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 결의 따르는 48년 대한민국 건국 강조해야 영토 조항도 튼튼
  • ▲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연일 헌법 전문의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뜻을 곡해하며, 대한민국 건국의 의의를 호도하고 있어, 어떠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낳고 있다.

    ◆정청래 "1948년 건국이면 영토 규정 난처해진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교육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말에서 '정부'를 빼고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하라는 집필 기준을 마련했다"며 "이것은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반헌법 행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수립으로 본다면 1919년의 임시정부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며 "그렇게 되면 1948년 이전의 항일운동도 친일부역도 대한민국 건국 이전의 일이 되고, 해방 정국에서 친일의 옷을 벗고 친미의 옷을 입었던 사람들은 과거의 과오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수립·건국의 공신들로 남게 되지 않겠나"라고 매도했다.

    나아가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나와 있는 영토 규정도 매우 난처한 처지에 빠진다"며 "자신 가족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고자 헌법까지 위반하겠다는 것인지 국민 여러분이 판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태극기·애국가 그대로 사용하니 임정 건국한 1919년"

    이러한 인식은 문재인 대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5일 시도당·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1948년 8월 15일 건국했다는 것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그런 주장"이라며 "그래서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태극기·애국가와 같은 상징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또 "(1948년 건국되지 않았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북한까지 다 포함하는 한반도 전역이 되는 것"이라며 "해방 이후에 남과 북에서 각각 국가가 국제법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정부며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주장은 헌법에 반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그런 반국가적인 주장"이라며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호도했다.

    ◆법통 계승이 건국이라면, 고려 건국은 BC 37년

    하지만 이들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주장은 "법통을 계승한다"는 우리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근거로 언급한 내용들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통(法統)을 계승했다는 것은 그 숭고한 취지와 정신을 본받는다는 뜻이지 실체가 동일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일 실체가 동일하다면 굳이 '법통 계승'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왕건은 고구려의 계승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고려를 건국했지만, 그렇다고 고려의 건국 시점이 기원전 37년으로 소급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고려의 건국 시점은 918년이고, 법통의 계승은 요(遼)나라와 세 차례에 걸쳐 대결하는 등 고구려의 정신을 본받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다. 송나라 인종 때 사신으로 고려에 내왕한 서긍도 '고려도경'에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면서도 왕건을 건국 왕으로 보고 왕의 세보를 시작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임시정부, 연합국으로부터 승인 받지 못해

    또,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 즉시 국가로서의 실체를 형성한 것이며, 이 '국가'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으로 곧 자동적으로 한반도의 통치권을 획득하고 이를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은 것인가 하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어느 한 나라로부터도 국가 승인을 받지 못한 채 결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 자격으로 환국한 것은 아쉽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당시 임정을 이끌고 있던 백범 김구는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라며 "수 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만일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가 곧 대한민국 그 자체라면, 일제의 패망으로 자동적으로 임정이 한반도의 통치 기구로 들어앉는 것이므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이는 문재인 대표·정청래 최고위원보다 백범이 당시 임정의 위상을 누구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백범의 임정은 여왕 빌헬미나가 이끌고 있던 네덜란드 임시정부나, 요시프 티토가 이끌고 있던 유고슬라비아 임시정부처럼 연합국에 의해 국제적으로 승인돼 추축국과 교전하고 있는 정부가 아니었으므로 '해방=독립=건국'이라는 등식이 결코 성립할 수 없었다.

    ◆일제 망했는데도 장제스 "조선 독립해야"

    이 때문에 임정을 누구보다 열렬히 후원했던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조차 1945년 11월 4일 베푼 환송연에서 "조선이 독립하지 못하면 중국의 독립도 완성하지 못하게 되고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당은 조선 독립을 전력을 다해 원조하겠다"고 연설했다. 문재인 대표나 정청래 최고위원의 말대로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미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라면, 일제가 패망하고 2개월여나 지난 마당에 장제스 총통이 새삼 다시 '조선의 독립'을 운운함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결국 미 군정은 임시정부의 '정부 자격' 환국을 불허했고 1945년 11월 23일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는데 이는 임정 스스로 종전 때까지 연합국으로부터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한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고 정부 자격 주장을 거둬들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시 1919년 임시정부의 수립을 곧 대한민국 건국으로 볼 근거가 없는 셈이다.

    대조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영국·프랑스 등 서방 연합국으로부터 정부 승인을 받았던 폴란드 임시정부는 1945년 종전 직후 소련이 구 폴란드 영토를 강점한 채 '개인 자격' 귀국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고 '정부 자격' 주장을 고수하며 1990년 폴란드의 민주화 때까지 영국 런던에서 임시정부를 유지한 바 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자료사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백범 스스로도 임정 수립이 건국이라 생각 안 해

    백범의 임정은 1941년 11월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선포했는데, 해당 강령에 따르면 "일부 국토를 회복한 뒤 당(黨)·정(政)·군(軍)의 기구를 국내로 옮겨 국제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취득하는 것"이 제2장에 규정된 복국(復國)의 단계이며, 건국(建國)은 그 이후인 제3장에야 비로소 규정돼 있다. 결국 임정 스스로도 임정 수립을 결코 건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참고로, 복국의 단계에 이르기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돼 결국 백범의 구상이 좌절됐음은 이미 설명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1948년 9월 1일 공보처가 발행한 관보 제1호에 민국 30년이라는 연호가 사용된 것이나,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으로 발행된 우표 등을 근거로 들어 1919년 건국설(建國說)을 주장하나, 이는 백범 스스로도 생각해보지 않은 개념이며 국제적 인식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작 연호 사용을 주장의 근거로 드는 빈약함에도 문제가 많다. 이승만 정부 때에는 단기(檀紀)를 연호로 채택해 정부 공식 문서나 사법부의 판결문에는 물론 신문 날짜에도 이를 사용했는데, 그렇다면 이승만 정부는 곧 단군조선인가. 그리고 5·16 이후 박정희 정부에 들어서면서 연호를 단기에서 그레고리우스력(曆)의 서기(西紀)로 변경했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단군조선에서 교황령으로 탈바꿈한 것인가.

