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世宗大王은

    國漢字混用하고자

    訓民正音을 만들었다


    金昌辰(草堂大 교수)     
      
     현행 <국어기본법> 제3조 제2항은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14조 제1항은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어기본법>은 한글만 우리 글자로 규정하고 漢字는 외국 글자와 똑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國語學的․國語史的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국어기본법>은 학문적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만든 惡法이다.
     
     우리는 世宗大王이 왜 訓民正音을 만들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訓民正音 창제 이전에도 우리 韓民族은 漢字를 쓰며 살았다. 그런데 왜 世宗大王은 다시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는가? 漢字로 漢字語를 적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한자는 ‘코, 얼굴, 어머니, 우리나라’ 같은 토박이말을 적을 수 없었다. 그래서 토박이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世宗大王은 토박이말을 적고자 訓民正音이라는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이다.
     
     世宗大王은 모든 韓國語를 訓民正音으로 적고자 새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기존의 문자인 漢字로는 적을 수 없었던 토박이말만을 적으려고 訓民正音을 만든 것이다. 世宗大王은 漢字를 補完해 줄 문자로서 訓民正音을 만든 것이다. 곧 世宗大王은 漢字語는 이미 써오던 그대로 漢字로 계속해서 적고, 다만 기존에 쓸 글자가 없었던 토박이말만 새로 만든 글자인 訓民正音으로 적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世宗大王은 한글전용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國漢字混用할 목적으로 訓民正音을 만들었다. 世宗大王이 애초부터 國漢字混用을 목적으로 했다는 사실은 訓民正音으로 간행한 책들에서 확인된다. 訓民正音을 최초로 써서 지은 ≪龍飛御天歌≫의 제1장은 “海東 六龍․이 ː샤 ː일ː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하시․니”와 같이 시작한다. 이처럼 世宗大王은 漢字語는 漢字로, 토박이말은 訓民正音으로 정확히 구분하여 적었다.
     
     그러면 訓民正音은 漢字語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당시 朝鮮의 漢字音은 中國 발음과 달랐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統一되지 않아 混亂스러웠다. 그래서 世宗大王은 소리글자인 訓民正音을 가지고 漢字音을 적어서 朝鮮의 한자음을 統一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世宗大王은 새로 만든 訓民正音을 토박이말에 대해서는 글자로서, 漢字語에 대해서는 發音記號로서 각기 쓰임을 달리하여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世宗大王은 한자어의 발음을 나타내고자 하면, 먼저 앞에 글자로서 漢字를 적고 그 뒤에 발음기호로서 訓民正音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釋譜詳節》은 “衆․生․ 너․비 濟․졔度․똥․․시․니 無뭉量․功德․득․이 그․지ː업․서” 식으로 적었다. 이는 國漢字竝用 표기이다.
     
     이러한 國漢字混用 및 國漢字竝用 표기는 朝鮮王朝 500년간 傳統으로 내려 왔다. 조선왕조가 간행한 책들 대부분은 國漢字混用 아니면 國漢字竝用을 원칙으로 하였지 한글전용한 글은 거의 없다. 각종 儒敎 經典 諺解本들과 佛經 諺解本들, ≪杜詩諺解≫ 등이 모두 그러하다. 이것이 한글전용이 國語史的으로 근거가 없는 일이라는 증거이다.
     
     이처럼 訓民正音이 창제된 이후 世宗大王을 비롯한 조선인들은 漢字와 訓民正音을 排他的 관계가 아닌 相補的 관계의 글자로 함께 써왔다. 그 까닭은 韓國語 語彙는 漢字語와 토박이말로 구성되어 있는데, 漢字語는 漢字로 적는 것이 적절하고, 토박이말은 訓民正音으로 적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곧 漢字語는 漢字로 적어야 意味를 나타난다. 그러므로 漢字語의 글자는 漢字이다. 漢字語를 한글로 적으면 단지 發音記號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漢字語는 글자인 漢字로 적는 것을 原則으로 해야지 發音記號인 한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 안 된다. 이것이 한글전용이 國語學的으로 옳지 않다는 근거이다.
     
     우리 韓民族은 이러한 국어학적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訓民正音이 만들어진 이후 1970년대까지 계속해서 國漢字混用 위주로 문자생활을 해왔다. 그것은 1970년대까지 모든 신문, 잡지, 출판물 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데도 <한글전용법>과 그것을 이은 <국어기본법>은 漢字가 우리 글자가 아니라고 제멋대로 규정하고 한자사용을 禁止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韓民族의 언어생활을 국가권력이 강제로 개입하여 망쳐버리는 아주 잘못된 일이다.
     
     우리 韓民族이 “半萬年 文化民族”이라는 矜持를 지니는 것은 漢字 덕분이다. 訓民正音 이전에 漢字라는 문자가 있었기에 우리 韓民族이 문화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訓民正音 이전에 만약에 漢字가 없었다면 우리 민족이 어떻게 고급문화를 창조하고 역사와 수많은 문헌을 기록하고 韓國語 語彙를 풍부하게 가꾸어올 수 있었다는 말인가? 韓民族의 歷史와 文化와 言語는 漢字를 빼놓고는 도저히 논할 수 없다. 우리 韓民族은 漢字文化圈 안에서 지난 2천 년간 漢字를 매개로 中國․日本 등과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를 창조해왔다. <국어기본법>은 그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全面 否定하고 歪曲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현재 <국어기본법>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王權時代인 朝鮮時代에도 문자사용은 개인의 自由에 속했다. 그런데 自由民主主義 국가인 大韓民國이 도대체 왜 法으로 국민의 문자사용을 規制하고 禁止하고 强要하는가? 法이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最後의 수단이다. 韓國 국민이 韓國語의 오랜 傳統을 지켜 漢字를 쓰는 일이 왜 사회 질서를 해치는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法으로 한자 사용을 禁止하는가? 國漢字混用과 한글전용 중 어떤 것이 옳은지를 떠나서 개인의 문자 표기는 국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우리 韓民族은 漢字를 2천년간, 한글을 6백년간 써왔다. 그러니 <국어기본법>은 漢字와 한글을 우리 韓民族의 두 글자로 인정하고, 그 두 글자를 국민이 사용하는 방법은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 맡겨두는 게 옳다. 朝鮮王朝 때 燕山君은 한글 사용을 禁止하여 暴君이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날 大韓民國 정부가 漢字 사용을 禁止하고 있는 일도 暴君 燕山君과 다를 바 없는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현재 大韓民國 정부는 訓民正音을 만든 世宗大王의 뜻을 正面으로 拒逆하여 아무 근거 없는 한글전용을 법으로 온 국민에게 强要하고 있다. <국어기본법>은 國語學的․國語史的 근거가 없는 惡法이니 즉각 改正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世宗大王이 가르쳐준 대로 國漢字混用의 오랜 傳統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다만 漢字를 죽어도 배워서 쓸 수 없는 사람들은 한글만 쓰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