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 출신 都鍾煥 작품, 교과서에 계속 실릴 듯 
      
     선관위 "문제없다"... 都씨, 國會로 진출한 '빨치산 회갑연' 참여자
    金泌材    
      
    [1] 중앙선관위가 10일 도종환(都鍾煥, 전교조 출신 詩人) 민통당 의원의 작품(詩, 수필)을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 만으로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

  • 이에 따라 교육의 중립성 위해문제로 한국교육평가원(평가원)이 삭제를 권고했던 都 씨의 작품은 교과서에서 삭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가원은 최근 ‘출판사가 都 의원의 작품과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 관련 자료를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이 특정 정치인을 홍보함으로써 선거법에 위반되는지의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중앙선관위는 ‘출판사가 특정 정치인의 작품 등을 교과서에 게재하는 것만으로는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앞서 평가원은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대해 지난달 6일부터 20일까지 심의회를 열고 그 결과를 26일 통보했다. 평가원은 심의 결과, 都 씨의 詩-수필을 수록한 교과서 8종의 발행 출판사에 수정ㆍ보완 권고서를 보내 사실상 삭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이 9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사)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문인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일제히 “都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쓴 작품들에 대해 정치적 해석하는 것은 문제”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교과서에서 都 씨의 작품 삭제 문제와 관련,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한 한국작가회의의 前身은 민족문학작가회의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의 前身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였다.

    민예총 산하의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과거 국내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조직이다.

    줄곧 국보법 폐지를 요구해왔으며, 2005년 강정구 前동국대 교수가
    ‘6·25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을 때 姜씨를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2005년 7월20일~25일 기간 동안에는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문학작가대회를 평양, 백두산, 묘향산 등지에서 가졌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007년 12월 명칭을 현재의 한국작가회의로 변경한 뒤, 2009년 6월9일 소위 이명박 정부의 독재 회귀를 우려하는 문학인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단체는 2010년 3월 이후 현재까지 現정부를 겨냥, 소위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의 민통당 도종환 의원은 1989년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다가 해직·투옥된 전력이 있다. 그는 해직된 지 10년 만인 1998년 교사로 복직, 2004년까지 덕산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2011년 소위 야권 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에 참여했다.

    민통당 지도부 경선 때는 한명숙 前 대표의 멘토단에 일원이었다. 현재 <노무현재단> 이사인 都씨는 이번 총선에서 민통당 지역구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都씨는 2010년 12월12일자 인터넷 <한겨레>에 기고한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에서 자신의 투옥 전력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교과서 역시 그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과 군부독재의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진실을 왜곡 은폐하거나 불의와 거짓을 미화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고쳐 본 적이 없고 바르게 가르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친일을 한 문인, 지식인에 대해 사실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가 없었습니다. 독재자의 사진을 다른 독재자의 사진으로 바꾸어 걸어놓은 교장실에 앉아 교장은 교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강변했습니다. 저희야말로 진정으로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치중립이란 입장의 무입장을 강요받는 경우나 정권편의주의에 의해 이용당해온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한국 현대사가 '잘못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都씨는 1991년 7월22일 인민군 출신의 ‘빨치산' 김영태의 회갑 잔치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非전향 장기수 김영태는 김대중 정권시절 6.15선언에 따라 판문점을 거쳐 북송되어 2008년 북한에서 사망했다.

    북한은 2004년 김영태를 모델로 한 소설 <北으로 가는 길>을 펴내는 등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그를 '의지와 신념의 강자들'로 평가해왔다.

    김영태는 6.25전쟁당시 남부군 이현상(李鉉相) 사령관 호위부대 소속으로 李 사령관의 호위병 생활을 했다. 1971년 7월 17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대전교도소에서 출감했다가 사회안전법에 걸려 다시금 대전보호감호소에 수감됐다. 전향서를 쓰지 않아 13년이 지난 1989년 10월 청주보안감호를 나왔다.

    김영태의 회갑잔치에 참여했던 인물은 都 씨와 함께 전교조 충북지부장 고홍수, 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 민경희 교수(충북대 사회학과), 도시산업선교회 정진동 목사, 전농충북도연맹, 여성민우회, 민중당 청원지구당 관계자 등 50여명이었다.

    김영태는 당시 회갑잔치에서 '축가'와 '축시'를 선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참석자 가운데 어느 인물이 '축시'를 그에게 선물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都씨는 2009년 8월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에 한명숙-신영복(통혁당 사건 연루자), 문재인 노무현재단 전 이사장 등의 인사들과 함께 소위 시민주권 강좌, 역사-문화 강좌(강사: 도종환, 신영복), 언론강좌 등에 참여했다. <조갑제닷컴>

    김필재(金泌材)/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