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 재보선으로 드러난 국민 철퇴에도 정신 못 차렸나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종료 공이 울렸는데도 링 위에 홀로 남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치는 모양새를 어찌 바라봐야 할까.

    '선(善)과 악(惡)' '정(正)과 오(誤)' '흑(黑)과 백(白)'이 맞부딪치는 정국으로부터 2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문재인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새정치민주연합 친노 지도부의 투쟁 전략 수립 시계는 여전히 87년 6월 항쟁 시절에 멈춰 있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4일 오전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여당은 확정고시만 하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끝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며 "절대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당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모아내는 데 앞장서겠다"며 "다른 정당과 정파, 학계와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강력한 연대의 틀을 논의해 나가겠다"고 부르짖었다.

    나아가 국민들을 향해서도 "국민불복종 운동에 나서달라"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제1야당의 대표가 자못 비장한 모습으로 대국민담화에 나선 데 이어, 경기가 끝남에 따라 경기장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려는 관중들의 팔을 잡아끌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가 뒤따르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5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 백범기념관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제작 및 배포를 저지하기 위한 제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를 꾸리고, 야당과 좌파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투쟁하는 기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국회에서 당 소속 국회의원들 뿐만 아니라 원외지역위원장들까지 불러들여 연석회의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국정교과서금지법 입법청원서명운동과 촛불시위 등을 전국 246개 지역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는 방침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6일 저녁에는 서울 종각에서 제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가 주관하는 방식으로 국정교과서 규탄 문화제를 진행한다. 이후 전국 주요 거점 도시를 돌면서 순회 집회를 여는 등 '국정화' 이슈를 내년 4·13 총선까지 끌고 가기 위한 장외 투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새정치연합 핵심 당직 의원은 "과거 87년의 경험에 비춰볼 때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과 같은 공동 투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며 "공동의 투쟁 기구는 당만이 아니라 국정교과서 저지 네트워크를 비롯한 학계와 시민사회, 그리고 ('천정배 신당'과 정의당이 가담한) 야3자 연석회의처럼 제정당이 참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하고 있는 가운데, 최고위원 등 핵심 당직자들이 배석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대국민담화문을 낭독하고 있는 가운데, 최고위원 등 핵심 당직자들이 배석해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국본은 당시의 시대적 과제인 '민주화'와 '개헌'을 원하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했기 때문에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85년 총선에서의 신한민주당 돌풍이다. 1985년 1월 18일 창당한 신민당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치러진 2·12 총선에서 지역구 50석을 석권하며 단숨에 제1야당이 됐다.

    특히 서울에서는 28개의 선거구 중 절반에 해당하는 14곳에서 승리해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13석)을 눌러 충격을 줬고,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성이라 불리던 부산에서도 12개 선거구의 절반인 6곳에서 승리, 민정당(3석)을 압도했다. 민정당은 전국 득표의 35.2%를 차지했음에도 전국구 62석을 배분받는(신민당은 29.3%임에도 17석) 선거 제도 덕분에 가까스로 과반 의석을 지킬 수 있었다.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치러진 10·28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서울의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선거에서 전부 졌고,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사상의 기초의원 선거에서도 대패했다.

    외견상으로는 좌경화된 대학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이 잇따르고 대학가에서 반항적인 반대 성명이 발표되는 등 1987년 6월과 비슷한 모양새라, 사고방식이 그 때에 멈춰버린 친노·486·운동권 세력들에게는 자못 흥분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28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강산도 세 번 가까이 변했고, 사회상과 국민 의식도 크게 변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에는 국민적 관심이 모자라는 상황이라, 국본을 꾸려 87년의 모양새를 재현하기에는 동력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들 이 사실을 아는데, 모르는 것은 오로지 친노들 뿐인 것 같다.

    새정치연합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오영식 최고위원은 4일 오전, KBS·MBC·SBS 3개 지상파 방송사가 문재인 대표에게 반론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냉정히 객관적으로 보면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문재인 대표의 반론을 생방송하더라도 전파낭비일 뿐이다. 비단 문재인 대표의 이날 대국민담화 뿐만 아니라 전날 방송된 황교안 국무총리의 확정고시 발표도 관심을 갖고 지켜본 국민은 별로 없었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되는 중차대한 역사 문제에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그 나름대로 유감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런 상황이 초래된 것에는 여야 정치권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 민생 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국민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됐기에, 국민들이 다른 문제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어진 것이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화두는 '민생'과 '경제'에 있으며, 국민들의 관심은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돼 있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한, 친노들은 영원히 1987년 6월의 미몽 속에서 살면서, 현실의 선거에서 연전연패의 기록을 갱신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