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방선거 앞두고 박주선 '호남 인재 발굴론' 문재인 '부산 정권론'
  • ▲ 올해 추석의 호남 차례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박주선 의원과,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민심의 준엄한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데일리 정상윤·이종현 기자, 도표=정도원 기자
    ▲ 올해 추석의 호남 차례상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박주선 의원과,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민심의 준엄한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데일리 정상윤·이종현 기자, 도표=정도원 기자

    민족대이동이 벌어지는 추석 명절을 맞이해 27일 차례상에는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민심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내내 계속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의 원인인 '비판적 호남 민심'이 추석 연휴를 맞아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에 야권의 촉각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올해 추석에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함께 22일 새정치연합 탈당을 결행한 박주선 의원의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호남 민심 차례상에 자주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표는 추석을 겨냥해 이른바 '셀프 재신임'을 서둘러 마무리지은 뒤 25일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호남에 대한 애정이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새삼스런 러브콜을 보냈고, 박주선 의원은 말이 필요 없는, 호남 그 자체를 대변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이후 내년 4·13 총선까지 야권발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검 승부를 겨룰 두 사람은 지금껏 뚜렷이 대비되는 삶을 살아왔다.

    박주선 의원은 1949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고와 서울법대를 거친 뒤 16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문재인 대표는 1953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경희법대를 나온 뒤 사법연수원 12기(22회 사법시험)를 차석으로 수료했다.

    정치권에 입문한 경로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박주선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으로부터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당시 법무비서관은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을 결합한 직책으로, 수석비서관급의 자리였다. 문재인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을 발탁한 당시 대통령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박주선 의원은 DJ로부터 "나와 역사를 함께 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정권의 극심한 정치 보복 속에 세 번째 무죄 판결을 받은 박주선 의원이 정치 자체에 회의를 토로했을 때 "호남에 인물이 없는데 정계에 남아 큰 역할을 해달라"고 직접 만류한 것도 DJ였다.

    문재인 대표도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친구'라는 사사로운 평가라는 점에서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국회에 입성하게 된 계기는 차이가 크다. 박주선 의원은 1999년 새천년민주당 내의 반(反)호남 세력의 표적이 돼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직을 내놓아야 했다. 당으로 복귀할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국민으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자는 생각에서 자신의 고향인 전남 화순·보성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듬해인 2000년 4·13 총선에서 동교동계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한영애 의원을 누르고 첫 배지를 달았다. 민천(民薦)으로 국회에 입문한 셈이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친노 한명숙 지도부의 사천(私薦)으로 악명 높았던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내리꽂아져 무난히 배지를 달았다. 이른바 '후견인 정치'로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이후 문재인 대표는 자신을 내리꽂아준 한명숙 전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이 났음에도 "억울한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 당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감싸기에 여념이 없는 등 보은(報恩)에 충실한 언동을 보이고 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는 박주선~문재인 두 사람이 정치에 입문한 이후 가장 뚜렷하게 대비되는 언행을 보였던 때였다.

    당시에는 친노 정당인 열우당과 비노 정당인 새천년민주당이 분립해 있던 시기였다. 열우당은 당시 민주당 소속의 박준영 전남도지사에 대항할 후보를 찾지 못하자, 박주선 의원을 상대로 회유 공작에 돌입했다. 하지만 박주선 의원은 "이념과 노선이 다르고 민주세력과 호남 분열의 원흉인 열우당에는 입당할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오히려 그는 2005년 6월 16일 광주를 찾은 자리에서 "호남에 인재가 없다고 실망만 하지 말고, 인재를 발굴해 키우자"는 '호남 인재 발굴론'을 역설했다.

    반면, 문재인 대표는 5·31 지방선거 직전이던 2006년 5월 15일 당시 열우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였던 오거돈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이 부산 출신인데 왜 (시민들은) 부산 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부산정권론'을 부르짖었다.

    이 같은 문재인 대표의 언행은 노무현정권 당시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는 평이다. 일례로 문재인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던 2007년 11월 8일, 무안국제공항 개항식 및 무안~나주 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후 "'호남 뭉쳐라' 하는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과는 답답해서 같이 못해먹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