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입법마비사태 초래, 비판여론 봇물
  • ▲ 정의화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열린 여야중진의원 회동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열린 여야중진의원 회동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가 스스로 무법천지(無法天地)를 만들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가 '선거구 무효'의 입법비상사태를 초래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는 얘기다.

    2015년 끝자락이자 선거구 획정의 마지막 데드라인인 31일 국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두고 여야가 끝까지 양보 없는 기싸움을 벌이면서다.

    이와중에 야당은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 전면무효', '대통령 사과-외교부 장관 해임'을 주장하며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투쟁의 터전으로 삼는 모양새다.

    여야는 이날 오전 민생경제활성화법 등 쟁점법안 처리는 아예 포기한 채 무쟁쟁점 법안 200여개만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뒤, 오후에는 선거구 획정 논의를 위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김무성 문재인 여야 대표와 함께 마지막 협상에 나서며 타협안을 도출에 시도했다. 선거구 획정 문제와 관련해 여야 대표가 만나는 것은 이번이 이달 들어서만 아홉 번째다.하지만 비례대표 선출 방식 등을 두고 여야의 이견이 여전히 커 이번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이에 앞서 정 의장은 오전 출근길에서 1일 0시에 맞춰 자체 마련한 선거구획정 기준을 선거구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제출할 뜻을 시사했다. 여야 합의가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에 의장 나름대로의 기준안 제출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정 의장은 기준안에 대해 "(지역구) 246석 현재안대로 가는 것"이라며 "새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현행대로, 과거 합의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게 제가 갖고있는 합리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 ▲ 정의화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여야중진의원과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정의화 국회의장이 31일 국회 의장접견실에서 여야중진의원과 회동을 갖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회 내부의 반발은 예상 외로 거셌다. 특히 4선 중진 여야 의원들은 의장과의 회동에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과 같은 방식으로 지역구 획정 문제를 처리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지적, 여야 지도부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촉구했다.

    일부 중진 의원은 여야 대표를 포함한 협상 당사자에게 전권을 부여해 이들이 결론을 도출하면 무조건 수용하자는 의견도 내놨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은 "초비상 사태가 온 데 대해 자괴감을 느끼며, 남의 탓을 하지 말고 '내 탓이오'라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여야 모두의 자성을 촉구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직권상정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지적했고, 정병국 의원도 "합의가 되지 않아 어쩔수 없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했는데도 부결이 됐을 경우에는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31일 국회의장실을 찾아 구·시·군 분할을 허용해 선거구를 획정하고, '농어촌 특별선거구'를 도입을 호소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도시와 농어촌,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 선거구 획정을 위한 특단의 결단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 ▲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가운데)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구 획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가운데)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선거구 획정과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여야는 이날 20대 총선거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협상을 끝내 무산시켰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가 끝내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1월1일 0시에 맞춰 자체 마련한 선거구획정 기준안을 중앙선관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두고 끝까지 기싸움만 벌이면서, 손발이 묶인 정치 신인들의 울분은 겉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현직 의원들이 선거구 획정 때까지 정치 신인의 손발을 묶어놓는 반사이익을 노리며 선거구 미확정 사태를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올 정도다.

    경기 고양 일산동구 출마를 선언한 정군기 홍익대 교수는 국회를 향해 "법을 만들고 지켜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무법의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갑(甲)질 횡포이자 한 편의 코미디"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