 활용한다면 역풍은 피하기 어렵다.

    이는 정치신인 뿐 아니라 당에도 예외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DJ 3남인 김홍걸 교수를 끌어들이며 호남을 외치려다 '오히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용만 하려한다'는 비판만 마주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김홍걸 교수의 입당은 단순한 인재영입이나 우리당의 확장 차원이 아니다"라며 "우리 당의 정통성과 정신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자찬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김홍걸 교수의 입당은 본인과 가족에게 막대한 상처를 받게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계속되자 문재인 대표는 지난 26일 "지금까지 우리당이 영입을 발표한 인사들은 모두 이번 총선 출마를 전제로 해서 영입한 분들이지만, 김홍걸 교수님만 예외"라고 발을 뺐다. 불길을 서둘러 진화한 셈이다.

  • ▲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같은 당 김무성 대표와 가까워 비박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지역에서 일부 후보들이 '친박'으로 불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같은 당 김무성 대표와 가까워 비박으로 평가받는다. 때문에 지역에서 일부 후보들이 '친박'으로 불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어정쩡한 '친박'은 내심 '속앓이'

    반면 타인에 의해 '친박'으로 불리는 예비후보들은 내심 속앓이를 하고 있다.

    비박계로 분류되는 여당 후보와 대결구도를 만들기 위해 '친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경우들이 목격된다.

    경기도 포천·연천은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 대변인이 3선을 노리는 지역구다. 김무성 대표와 가까워 '비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때문에 그와 각을 세우는 예비후보엔 '친박계'라는 이름이 붙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새누리당 이철휘 예비후보다. 그는 SNS에 김영우 의원과 대결구도로 쓰인 기사를 공유하면서 친박으로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후보는 포천에서 태어나 육군 4성 장군으로 활동했다. 안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역적 이슈에서 다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친박' 프레임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나 이철휘 후보를 친박으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2012년에는 '안철수의 진심캠프'에 합류해 안보 관련 싱크탱크인 '국방안보포럼'의 공동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결국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했다. 사실상 박 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던 사람인 셈이다. 그에게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 이번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새누리당 이철휘 후보는 지난 2012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안보 관련 싱크탱크의 공동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안철수 진심캠프
    ▲ 이번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새누리당 이철휘 후보는 지난 2012년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안보 관련 싱크탱크의 공동 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안철수 진심캠프
     
  • ▲ 그는 지난 13일 SNS에 자신을 '친박계'로 묘사한 기사를 포스팅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 그는 지난 13일 SNS에 자신을 '친박계'로 묘사한 기사를 포스팅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이철휘 후보 역시 이 점을 의식한 듯,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는 사람들에게 친박이라고 하고 다닌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정치적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언론에서 친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면서 "저는 친박, 비박을 따지지 말고 포천 시민 대표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 후보는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지금 친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아는 사람이 있냐 없냐 아니냐"면서 "청와대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육군 대장까지 했으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아울러 "하여튼 비박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을 위해서 제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치신인의 호남·친박 활용법은…

    결국 총선이 다가올수록 다급해진 정치권의 일회성 이벤트는 독이 돼 돌아온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남'이든 '친박'이든 긴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설명 수 있어야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무분별한 친박 마케팅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독이 될 것"이라며 개탄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점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콘텐츠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무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