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집필진, 투명하게 공개해야" 주장 속에 숨은 흑심은…
  •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후손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하기 위한 국정 한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참여한 집필진들을 향해 신변 위협과 공갈·협박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사교과서 집필 작업은 복면가왕을 뽑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주장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복면가왕은 일체의 편견을 가리고 노래로만 승부하기 위해 복면을 쓰지만, 역사교과서 필진들은 국민을 속이기 위한 복면을 쓰려 하고 있다"며 "학자로서의 용기가 있다면 반대 의견과 당당히 논쟁하고 승복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대표집필자로 공개된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와 신형식 이화여대 사학과 명예교수에 대해 벌써부터 신변 위협과 흑색선전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과 유리된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실제로 최몽룡 명예교수는 당초 국사편찬위원회의 기자회견장에 나오기로 돼 있었으나, 제자들의 압박에 나오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SNS상에서는 최몽룡 명예교수를 가리켜 "이완용의 조카인 이병도의 제자로서 친일 학자"라는 마타도어도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고 이병도 박사는 이완용의 조카는 고사하고 촌수를 헤아릴 수 있는 친척도 아니며, 그저 본관이 같은 우봉 이씨일 뿐인데도 이처럼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고3 여고생이 공공연히 방송 인터뷰에서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을 선동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 근린국가에서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는 이른바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 있는데, 마오쩌둥에 의한 일종의 친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천만 명이 희생됐고 특히 지식인 계층의 피해가 컸다. 문혁 직전에 마오쩌둥에 내걸었던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말에 현혹돼, 학문적 소신과 양심에 따라 투명한 공개 논쟁에 나섰던 지식인들 대부분은 문혁 과정에서 우파 세력으로 매도돼 홍위병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폭력적으로 완전히 타도하고 거세하는 것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는 세력과는 당당한 논쟁과 승복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류사오치(劉少奇)가 홍위병과 공정한 논쟁의 기회를 가졌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다. 코르닐로프가 레닌과 당당히 논쟁을 벌여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승복시킨다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공공연히 폭력 계급 혁명이 주장되고 공개된 집필진에 대한 공갈·협박이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라, 강신명 경찰청장이 5일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자유의사가 억압돼서는 안 된다"며 "필요하면 즉시 신변 보호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고, 김주현 법무차관도 "불법적인 부분이 있으면 엄중 대처할 것"이라고 나서야 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규탄 발언을 한 뒤,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와 관련된 규탄 발언을 한 뒤,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층이라면 학자들을 보호해줄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임에도 되레 이에 역주행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필요시 신변보호를 하겠다는 둥 집필자에 대한 있지도 않은 공격 사례를 과장·조작하고 있고, 보수 언론은 이에 맞장구치고 있다"고 일축하며 "학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 위주로 구성된 초라한 집필진을 숨기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복면 속에 숨어서 학계를 속이고 학생을 속이고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된다"며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집필진들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라는 결과물을 어차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숨기고 속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결과물에 따라 정당하게 평가받으면 될 일인 것이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말대로 학자로 인정받지도 못할 사람들 위주로 집필진이 구성된다면, 결과물인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퀄리티가 얼마나 낮겠는가. 그런 경우라면 새정치연합이 굳이 목소리를 높여 나서지 않아도 국민이 나서서 집필진과 정부, 여당의 책임을 물을 일이다.

    오히려 집필진 개개인의 신상에 대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철저히 결과물인 교과서의 퀄리티로만 평가받기 위해서는 복면가왕처럼 집필진을 보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복면가왕이 출연진의 신분을 숨겨 편견을 없애고 결과물인 노래로만 평가받듯이,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도 그러한 장점을 취할 법하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당 사람들은 집필진도 공개하고, 집필 내용도 집필되는대로 순차적으로 인터넷상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며 "내년 4·13 총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정쟁거리로 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벌써부터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집필진의) 신상을 털어 지엽말단적인 내용을 빌미 삼아 집필되지도 않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흠집을 내기 위한 의도"라며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조용히 집필되고 있으면 이슈로 끌고 가기가 어려우니 집필진 선정 과정에서 계속 소모적인 논쟁을 키워가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