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이승만과 작곡가 윤용하

    이현표 /뉴데일리 논설위원 
  •                유감(遺憾)스런 광복 70주년 문화행사 

      2014년 6월, 모 공연기획자에게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고,
     ‘광복절 노래’ 작곡가인 윤용하(1922-1965)의 타계 50주년이니
    그분의 곡들을 무대에 올리는 특별공연을 제안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정부든 민간이든 누군가 올해만큼은 ‘광복절 노래’를 비롯한
    윤용하의 곡들을 멋지게 해석해서 선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특히 2015년 광복절 기념식과 KBS가 주관한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공연을 주목했다.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광복절 노래’를 들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의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 공연장은 ‘광복절 노래’가 아니라, 눈살 찌프리게 만드는
    해프닝으로 화제가 됐다. 

      일본어가 쓰인 옷을 입은 출연자가 등장하는가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김연아에게 무안을 당했느냐 아니냐는 씁쓸한 얘기들 말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소위 나라 사랑 프로그램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선 1958년에 제작된 동영상이라서 음질은 좋지 않지만, 곡에 담긴 밝고 힘찬 정서가 돋보이는 ‘광복절 노래’를 들어보기로 하자.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0000439&q=%EA%B4%91%EB%B3%B5%EC%A0%88%EB%85%B8%EB%9E%98
      
    '국민예술가' 윤용하
      
      윤용하!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곡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보리밭’의 작곡가인데도 말이다.
    ‘보리밭’은 1971년 대중음악작곡가 겸 지휘자인 김강섭의 편곡으로 문정선이 불러 크게 히트해
    남녀노소 누구나 애창하는 노래가 되었다.
    요즘은 엔딩이 기막힌 임태경의 수준 높은 해석이 돋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iQ-UCO4v8YQ

  • ▲ <국민예술가 윤용하>, 하드커버 국판 196쪽, 이부영·윤은희 지음, 황인자 엮음, 김무성 추천, 나라사랑 팻송포럼 펴냄, 13,000원
    ▲ <국민예술가 윤용하>, 하드커버 국판 196쪽, 이부영·윤은희 지음, 황인자 엮음, 김무성 추천, 나라사랑 팻송포럼 펴냄, 13,000원
       금년 8월 15일, 필자는 감동적인 ‘광복절 노래’를 듣지는 못했지만,
    마침 그날 발간된 <국민예술가 윤용하>라는 책을 접하고, 그래도 누군가는 윤용하를 기억해주는구나 하는 다행스런 생각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언뜻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1958년 3·1절 행사 후, 문총(예총의 전신) 사무실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예술계 원로가 일본말로 유머를 던지고 주위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웃었다. 이 때 구석에서 말없이 술잔을 들고 있던 윤용하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내달아, “에끼 이 빌어먹을……”이라고 외마디를 지르고 파티탁자를 뒤집어엎어버렸다. 맥주병과 접시들이 뒹굴며 깨지고 파티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됐다. 

      용하는 일본말을 지껄인 예술계 원로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여보시오 xx선생, 오늘이 무슨 날이오. 그래 민족예술을 지도한다는 양반이 하필 3·1절에 일본말로 후배들과 지껄인단 말이요. 그러면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친다고 강단에 서시오? 에이 한심한 것들…….’ 윤용하는 일갈을 내쏘고, 중얼거리면서 휑하니 나가버렸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보이지만, <국민예술가 윤용하>에 등장하는 이부영 전 의원의 글이다. 이 책에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낸 이부영 전 의원과 윤용하의 딸 윤은희 씨의 글과 많은 사진들이 실렸다. 책을 역은이는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이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추천사를 썼다. 마치 윤용하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서 여야가 함께 뜻과 힘을 모은 모양새다. 

      책을 엮은 황인자 의원은 광복 70주년을 맞아 윤용하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하는 책을 펴낸 속내를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이 책에는 태극기 앞에 오른팔을 쭉 펴고 서 있는 윤용하 선생의 오리지널 사진이 실렸습니다. 6.25전쟁 당시, 부산에서 어린이합창단을 조직해서 동요를 가르치면서 찍은 사진인데, 위 토막이 잘린 사진은 이미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하늘로 치솟은 깃대 위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는 두 손의 모습이 선명한 진짜사진입니다. 

