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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 의원ⓒ
1918년 혁명으로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부자가 없는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이루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구호를 내걸었다. 개인의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모든 재산을 공동 소유하며, 사회주의와 달리 생산 기반만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까지 공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1940년대에는 이런 공산주의가 동유럽은 물론 중국까지 휩쓸면서 미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바로 이 때 위스콘신 주 출신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 안에 공산주의자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297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미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미국은 공산주의를 과거 170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이뤄놓은 민주국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부정하고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통째로 뒤엎는, 그야말로 미국의 기반을 뒤흔드는 매국 행위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미 의회는 1947년 공산당의 반미행위를 처벌하는 의회반미활동위원회 (HUAC :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를 구성했다. 공산주의가 미국 안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당시 미국을 휩쓴 반공산주의 광풍을 매카시즘이라고 부른다. 이 반공산주의 광풍 속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심지어는 투옥까지 됐다. 미국인들은 1940년도에 미 공산당 (CPUSA) 당원이 거의 7만5천 명에 달한다는 보도에 공포에 휩싸였고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의 요구에 따라 3천356명이었던 FBI 특별수사단을 1952년에는 7천29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민들은 분별을 잃은 매카시즘에 피로를 느꼈고 대법원 역시 판결을 통해 국가안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점을 분명히 되풀이했다.
매카시즘은 미국민들에게 반성의 기회를 주면서 오늘날 사상적 자유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기회를 준 동기가 되었고, 결국 지금도 공산당은 정식 정당으로 등록되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들 공산당이 공화당의 롬니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표까지 했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매카시즘이 공헌한 바도 없지 않다는 역사적 견해도 있다. 처음으로 범국민적인 애국 정신을 불러 일으켰고, 공산주의가 미국에서 확산되는 것을 온 국민이 합심해서 미리 차단했고, 미국의 근본인 민주주의를 흔들려는 이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공산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오직 하나 남은 북한마저도 이제는 권력세습독재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공산주의의 모순이란 똑같이 일해서 평등한 분배를 받기 위해서는 감시가 필요하며, 감시하는 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더 높은 감시 지위가 필요하며, 결국 몇몇 우두머리에게만 권력이 집중돼 서민들은 평등은커녕 더 불평등하고 무서운 감시의 사회 속에서 식량배급이 끊어지면 굶어 죽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 실패한 제도를 추종하는 종북주의가 다시 기승하기 시작해서, 이제는 국회 안까지 침투해 애국가를 부정하는 노골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대한민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며…”라고 국민 앞에서 엄숙히 선서했다. 하지만 이들은 남한에서 호위호식하고 자유를 누리면서 항상 북한 편을 든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면 오직 대한민국에만 충성을 해야지, 두 개의 조국을 섬길 순 없다. 그게 싫으면 국회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을 종북자라고 부르면 '신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한다.
만일 이들이 미국에 와서 미국의 애국가를 부정하는 발언을 한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선 만장일치로 의원 자격을 박탈당할 테고,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빗발치는 비난 때문에 미국 안에서는 더 이상 살기가 어렵게 될 것이다.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미국에 살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는 평화스런 나라였으면 좋겠다. 애국가를 모독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국회의원을 바라보면서 몸이 떨렸다. 지금도 많은 해외교포들이 이역 만리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조국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내 눈에 선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