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대화 제의에 대해 일단 거부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여지는 남기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6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대화 제의를 '기만' '술책' 등으로 평가하면서 거부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화를 반대하지 않지만 핵몽둥이를 휘둘러대는 상대와의 굴욕적인 협상탁에는 마주 앉을 수 없다"며 "대화는 자주권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시종일관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태도는 일단 미국의 대화 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앞으로 북한을 동등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면 대화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도 남한 정부의 대화제의에 대해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앞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마는지 하는 것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한의 대화제의에 대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반응이나 오늘 외무성 대변인 담화 모두 북한이 기싸움을 하려는 것"이라며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닌 만큼 내달 한미정상회담을 거쳐 대화국면으로 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이 각 기관의 발표나 매체 보도를 통해 말을 통한 기싸움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의제 등을 놓고 힘겨루기가 이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의 선(先) 비핵화 조치 요구를 "우리 당의 노선과 공화국의 법을 감히 무시하려 드는 오만무례하기 그지없는 적대행위"라고 지적했으며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에 대해 "세계여론을 오도하려는 기만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결국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대화의 프레임'을 만들어서 끌려가지 않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협상력을 극대화함으로써 본격적인 대화를 통해 최대한의 성과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무성의 발표는 존 케리 국무장관의 발언을 유의는 하겠지만, 현재 미국이 밝힌 것과 같은 방식의 대화는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대해 답을 가져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번 한반도 대립국면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서 의제설정 등에서 주도권을 쥐려고 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단순히 남북협력을 논의하는 남북 당국간 대화나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는 북미회담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등에 집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최후대결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미국과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자는 것"이라며 "남북관계도 개성공단 같은 사업 하나를 논의하기보다 근본적인 남북간의 관계를 변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