      대한민국의 작곡가 중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 통에 어린이들에게 태극기 교육을 했던 분이 과연 또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노래를 가르치기 전에 애국심을 먼저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윤용하 선생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애국적인 작곡가이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복절 노래’ 이외에도 그분이 작곡한 곡들 중에는 ‘민족의 영광’, ‘희망의 노래’ 등 나라와 겨레 사랑의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분은 진정한 국민예술가이셨습니다.”  
  • ▲ 6.25전쟁 중에 태극기 앞에선 음악가 윤용하,
    ▲ 6.25전쟁 중에 태극기 앞에선 음악가 윤용하,
    이승만과 윤용하
      윤용하의 나라 사랑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사랑하고도 맥이 닿아있다.
    그의 딸 윤은희씨는 이 책에서 아버지 윤용하가 작곡한 ‘우리 대통령’이라는 노래를 어린 시절
    자랑스럽게 불렀다고 회고했다. ‘우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탄신을 맞아 헌정된 곡이다. 그리고 윤씨는 윤용하의 임종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했다.
      “1965년 7월 23일 오후 3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해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하와이에서 19일에 주검으로 귀국한 것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남방과 바지를 입으시고, 주인집 마당에 서서 힘겹게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으신 후 방으로 들어가 누우셨다. 그날 밤 11시 35분 아버지는 눈을 뜬 채 숨을 거두셨다.”
      윤용하는 왜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했을까? 
      첫째, 두 분은 모두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비록 나이 차이는 47살이나 나지만, 이승만은 윤용하의 할아버지뻘이다. 
      둘째, 이승만과 윤용하의 일본에 대한 혐오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윤용하의 일화는 이미 소개했으니. 이승만의 일화를 소개하기로 한다.
      1954년 7월 29일 오후 2시 30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만든 공동성명서 초안에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호적이고”라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이를 본 이승만 대통령은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회담이 시작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화두를 한일관계로 돌렸다. 이에 이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에 재임하는 동안, 일본과는 상종하지 않겠소”라는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 
      화가 난 아이젠하워는 회의장 옆방으로 가버렸다. 이 대통령은 우리말로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저런.”이라고 혀를 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아이젠하워가 다시 들어와 한일문제는 보류하고 다른 의제로 넘어가자고 하자, 이 대통령은 “내일 외교기자클럽에서 중요한 오찬연설이 있어서 준비를 위해 먼저 일어나겠소”라는 말과 함께 아예 회의장을 떠나버렸다. 
      셋째 공산 북한정권에 대한 혐오와 태극기 사랑이다. 윤용하는 광복 후 고향인 북한으로 갔다가 1946년 여름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왔다. 그리고 6.25전쟁 중에 어린이들에게 태극기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쳤던 인물이다. 한편 이승만은 6.25전쟁 발발 1개월 후, 외신기자들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을 정도로 태극기 사랑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 ▲ 1950년 7월 21일 외신기자들 앞에 태극기를 들고 선 이승만 대통령
    ▲ 1950년 7월 21일 외신기자들 앞에 태극기를 들고 선 이승만 대통령
      요컨대 윤용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반공예술인들이 경무대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을 죽는 날까지 소중하게 간직했을 만큼 이승만을 존경했다. 
  • ▲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문화예술인들. 윤용하씨는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문화예술인들. 윤용하씨는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천재음악가의 짧은 삶
      우리 성악계의 대부 고 오현명 교수는 자서전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2009년)에서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어린 시절 윤용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만주에서의 보통학교시절, 나는 방과 후 학교운동장에서 공차고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전학해 온 낯선 아이가 운동장 한쪽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학교 졸업 후 서로 소식을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5년쯤 후 합창단원 모집광고를 보고 갔더니, 곱슬머리 친구가 피아노 반주로 지원자들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바로 ‘조선합창단’의 단장 겸 지휘자 윤용하였다. 
      바로 다음날부터 약 20명이 합창연습에 참여했다. 단원들은 대부분 악보를 볼 줄 몰랐기 때문에 그저 윤용하가 불러주는 노래를 익혀서 부르는 실정이었다. 나는 그때 겨우 악보를 읽기 시작한 수준이었는데, 윤용하는 혼자서 작곡과 편곡, 지휘까지 맡아서 했으니 그의 음악적 재능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작곡가 윤용하! 그는 1965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는 그가 굶어 죽었다는 소문도 떠돈다. 그러나 그의 딸 윤은희씨는 <국민예술가 윤용하>에서 조금 불편했을 뿐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소문을 정정한다. 나아가 자신의 아픈 가족사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일 수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생명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이 얼마나 많으신가? 그 후손들 중에 아마도 이 땅에 발붙일 곳이 없이 아직도 떠도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아버지는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사후에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김정수(레오) 신부의 미사 강론 중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일생 중에 그분이 보시기에 제일 적당한 때에 데려가시니, 착한사람의 빠른 죽음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의 아버지!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던 시대 상황 아래에서 생명을 더 연장하셨던들 오히려 더 누추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 ▲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문화예술인들. 윤용하씨는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애국적인 너무도 애국적인 윤용하

