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류근일 칼럼]

    '입 건사'

     

  •  남북 사이에 다시 통일논쟁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초에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지 얼마 안 돼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런 ‘제안’을 해왔다.
    "남측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면 당국자들 자신부터 입 건사를 잘하고 언론매체들을 관계 개선의 분위기 조성에로 이끌어 조선반도 전역에 화해와 단합의 열풍이 일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화해와 단합을 하고 싶으면 남쪽 당국 자들이 먼저 북에 대한 말버릇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간 언론매체들도 5공 식 홍보조정이나 유신 식 언론 통제를 해서라도 마찬가지로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들이 말하는 ‘우리의 최고 존엄’ ‘존엄한 우리 체제’를 남쪽의 관민(官民)이 손톱만큼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당국의 이 한 마디는 “어떤 통일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한반도 가치(價値)투쟁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한반도 싸움의 본질은 바로 북의 ‘제안이 말한 그대로 ‘입조심 통일’이냐 ‘입 자유 통일’이냐, 언론통제 통일이냐 언론자유 통일이냐의 싸움이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 한반도냐 자유세상 한반도냐, 세습폭정(暴政) 한반도냐 민주공화 한반도냐의 싸움이란 이야기다.

      북의 ‘제안’이 말한 화해와 단합이란 결국 남쪽의 자유인들이 북쪽의 입조심 체제, 그리고 그런 체제가 지배할 ‘그들의 통일’을 비판하지 않거나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한 ‘비방금지’라는 것도 “피차 욕하지 말고 잘 지내자”는 다정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더러 정당한 가치투쟁에서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요구였다.

      과거 한 때는 우리 쪽에도 “유언비어의 날조, 유포’를 금 한다”는, 재갈 물린 시대가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이 긴급조치에 의거해 입조심을 강제하고 언론을 통제했다. 자기들에 거슬리는 기사는 모두 ‘유언비어’요 ‘비방’이었다. 일반 대중들도 경을 치지 않으려면 입 건사를 잘해야 했다. 민주화란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나? 하루를 살아도 말 좀 하고 살자”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민주화가 됐나 싶더니 이번엔 또 극좌독재가 눈알을 부라리며 “민간 언론매체도 우리를 비방하지 말라”고 겁박한다. 말이 좋아 “비방하지 말라”이지, 실은 “비판 하지 말라“다. 예컨대 ”요덕수용소의 인권말살을 중단하라“고 말하면 그건 비방인가 비판인가? 비판이다. 그런데 북은 ”우리 체제에 인권문제란 없다“고 우긴다. 그래서 요덕수용소를 비판하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비방이 된다는 것이다. 순 궤변이다. 이에 고개 끄덕여 주는 게 화합이요 단합인가?

       화합과 단합은 그렇게 몰(沒)가치적인 것이어선 안 된다. 화합과 단합은 북쪽의 반(反)인도, 반(反)인권 패악을 못 본체, 침묵해주는 것과 같은 말일 수 없다. 그것은 억압의 공범행위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안의 일부는 “북한인권? 북한인권법?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며 거품을 문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에 대해서는 왜 입 다물지 않고 비판했나?

      그때의 그들의 비판은 물론 정당했다. 그렇다면 이쪽의 권위주의 독재보다 몇 백배는 더 혹독한 북쪽 극좌독재의 억압을 비판하는 것은 몇 백배 더 정당할 것이다. 이 정당한 비판을 해선 안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공정, 이중 잣대, 따라서 사기(詐欺)다.

      북한이 온 사회의 수용소화(化) 등 무슨 행악을 해도 좋게 봐줘야지 비판하면 안 된다고 하는 역사인식은 흔히 ‘민족’이란 명분을 갖다 쓴다. 독립운동 당시 ‘민족’이란 말은 물론 성스러웠다. 그러나 오늘에 와 “민족의 이름으로 북한을 감싸기만 해야지 시비하면 안 된다. 그렇게 안한 ‘대한민국 66년’은 반(反)민족적이고 반(反)통일적이었다”고 하는 편파적 ‘민족’ 담론은, 그 역시 멀쩡한 사기다. 이런 식의 ‘민족’ 담론은, 같은 민족이라면서 연평도는 왜 때렸느냐 하는 데 대해선 말이 없다. 아니, 일부는 “맞을 짓을 했다”고까지 말한다.

      북의 ‘비방금지 제안’은 결국 북쪽의 전체주의와 남쪽의 편파적 ‘민족’ 담론이 써먹어 온 ‘남한 흔들기’의 상투적인 꼼수였다. 북한은 그러나 실패한 체제다. 남쪽의 편파적 ‘민족’ 담론도 실패한 쪽에 베팅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의 꼼수 약발은 현저히 떨어졌다. 그 대신 성공한 체제 대한민국의 자유인들은 이렇게 선언할 때를 만나고 있다. “응답하라, 쟁취하라, 2000년대 전반의 자유통일 한반도를.”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