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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 스스로와 김윤옥 여사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됐다.
이날 국무회의 의장이 이 대통령이었으니, 사실상 '셀프 수여'된 훈장인 셈이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훈장을 주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이런 광경은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1949년 최초의 무궁화대훈장을 받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후 반복된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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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대훈장 ⓒ 행정안전부
◆ 무궁화대훈장은 무엇?
무궁화대훈장은 국가원수급에게만 수여하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이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64호 '무궁화대훈장령'이 공포되면서 제정됐다.
제정 당시 무궁화대훈장은 단일 등급의 최고 훈장으로 대통령이 패용하며, 우방국 원수에게 수여할 수 있었다.
이후 1967년 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과 우방국 원수의 배우자도 수여 대상에 포함됐고, 1973년에 법이 다시 개정되면서 전직 우방국 원수와 그 배우자도 수여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까지 무궁화대훈장을 받은 사람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포함해 68명에 불과하다.
◆ 무궁화대훈장의 셀프 수여 역사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인 만큼 무궁화대훈장은 수여자(전수자)는 현직 대통령만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수여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이유다.
셀프 수여 외에는 사실상 후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방법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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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대훈장 수여자 ⓒ
# 1. 역대 대통령 모두 셀프 수여
그동안의 무궁화대훈장을 받은 우리나라 모든 역대 대통령은 셀프 수여를 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부터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 빠짐없이 모두 받았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서훈 취소를 결정할 때에도 무궁화대훈장만큼은 취소하지 못했다.
헌법을 고치지 않고는 취소조차 불가능한 훈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이 모두 셀프 수여를 할 때에도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도 이 훈장만큼은 특별한 반발 없이 관례로 인정해왔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공하는 과거 언론기록을 살펴봤을 때 최초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인 1998년 2월 25일 이희호 여사와 함께 무궁화대훈장을 받았을 때도 야당인 신한국당은 특별한 논평이나 성명조차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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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대훈장은 역대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다. 사진은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무궁화대훈장과 노벨평화상을 선두로 영구차가 식장으로 들어오는 모습. ⓒ 연합뉴스
# 2.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훈장을 받았던 관례를 처음 깬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임기 5년간의 공적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치하받는 의미로 퇴임과 함께 받겠다"며 수여를 미뤘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는 후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게 수여하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스스로에게 훈장을 주는 민망한 모양새를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을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2008년 1월28일 국무회의를 통해 결국 셀프 훈장 수여를 결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다.
정권교체기에 아이러니한 셀프 훈장 수여가 벌어지자 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를 비난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논평 전문이다.
노대통령 부부 꼭 함께 무궁화대훈장 받아야 하나?
국무회의가 오늘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키로 의결했다.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이나 영부인 또는 우방국가 원수나 영부인에게만 수여하는 명실공히 한국의 최고 훈장이다. 훈장 제작비만 개당 수천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물러나는 대통령이 이 훈장을 받는 것은 관례라고 치자. 그러나 대통령의 부인까지 함께 무궁화대훈장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규정에 의한다면 대통령의 부인도 무궁화대훈장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도 있듯이 남편인 대통령이 받으면 곧 함께 받는 의미가 되지 꼭 이렇게 부부가 따로 따로 하나씩 받고 가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더욱이 다음 정부가 들어선 후 국가 발전에 큰 공이 있다고 평가해서 주는 것도 아니다.
노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정부에서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함께 무궁화대훈장을 받기로 결정한 것은 아무래도 집안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아 국민의 존경과 관심을 받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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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타르를 공식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하마드 빈 칼리파 국왕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모습. ⓒ 연합뉴스
# 3.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도 비슷한 이유로 수여를 미뤄왔다.
이 대통령이 취임 전후 관례를 이유로 훈장 수여를 건의하는 주변 참모들에게 "지금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쳐오는데 한가롭게 훈장 받게 생겼냐"며 손사래를 쳤다는 것이 이유다.
2013년 2월12일.
하지만 이 대통령도 결국 퇴임 직전 스스로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셀프 훈장을 결정했다.
정부는 이날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영상 국무회의를 열어, 이 대통령 내외에게 퇴임에 즈음해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영예수여안을 심의-의결했다.
이 대통령 내외의 무궁화대훈장 수여는 의결됐지만, 김 총리와 정부부처 장·차관 등 104명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하는 안건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의 건의로 무산됐다.
다음 정부에서 수여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훈장 수여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인 민주당은 '마지막까지 서민의 피눈물을 빼나'는 강도 높은 비판성명을 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의 논평 전문이다.
금값만 1억짜리 ‘셀프 훈장’, 마지막까지 서민의 피눈물을 빼나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받는 무궁화대훈장의 제작비용은 금만 190돈으로 1인당 4천800만원 이상이 들어 두 부부의 훈장을 합치면 1억원 가까이가 소요된다고 한다.
측근들을 ‘셀프 사면’해주고 훈장까지 나눠줘 국민적 지탄을 받은 지가 엊그제인데 다시 ‘셀프 훈장’이라니 뻔뻔함을 겨루는 올림픽이 있으면 금메달 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이 잘했으면 ‘셀프 사면’을 하건, ‘셀프 훈장’을 받건 국민 누구도 시비 걸 생각은 없다.
오히려 퇴임식 날 대통령의 퇴임을 안타까워하는 구름같은 인파가 몰리고 전국 방방곡곡에 송덕비를 세우자는 운동이 벌어져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 박수를 치기는커녕 이명박 정권의 실정으로 통곡하고 있다.
서민경제는 몰락했고 노동자들은 목숨을 끊고 있으며 청년실업은 우리의 미래를 희망에서 절망으로 내몰고 있고 농민들은 농업을 포기해야 말지를 고민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셀프 사면’에 이어 ‘셀프 훈장’을 수여하면서 스스로 잘했다고 우기니 염치나 체면은 아예 내팽개친 것이 틀림없다.
꼭 마지막까지 ‘셀프 훈장’을 받으면서 서민의 피눈물을 빼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말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