      황인자 의원은 윤용하 선생이 ‘보리밭’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고인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며, 고인은 ‘국민가요’ 작곡가로 후세에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그가 작곡한 ‘국토아리랑’, ‘무궁화’, ‘민족의 노래’ 등 나라사랑의 노래들, ‘해병대가’ 등 군가, ‘나뭇잎배’, ‘노래는 즐겁다’ 등 수많은 동요를 열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천지> 1953년 9월호에 실린 ‘국민가요와 작곡가’라는 제목의 윤용하 글을 내세운다. 

      “국민가요는 예술작품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부르기 위한 곡이다. 따라서 작곡가들이 국민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국민가요 작곡에 임해서 그들이 좋은 작품을 즐겨 부르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작곡가들이 국민가요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도 않고 유행가 작곡계를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행가 작곡가들은 우리 작곡계의 어느 누구보다도 솔선해서 6·25사변 후부터 국민가요뿐 만이 아니라 군가도 작곡했다. 그리고 전쟁터를 누비면서 이를 보급함으로써 일반 국민이 국민가요를 노래하는데 기여했다. 이같이 유행가 작곡계에서는 전시 중에도 활약한 바 있으나, 우리 작곡계는 과연 어느 정도의 일을 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마치 한편으로는 너무도 안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상업화되어가는 오늘의 문화예술계도 질타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국민예술가 윤용하>를 추천했다. 그는 윤용하를 몰랐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이 책자가 출간되지 않았다면 광복 70주년의 국민적 기념에 큰 빈틈이 생길 뻔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아가 김 대표는 윤용하 선생의 예술에 대해서 가슴 뭉클한 찬사와 경의를 표하고, 고인의 짧은 삶을 깊이 애도했다. 

      “선생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명정(酩酊: 몹시 취함)은 운명과 시대가 거부한 천재성의 온전한 발휘를 찰나 속에서나마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었을까요. 선생의 음악적 천재성은 많은 가곡과 동요를 통해 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곡과 동요에는 선생께서 나라를 잃고 만주를 돌아다닌 후 해방, 전쟁, 피난의 북새통 속에서 키운, 민족과 어린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43세란 돌아가시기엔 너무나 아까운 나이입니다. 하지만 운명과 시대의 무게가 그토록 무거운 것이었다면, 43세도 오래 버틴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렇게 짧은 삶이 더 빛나는 것이 아닐는지요. 올해 광복절 때는 ‘광복절 노래’가 윤용하 선생이 작곡하신 곡임을 기억하며 더 크게 부르겠습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명동성당에서의 추모음악회

      2015년 9월 30일 저녁 8시, 명동성당에서 광복 70주년, 그리고 윤용하 타계 50주년을 계기로 그를 기리는 음악회가 개최된다. 행사는 윤용하의 생애를 크게 4개의 이야기로 나눠서 윤용하 역의 남자배우 등 3인의 화자로부터 듣는 음악회의 형식으로 진행되며, ‘보리밭’과 윤용하의 가곡들, 그리고 동요 ‘나뭇잎 배’도 연주된다고 한다. 

      윤용하의 팬들이나 우리 화단(畵壇)의 이중섭과 비교될 만한 인물이었던 천국의 윤용하가 고대하던 뉴스가 아닐까 한다. 바라건대 이번 기회에 윤용하의 나라 사랑의 마음도 현장의 관객들뿐만이 아니라, TV를 통해서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용하의 ‘노래는 즐겁다’를 비롯한 200여곡에 달하는 주옥같은 동요들 중에서 이선희가 부르는 ‘나뭇잎배’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8xPnBNWj9hI

  • ▲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문화예술인들. 윤용하씨는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