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론 나오다가도 연말만 되면 위력 발휘하는 '국회선진화법' 이번에도…
  • ▲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사진 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가 6일 오전에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사진 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가 6일 오전에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여야가 서로 "상대방이 출구전략을 구사한다"고 주장하는 찝찝한 분위기 속에서, 국회는 다음 주인 9일부터 정상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에 반발하며 지난 2일부터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채 로텐다홀에서 농성해 오던 새정치민주연합은 6일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9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직후 취재진과 만나 "의원총회에서 민생 우선을 위해 9일부터 모든 국회 일정을 정상화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문화제에 참석하면서 국회 농성을 해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러한 농성 해제와 국회 정상화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인정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한 듯 "정부·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포기할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새정치연합은 5일에도 의총과 지역위원장 연석회의 등을 잇달아 열며 긴박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원내외 병행투쟁 기조로 전환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는 게 지배적인 견해였다.

    새정치연합 핵심 당직 의원이 이미 지난 3일 장외에서는 제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 등을 통한 순회 문화제와 전국 246개 지역위 차원에서의 역사강좌·촛불시위 등을 진행하고, 원내에서는 국정교과서금지법 입법청원운동의 결과물을 받아안는 방식으로 원내외 병행투쟁이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에 따라 국회를 정상화했을 경우의 일정 조율과 의제 협의를 위해, 야당이 본회의장 앞에 돗자리를 깔고 농성을 하는 극한 대치 상황임에도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활발한 만남이 있었다.

    5일 오전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 이어 오후에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 아래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의 만남이 있었고, 이날 오전 다시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의 회동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는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과의 회동 결과로 농성을 해제하는 듯한 모양새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뭘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서 농성 해제도 포함되는 듯한 모양새'보다는 오롯이 민생·경제를 위한 '결단'으로 농성을 풀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새정치연합 이춘석 원내수석은 이날 오전 원내수석간 회동을 끝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과 만나 "오늘 여기 (원내수석 회동)서 무슨 내용이 합의됐느냐에 따라 국회 정상화가 결정되는 게 아니다"라며 "만일 국회 정상화가 된다면 그것은 민생을 고려한 우리 당의 결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사전에 구상한 수순대로 밟아가 이날 오후 의총에서 '민생을 우선 고려한 결단'을 내렸고, 9일부터는 국회 일정이 정상화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8일에는 원유철~이종걸 원내대표가 다시 만나 국회 정상화에 따른 법안·예산·선거구 등 원내 현안에 대한 일괄 타결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는 정상화되지만, 여야는 서로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불리해진 상대방이 출구 전략을 펼친다"며 상이한 현실 인식을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사진 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5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놓고 논의를 벌였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사진 왼쪽)와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오른쪽)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로 5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만나 국회 정상화 방안을 놓고 논의를 벌였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은 줄곧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입법사항이 아닌 행정고시로 끝나는 사안이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이 백날 국회에서 농성을 한들 의미가 없고 결국 적절한 시기에 출구 전략을 펼칠 것으로 내다봤었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은 5일 원내수석 회동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다음 주부터는 완전히 국면 전환이 되고 총선 체제로 가는 것"이라며 "여당이 민생과 총선 두 가지를 본격적으로 들고 가는데 야당이 혼자 국정화만 가지고 오래 못 가는, 상황이 그렇다"고, 새정치연합이 '출구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측했다.

    조원진 원내수석은 6일 원내수석 회동에서도 "무엇을 달라, 무엇을 준다 하는 것은 맞지 않고, 야당이 '월요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한다' 한 마디 하면 끝"이라며 "19대 국회를 마무리하는 상황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니 야당이 한 마디만 하면 다들 만족할 것 같다"고 이춘석 원내수석을 압박했다.

    이에 대해 이춘석 원내수석은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려고만 하면 새누리당은 뭔가 하나 이슈를 확 만들어서 그걸 끌고 가면서 다른 걸 다 묻어버린다"며 "지금도 말로는 민생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가장 여야 간에 민감한 이런 (선거구) 부분의 정치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국면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되레 새누리당 측의 '출구 전략' 구사를 의심했다.

    새정치연합은 5일 당의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이 배포한 '프레임과 내년 총선 전략' 보고서에서 "새누리당은 (당초)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역사전쟁'이라 표현했고, 차기 총선과 연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었다"며 "김무성 대표는 역사전쟁으로 좌는 분열하고 우는 단결하는 만큼 이대로 다음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이는 역사전쟁을 총선과 연계시키겠다는 노림수를 간접 노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등 민심 이반이 심각해져 내부의 동요가 크다"며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비공개로 추진하고 경제 문제로 집중하는 듯한 출구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은 지난 3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서둘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고, 때맞춰 새누리당은 민생·경제에 집중하자며 총공세를 펼친 것은 여론이 불리해짐에 따른 '출구 전략'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듯 쌍방이 상대방의 압박을 '출구 전략'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서로가 장단을 맞춰주며 국회가 정상화되게끔 된 이유는 뭘까.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 부의를 규정한 국회법 제85조의3,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이번에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이다.

    국회법 제85조의3은 국회 예결특위가 예산안 등의 심사를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한다면서, 기한 내에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그 다음날(12월 1일) 심사를 마치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보면 12월 2일에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민원 예산을 예산안에 끼워넣을 틈이 없어진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회의원들로서는 국회 의사일정 전면 보이콧을 이어갈 수 없었던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결특위의 예산심사 과정을 통하지 않으면 지역구 예산을 관철할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야당 개별 의원들의 요구를 당 지도부가 마냥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여당 또한 정부안 관철을 원한다지만 기실은 개별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수요가 따로 있기 때문에 국회를 정상화하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