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와 진보를 나누기 전에, 나는 상식파다?'

    안철수씨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던진 의미심장한 한 마디였다.

    이 한 마디가 상당히 많은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으로 보이고, 그의 모든 행동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많은 반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폭넓은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극도의 정치적 피로감에 쩔어있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본다.

    우리 정치가 언제부터 진보-보수의 갈등의 구도로 재편되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포스팅에서 불가능한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이러한 갈등구조가 명확하게 한국정치에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YS-DJ로 내려오는 일종의 "보스 정치"와 그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지역갈등 정치(호남과 영남)가 급격한 격랑에 떠밀려 진보-보수로 재편된 것은 바로 노무현의 등장과 당선에 의해 이뤄졌고, 그 이후 386 초선의원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과 같은 다소 급진적인 구호들을 정치 광장에 쏟아내면서 본격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갈등(보혁갈등)이 주된 관심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혁갈등이 지나치게 정치갈등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이것이 국민들의 정치적 피로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던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갈등 프레임 자체를 상당히 낡은 것처럼 인식하게 됐고, 이제 더 이상 "진보도 보수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상당히 많아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것의 제1차적 책임은 당연히 정치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진보-보수의 프레임으로 접근해선 안될 여러 정치적 사안들이나 민생 사안들을 너무 이념지향적으로 접근했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만들어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필자는 국민들의 이러한 진보-보수 갈등구조에 대한 거부감은 오히려 아직까지 진보와 보수의 정확한 갈등 양상이 제도화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이념지향적 갈등구조가 정치를 선진화시키는 원동력임을 마음 속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아직까지는 우리가 진보-보수의 담론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 안철수의 진보와 보수, 그리고 상식과 비상식

    안철수씨는 "진보와 보수 중 본인은 어디에 속하느냐?"라는 명확한 질문에 대해서 "저는 상식파입니다"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런 대답이 앞서 밝혔듯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확산되어 있는 정치적 피로감에 상당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일종의 틈새시장 전략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안철수씨의 정확한 사고 구조를 내가 감히 추론하는 것이 무리일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대답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1.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는 기준은 진보-보수의 담론구조와 관련이 없다.
    2. 즉, 무엇이 상식이냐를 판단하는 과정과 진보와 보수의 갈등 과정은 서로 별개다.

    아마도 이것이 안철수씨의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안철수씨의 이러한 정치관념에 대해서 상당한 위험성과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상식인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안철수씨는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기에 앞서 상식과 비상식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고. 본인 스스로를 상식파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는가?

    물론 우리는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면서 "적어도 이것만큼은 상식이다!" 라고 자신있게 단언할 수 있는 여러가지 명제들이 있다. 예컨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한다" "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착한일을 많이 해야 한다" 등과 같은 도덕률들에 대해서 그 누구도 쉽게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가 "당연하게" 상식으로 받아들일만한 도덕률들이 실제로 우리의 정치를 구성하는 수많은 주장과 담론들의 주요 내용들은 아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여러분! 부모님을 공경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는 주장을 내놓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옳다는 상식에서 또 다른 가지를 쳐나간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부모님이 치매에 걸릴 경우, 자식이 전부 부양하고 부담하는 것이 상식인지 아니면 국가가 어느 정도 보조금을 주어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상식인지... 혹은 모든 치매 환자에 대해서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관리하는 것이 상식인지를 따지는 제2차 판단 과정이 남아 있다.

    무엇이 상식인지를 따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만약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고 국민들이 이 범죄자의 실체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 한다고 가정해보자. "범죄자에게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는 상식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국민 100%가 동의하는 상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할 것이냐, 말 것이냐..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범죄자의 범행을 자세하게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나쁠까..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명제가 존재한다고 가정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나오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무엇이 상식인가"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안철수씨에게 과감하게 묻고 싶다.

    본인이 상식파라고 용기있게 선언하신다면, 과연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칙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국민 100%가 그 기준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 진보와 보수, 그것은 다름 아닌 "상식 찾기" 도구

    안철수씨가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될 "상식" 그것은 바로 진보와 보수라는 담론 구조 자체가 무엇이 현재의 상식이며, 무엇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이자 과제인지를 "찾아나가는" 일종의 도구라는 것이다. 앞서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만약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갈등이 유발된다면 우리는 진보-보수의 담론 구조 속에서 나름대로 팽팽한 균형점을 찾아낼 수 있다. 보수파는 공동체의 안위를 보다 높게 평가하는 측이므로 아무래도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하여 범죄예방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 진보파는 개인의 인권과 기본권이 상당히 소중하다는 주장을 내놓을 것이고 그에 따라서 범죄자 얼굴 공개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이러한 두 주장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게 되고 그것을 통해 국민들의 이견을 조정해나가는 치열한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확산될 우려가 있는 정치 갈등을 제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즉, 진보와 보수.. 좌우..와 같은 외관상 매우 피곤해보이고 소모적으로 보이는 정치담론 구조가 실상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선을 조금이나마 명확하게 만들어가는 '작업의 과정'에 해당되고, 정치인은 바로 그러한 과정에서 기능하는 일종의 Player이다. 대통령은 바로 그러한 수많은 플레이어 중에 대표선수 겪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정치담론 구조 전반을 주도해나가는 자리다.

    그렇다면 안철수씨는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진보입니다!" 혹은 "저는 보수입니다!"라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저는 조금이나마 어디어디에 가깝습니다"라고 대답했어야 옳다. 만약 그런 대답을 하기 아직 망설여지고 꺼린다면 질문 자체를 하지 말아달라고 했었어야 했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기에 "앞서" 저는 상식파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던 셈이다.

    안철수씨 개인이 "무엇이 상식인가"를 안다고 감히 선언해서는 안 된다. 상식이라는 것은 모두가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고, 정치인은 그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이다. 무엇이 상식인지, 진리인지, 지혜인지를 스스로 사색하고 고민하여 결국 찾아내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내놓고 실천하는 것은 과거 중세시대에서나 생각할법한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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