    ◆영토 조항, 유엔 결의 따른 1948년 건국설 취해야 더욱 튼튼

    헌법 제3조에 규정된 영토 조항의 근거가 없어진다는 주장도 터무니 없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지하다시피 국제적으로 국가 승인을 받지 못했다. 카이로 회담의 당사국이며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장제스 총통의 중화민국이 임정을 국가 승인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됐겠지만, 임정이 수십 차례에 걸쳐 국가 승인을 요청했음에도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19년 임정이 수립됐어도, 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기구가 한반도와 부속 도서 전체에 대해 그 어느 국가로부터 영유권을 인정받은 바는 아니었다.

    유엔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됐고, 이 총선거의 결과에 따라 선출된 대의대표들이 제헌국회를 구성해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했으며, 같은 해 8월 15일 비로소 대한민국의 건국이 이뤄졌고, 유엔은 이에 호응해 12월 12일 총회 결의안 제195호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지역에 대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 정부이고, 유일한 정부"라는 점을 선언했다.

    따라서 오히려 1948년 8월 15일의 건국을 강조해야 헌법 제3조의 영토 조항의 근거가 더욱 튼튼해지는 것이다. 유엔 결의에 따라 대한민국이 유일·합법 정부임이 인정됐는데 "해방 이후에 남과 북에서 각각 국가가 국제법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문재인 대표의 설명이야말로 반헌법적인 셈이다.

    ◆태극기·애국가, 1919년 임정 건국설 근거될 수 없어

    태극기와 애국가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1919년 건국설의 근거로 드는 대목에서는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다.

    태극기는 1882년 임오군란의 뒷수습을 위해 일본에 특명전권대사로 향하던 금릉위 박영효가 선상에서 고안했다는 것이 정설으로,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보다 훨씬 앞선 시기여서 이것을 현재의 대한민국이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임정 건국설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애국가 또한 윤치호가 1897년 가사를 이미 작사한 것을 임정 시기 내내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붙여 부르다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대통령령으로 비로소 안익태가 작곡한 곡을 채택한 것이므로, 작사로 따져올라가면 1919년 임정보다 앞이요 작곡으로 따지자면 1948년 건국보다도 뒤가 되므로 역시 임정 건국설과는 무관하다.

    ◆1948년 건국, 친일 논란과는 무관한 문제

    하물며 1919년 임정 건국설을 부정하고 1948년 건국설을 채택한다고 해서, 이를 친일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으로, 이러한 주장의 배후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1919년 임정 수립의 계기가 된 것은 3·1 독립만세운동인데, 이를 촉발시킨 독립선언을 한 민족대표 33인 중에서는 후에 친일로 변절한 인물이 적지 않다. 따라서 1919년 건국설을 채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친일과 손을 끊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한편으로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 초대 내각은 친일과 무관한 인물로 조각돼, 정청래 최고위원의 주장처럼 "친일의 옷을 벗고 친미의 옷을 입었던 사람들의 과거의 과오가 사라지고 대한민국 수립·건국의 공신들로 남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초대 내각의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곧 임정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며 부통령 이시영도 임정 각료 출신이고, 총리 겸 국방상 이범석은 광복군 참모장이고 법무상 이인 변호사는 항일 변호사로 유명했다. 외무상 창랑 장택상은 청구구락부 사건, 내무상 윤치영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투옥됐고 상공상 임영신은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이며, 사회상 전진한도 일제 시대에 노동 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새정치 당대표실에 걸려 있는 윤보선·신익희·장면 어찌 생각할까

    정청래 최고위원이 발언할 때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회의실에 걸려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해공 신익희 선생·운석 장면 박사의 사진이 그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부친인 윤치소 씨가 일제 시대 친일 인사들이 몸담고 있던 핵심 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고, 해공 신익희 선생은 1945년 11월 이른바 '행정연구반'을 조직해 일제 시대 군수를 지낸 윤길중 전 의원과 같은 친일 인사를 끌어들였으며, 운석 장면 박사는 일제하 친일 행적 논란으로 좌파 성향의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작성해 큰 논란을 빚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에까지 수록됐다.

    물론 윤보선 전 대통령이나 해공 선생, 장면 박사는 과(過)보다 공(功)이 훨씬 큰 우리 근현대사의 거인이며 위인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자는 것은 이처럼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후손들에게 공과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해 긍정적인 시야를 심어주자는 데 그 뜻이 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발언을 하기에 앞서 주위부터 둘러보라. 윤보선 전 대통령과 해공 선생, 장면 박사가 지켜보고 있는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비난할 수 있는가. 누가 누구더러 '친일의 옷'이니 '과거의 과오'를 운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