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후보의 길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후보에게 단일화를 하자는 제의를 했다.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를 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자기 스스로가 ‘보통 정치인’임을 드러냈다.


  • 정말 순진한 사람들이 선거 때마다 속는 것이 있다. 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소박한 바람엔 함정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구조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라면 바람(願)이 아닌 바람(風)으로 끝나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바람에는 속임수가 끼어 있으니 유권자들은 조심해야 한다. 저 사람이 의원이 되면, 혹은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소망안에는, 저 국회의원을 이용해서 혹은 저 대통령을 이용해서 내가 이러저러한 이익을 보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순간, 그것은 덫이 되고 만다.

    노련하고 얄팍한 정치인은 바로 유권자들의 이 같은 심리를 이용한다. 내가 선출되면 너에게 혹은 네가 속한 집단에게 이러저러한 사탕을 주겠다, 이러저러한 자리를 주겠다, 혹은 이러저러한 이익이 돌아가겠다고 설득하면서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라고 포장을 한다.

    신기루를 쫓는 일부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풍선을 띄워놓고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이 같은 범주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안철수 후보측은 부인할 것이다. 정치개혁을 위해서 국민이 원해서 선거에 나선 것이라고. 하지만 안철수는 이제 스스로가 권력이라는 불을 향해 하늘에 수없이 떠오르다가 사라진 수백 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안철수의 애국심은 몇 점 짜리인가

    안철수의 기본 생각은 원대한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앞날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 충정이 깃든 심모원려(深謀遠慮)한 이상과 열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는 사회에 대한 자기 수준의 이해와 해석과 해답을 가지고 나온 한 명의 정치인일 뿐이다.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는 단일화의 의미는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단일화 △가치와 철학이 하나 되는 단일화 △미래를 바꾸는 단일화이다.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기득권 세력을 이기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국가를 생각하기 보다 눈앞에 선 경쟁자를 제치려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목적이 첫 번째 이유이다.

    그것이 자기 수준에서는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정도 깊이와 넓이에 국민이 설득될 수 있을까?

    단일화의 목적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를 넘으면 된다. 박근혜 후보 보다 더 애국심이 담겨있고, 박근혜 후보 보다 더 현실적인 꿈을 제시하면서 박근혜 후보 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임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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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기득권 세력을 이길 수 있는 단일화를 첫 번째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므로 여기서 안철수후보가 말하는 기득권 세력은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단일화의 이유로 내세운 논리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수천만명의 국민들을 기득권세력으로 만들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 부자라는 뜻인가, 모두 다 정규직이라는 뜻인가, 아파트를 한 채 씩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부패했다는 뜻인가?

    단일화를 주장하는 논리에는 벌써 그 자체에 엄청난 모순과 유치함이 내재돼 있다. 차라리 내가 박근혜후보를 넘어서겠다, 내가 2등인데 1등인 저 여학생보다 시험 점수를 더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게 더 공감이 간다. 왜 공부에 관심없는 보통 학생들을 충동질해서 1등짜리 여학생을 왕따시키려고 하는가? 왜 다수의 국민들을 기득권으로 몰아서 극복의 대상으로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비난하는가? 

    이런 사고 방식의 애국심에 몇 점을 줘야 할까?


    2. 안철수가 생각하는 국민은 누구인가

    1번과 연결된 질문과 해답이다. 안철수가 말하는 국민은 전체 국민을 뜻한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어떤 지도자이든지 전체 국민을 생각한다면,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국민을 동시에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보다 더 넓게 국민의 범위를 넓힌다면, 과거에 이 땅에 살다가 고인이 된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까지 끌어 안아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들의 아들과 딸들도 포함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와 같을 때, 진정으로 시간과 공간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가 말하는 국민은 기껏해야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일부분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안철수가 어떤 미사여구로 국민이 원하는 정치, 국민이 원하는 정치개혁이라고 말해도 이미 안철수의 머릿속에는 변할 수 없는 경계선이 있기 때문에 결국 분파주의의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3. 안철수는 이해찬이나 박지원을 넘을 수 있을까?

    그는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의 인적쇄신을 요구했다. 그가 원하는 민주당의 인적쇄신은 쉽게 말해 이해찬 의원과 박지원 의원의 퇴진을 말한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보면 안철수가 민주당에서 이해찬과 박지원이 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남의 의자를 빼앗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지금 이해찬과 박지원이 물러가야 할 대상으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올라오기까지는 나름대로 성적과 공적과 싸워온 투쟁의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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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은 얼굴이 새카맣고 빼빼 마르게 변할 만큼 빈민가에서 청춘을 보내면서 자기의 입지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박지원도 의리와 뚝심으로 충성과 복종으로 자신의 보스를 위해 목숨 바쳐 헌신했다. 안철수에게 젊은 이해찬이나 젊은 박지원을 능가할 만한 투쟁과 헌신의 흔적은 무엇이 있을까? 안철수는 두 사람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4. 그래도 안철수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서 안철수는 조그만 징검다리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첫 번째 현실적인 수순은 물론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이다. 단일화의 방법이 여론조사냐, 무슨 당내 선거냐 하는 방식은 시간도 부족할 뿐 더러, 감동이 적다고 생각한다.

    현시점에서 그나마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방안은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고 문재인에게 조건없이 양보하는 것이다. 아니면 문재인에게 조건없이 양보를 받는 것이다. 그것만이 단일화라는 분파주의의 길을 선택한 안철수 후보가 가장 크게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정치적인 꼼수이다. 물론 지난 번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니 두 번째로 깜짝쇼를 본 국민들에게 얼마나 약발이 먹힐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게 가장 낫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 안철수의 역할은 자기 주변에 포진한 그래도 젊은 피를 데리고 들어가 민주당을 변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해찬 박지원으로 대표되는 과거지향적인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사고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젊은 암세포를 청소해야 한다.

    안철수의 이런 역할은 민주당에게 대단히 건강한 효과를 줄 수 있다. 민주당이 전국정당으로 발돋음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의 양대 정당이 지역이익이나 대변하는 패거리 정치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그것으로 안철수의 존재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