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의견함"에는 의견이 없어야

    서영석 기자 /뉴포커스


    한국에서 대중이 이용하는 시설물에는 ‘고객 의견함’이 비치되어 있다. 공공장소나 심지어 택시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소비자 불만을 없애는 TV 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다. 이와 비슷한 제도는 북한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탈북자 고 영주(가명) 씨는 “북한의 국영상점에 가면 출입문 옆에 우편함처럼 생긴 나무상자가 붙어있는데 빨간 글씨로 ‘의견함’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상자만 있을 뿐 종이나 펜이 없어요. 호기심에 흔들어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요”라고 했다.

    또 다른 탈북자 최 지영(가명)씨는 “제가 어릴 때는 의견함이 아니라 ‘불만함’이라는 명칭을 썼었는데 어감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의견함’으로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지나가며 ‘대체 무엇 때문에 붙여놨는지 모르겠다며 한마디씩 하죠’라고 했다”

    의견함의 목적은 이용자로서 개선될 사항이나 불만사항을 운영자에게 알려주어 보다 나은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의견함에는 아무런 개인 의견이 없다. 의견이 없을수록 북한정권은 “인민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이용하는 훌륭한 시설 때문”이라고 선전한다. 그들이 의견함을 만든 이유는 이러한 선전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국민은 매장에 배치된 의견함 대신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의견을 제시한다.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억울하거나 잘못된 사실을 밝힐 수 있어서 힘없는 서민이라도 거대기업이나 공권력에 힘없이 당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대기업 직원의 횡포로 물질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당한 주민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일이 절대 생길 수 없다. 모든 시설물을 국가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만표현은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인터넷의 대중화에 민감한 이유는 주민이 외부정보를 얻기 위함을 막으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가상의 공간을 통해 주민들이 불만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