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고형폐기물 열병합발전소부터 한미FTA·제주해군기지까지
  • ▲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지난달 30일 원주시청에서 문막 고형폐기물 열병합발전소와 관련해 여론조사 실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지난달 30일 원주시청에서 문막 고형폐기물 열병합발전소와 관련해 여론조사 실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여야 지도부가 선거구 획정 협상 과정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회의원 총원의 1%인 3석도 늘릴 수 없다는 국민들의 완강한 입장의 근저에는 정치인들의 조령모개 등 잦은 말바꾸기에 대한 피로감과 불신이 짙게 깔려 있다는 평이다.

    정치인들의 말바꾸기 버릇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대중추수주의와 맞물려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행동이 오히려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만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강원 원주갑)은 스스로 근거가 되는 법령을 발의했던 고형폐기물연료 열병합발전소의 건설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서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강원 원주시는 문막읍 궁촌리 일대에 2017년까지 고형폐기물을 연료로 하는 열병합발전소를 짓기로 하고 시의회의 동의를 얻었다. 관련 예산까지 배정돼 주민들에 대한 토지 보상 절차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해 물질이 발전 연료로 쓰일 개연성이 있다며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김기선 의원이 발전소 건설에 대한 여론조사 실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주민간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고형폐기물연료 열병합발전소 건설의 근거가 되는 자원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 일부개정안은 김기선 의원 본인이 발의했다는 점이다.

  • ▲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른바 총선 필승 건배사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른바 총선 필승 건배사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김기선 의원은 해당 법률개정안이 지난 2013년 9월 17일 이웃 지역구의 같은 당 이강후 의원(강원 원주을)에 의해 대표발의되자, 같은 당의 강은희·김한표·손인춘·유기준·이만우·이한성·정병국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과 함께 발의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이강후 의원의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같은 당 김성태 의원의 개정안과 합쳐져 환노위원장 대안으로 같은 해 12월 20일 환노위에서 의결되고, 26일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해 이듬해 1월 21일 공포·시행되고 있다.

    해당 법률은 고형연료제품을 통해 신재생에너지를 확대·보급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원주 고형폐기물연료 열병합발전소 건설 추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것인데, 정작 당시 법안을 발의했던 김기선 의원이 이를 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적 언동이라는 비판이 지역사회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기선 의원은 지난달 30일 원주시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재차 여론조사 실시를 촉구하면서, 과거 해당 법률개정안 발의에 동참한 것은 "보좌진이 보고 없이 서명해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 개개인이 입법 기능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궁색한 해명이라는 비판이다.

    정치인의 말바꾸기 행태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 'TK(대구·경북) 물갈이설'과 맞물려 4·13 총선 출마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8월 25일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을 외치는 건배사로 물의를 빚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여야의 대응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2월 "국민이 총선에서 열우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우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던 때와는 영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 ▲ 손학규 민주당 대표(당시)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당시)으로부터 한미FTA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손학규 민주당 대표(당시)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당시)으로부터 한미FTA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정종섭 장관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은 두둔하고 나섰었던 새정치연합 내 친노 세력이 정종섭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나서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가담했던 새누리당은 되레 정종섭 장관을 엄호하는 꼴이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국회법 파동 당시에 '말바꾸기' 논란이 휩싸였다. 행정입법에 대한 입법부 통제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에 연루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를 표로 심판해달라"고까지 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98년 '국회법 파동'을 일으킨 국회법보다 더 강한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새정치연합 등 현 야권도 말바꾸기 논란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특히 야권은 노무현정권 시절 국정 핵심 과제로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입장을 180도로 뒤집어 국민들의 빈축을 샀다.

    노무현정권 당시 청와대와 내각에서 이를 추진했던 당사자들은 2008년 정권교체로 야당이 되자 반대에 열을 올리는 추태를 연출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내각에 있을 당시 한미FTA에 찬성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로는 반대에 앞장섰다. 지난 2011년 10월에는 "정부에 계실 때, 내가 한미FTA 협상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새누리당 김종훈 의원(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에 정동영 전 장관은 "거짓말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도 민주당 대표를 지내던 때 한미FTA 반대 입장으로 선회해 조소를 사기도 했다. 손학규 전 고문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시절에는 한미FTA에 전폭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제주해군기지도 자기모순의 사례로 빼놓을 수 없다. 김대중정부에서 구상이 시작돼 노무현정권 때 추진이 확정된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노무현정신을 계승한다던 친노(親盧)들이 앞장서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친노들이 정신분열적 자기모순을 일으킨 나머지 '질 수 없는 선거'라던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하는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