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 선진화포커스 제134호>
    글로벌 시대, 한국의 세계시민의식 점수?

    이 홍 종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의 사퇴를 보면서 중국의 첸쉐썬(錢學森)을 떠올렸다.
    첸쉐썬의 귀국 스토리는 극적이다. 첸은 1931년 자오퉁대학에 입학했다가 1934년 미국 유학을 떠난 뒤 매사추세츠공대 항공과, 항공이론학과, 항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탁월한 연구 성과로 주목받았다.

      첸이 국제적 인물로 부상한 것은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긴 싸움을 시작하면서부터다.
    1949년 첸은 "학문으로 조국에 봉사하겠다"며 800㎏에 달하는 서적과 노트를 갖고 중국 귀환을 시도했으나 미국 연방수사국에 의해 감금됐다. 미국 해군참모차장은 "그는 5개 사단의 위력과 맞먹는다. 총살할지언정 귀국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1955년 중국 정부는 미국과 협상을 벌여 한국전쟁 당시 생포한 미 조종사 11명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첸의 귀국길을 열었다. 이후 첸은 중국 미사일 개발에 획기적인 공을 세우고 중국 항공우주과학 발전의 기틀을 놓았다.

      미국에 있던 김종훈씨는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고 건너와 장관 내정자가 됐다가 좌절감만 안고 돌아갔다. 그는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며 통한했다.

    쇄국 심리가 한국 사회에 여전히 견고히 자리 잡고 있음을 그의 좌절이 확인해 주었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이민자인 그를 민감한 국가 정보 업무에 참여시켰던 것과 비교하게 된다.
    미국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는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외부인과 외부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과 포용력이야말로 진정한 제국의 요체"라고 했다.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과 미디어 포퓰리즘이 외국 인재 영입에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아이러니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했다면 히딩크 감독도 한국 축구 역사에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에서 이중 국적자 장관 임명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드물게 제대로 된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다. 브라질 상파울루에도 있는 차이나타운이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에는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에 화교가 원래 살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다. 1950~1960년대에는 서울·부산·인천 등 국내 주요 도시마다 크고 작은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거기에는 자유중국 국기를 게양한 화교 학교도 있었으니 국내 화교 인구가 상당한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 국가를 자랑하던 한국 사회는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외국인에 대한 외환거래규제법, 외국인토지소유금지령 등 한국 정부가 시행한 각종 외국인 차별 정책과 조치들은 화교 추방령과 다름없었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했다. 세계에서 7번째로 '20-50 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에 진입했고 IT와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 배경에는 수출 드라이브로 시작된 국제화 정책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즉 개방이 초래할 위험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기회 요소를 더 적극 수용한 결과이다.
    한국 경제 개방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가 증시에서 30%가 넘는 외국인 투자 비중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물질적으로 세계화 수준이 높지만 우리의 세계시민의식 점수는 매우 낮다.
    한 경제학자는 100점 만점에 15점을 주고 있다. 세계화를 내세우면서 귀국 자녀들은 ‘왕따’시키는 현실 등이 그 이유이다.

      시민의식 선진화는 세계시민의식으로 완성될 수 있다.
    세계시민의식은 ‘가치’ 측면에서는 세계 시민적 사고방식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체성이 필요하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동성과 변화지향적인 가치관을 함께 지녀야 하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세계시민의식을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국제협력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태도’ 측면에서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와 실천하는 자세, 그리고 개인의 영달보다는 인류공동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는 세계 민주시민 정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