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을 본 직후 가장 많이들 떠오를 작품은 ‘엑소시스트’(1973,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김신부(김윤석), 최부제(강동원)는 ‘부마자(付魔者)’로 일컬어지는 악령이 쓰인 소녀 영신(박소담)을 구마하기 위해 장엄구마예식을 진행하며 고군분투 한다. 영신은 침대에서 손발이 묶인 저지당한 상태로 소름끼치도록 눈이 뒤집히며 피를 소방호스의 물처럼 세차게 토한다. 게다가 이 소녀는 말 한 마디마다 쌍욕과 함께 차마 온전히 듣기 힘든 수준의 성적인 폭언마저 내뱉는다. 소녀가 딱히 어떠한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령의 종류인 12형상 중 하나가 우연찮게 몸에 흡수됐을 뿐이다. 재수가 더럽게 없는 입장인 무고한 소녀를, 악령을 처단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죽여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김신부는 딜레마에 처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엑소시스트’와 다른 점은 김신부와 최부제의 캐릭터 설정에 있다. 교단으로부터 이른바 꼴통, 깡패 등으로 불리며 문제적 인물로 낙인찍힌 김신부와 컨닝, 월담, 음주까지 교칙을 어기는 게 일상인 문제의 신학생 최부제가 조우하게 되고, ‘아웃사이더’ ‘루저’라는 개념으로 통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곤경에 처한 소녀를 구하는 위험천만한 예식을 함께 거행하는 모습은 도전적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친근하다. 예식에 필요한 동물로 돼지 ‘돈돈’을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최부제의 자태는 애완견과 함께 집 앞 슈퍼로 향하는 동네 청년을 보는 듯 익숙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여기서 일종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우리는 보통 악의 반대 개념으로 ‘숭고한 선’을 연상하지만 장재현 감독은 그보다 심층적인 개념인 ‘악’의 경험을 거친 ‘후천적 선’을 주장한다. 백신의 작용 원리가 그러하듯, 공감을 마음과 영(靈)을 치료할 수 있는 근원이라 보고 있는 것. 순결하고 무구한 신부였다면 영신의 고통을 얼마나 헤아렸을지 모르긴 몰라도 김신부와 최부제 만큼의 페이소스로 이 가엾은 소녀를 의무 아닌 책무로 대하긴 쉽지 않았을 거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김신부와 최부제가 검은 신부복을 입고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세상을 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렇게 ‘검은 사제들’이란 제목으로 귀결된다.

     

  •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


    ‘악’이란 녀석을 아는 자들만의 여유일까? 이 와중에도 영화는 예상치 못한 장면들에서 짤막짤막한 유머를 구사하며 극의 톤을 마냥 음울하게 만은 그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극의 흐름을 깰 만큼 억지스럽지도 않다. 김신부의 말투처럼 툭툭 던지듯, 스치는 느낌으로 내뱉는 대사들이 상황과 묘하게 맞아 들며 철두철미해야 할 예식 준비 단계에서 긴장을 풀어준다. 하지만 장장 40여 분간의 구마예식을 거행하는 시퀀스는 행위에 최대 초점을 맞춘 상태로 엄숙한 분위기로 그려내며 ‘검은 사제들’의 백미를 장식한다.


    박소담이 그야말로 신들린 연기로 그린 악령에 잠식된 소녀 영신 앞에서 김신부와 최부제는 긴장감은 가질지언정 의연한 태도를 취한다. 영신이 눈을 뒤집고 혀를 날름거리는 흉측한 행동과 함께 김신부와 최부제를 유린하는 단어들로 팽팽하게 맞서지만 두 사람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이 어린 양을 구제하기 위해 밀폐된 공간 속에서 소금을 뿌려 경계를 만들고 책과 성물, 촛불 등으로 예식을 준비함은 물론, 한국어, 영어, 라틴어, 중국어를 오가며 소녀를 향한 기도와 언명을 반복하는 데에 사력을 쏟는다.


    ‘희생’의 위기를 겪었던 자들이 울린 프란체스코의 종소리는 여느 종소리보다 더 성스럽고 깊은 파동을 그리고 있다. ‘루저’가 ‘위너’로 거듭나려는 찰나를 장르적으로 그린 ‘검은 사제들’은 결코 가톨릭 교인들만이 고개를 끄덕일 영화는 아니다. 미지의 존재를 향한 사투를 벌이며 어쩌면 실패 확률이 더 높은 불확실한 처지에서 목숨까지 내던지는 그들은, 자신을 나약하다 치부하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잠언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5일 개봉.

     

  •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
    ▲ 강동원 김윤석 ⓒ검은사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