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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바이킹 계(系)
노르만디 출신 정복왕 윌리엄이 영국 왕가(王家)의 선조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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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즉위 60주년을 맞은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 여왕(女王)의 王系圖(왕계도)를 보면 노르만디의 윌리엄 공(公)이 맨첨에 나온다. 2차대전 때 상륙작전으로 유명해진 노르만디는 프랑스 북쪽에 있는 땅이다. 강원도 면적에 인구는 약 340만 명이다.
9세기 중반, 덴마크 및 노르웨이에서 내려온 바이킹들이 이곳을 점령하였다. 프랑스 왕은 이들을 몰아낼 힘이 약해 이 지역을 公國(공국)으로 인정해주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하였다. 노르만디라는 말은 북쪽에서 내려온 이들의 땅이란 뜻이다.
1066년에 노르만디의 윌리엄公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쳐들어가 하스팅 결전(決戰)에서 이겨 윌리엄 정복왕이 되었다. 그가 윌리엄 1세이다. 윌리엄公의 영국 점령은 영국의 進路(진로)뿐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사건이다. 노르만디 사람들이 영국의 새로운 귀족층이 되었다. 이들은 先住民(선주민)인 앵글로-색슨족 귀족과 융합하여 오늘날 영국의 왕가(王家) 및 귀족들의 先祖(선조)가 된다.
노르만디 사람들이 쓰던 프랑스어가 영어(英語)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노르만디 사람들에 의하여 유럽 대륙의 로마-라틴 계(系) 문명이 영국에 많이 들어온다. 영국과 유럽을 이어준 것이다.
윌리엄 1세와 후손들은 고향인 노르만디의 領有權(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중엔 프랑스의 왕자리까지 탐하게 된다. 15세기 프랑스-영국 사이 백년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노르만디 사람들의 주 력(主力)은 바이킹이었지만 영국으로 쳐들어갔을 때는 同族(동족) 의식이 약했다. 한때는 영국 전체를 점령한 적이 있는 덴마크 바이킹 세력이 윌리엄 공(公)의 영국점령에 가장 거세게 저항하였다.
노르만디에 정착한 바이킹은 배를 잘 모는 전투의 귀신들이었다. 그들은 프로 戰士(전사)집단이었다. 소수의 정예 부대로 시실리와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 왕국을 건설, 2세기에 걸쳐 이곳을 유럽의 가장 잘 사는 곳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시리아 海岸(해안) 지방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17세기 프랑스는 북미(北美) 대륙의 식민지 개척에 나서는데 이때 맹활약을 한 이들도 노르만디 출신들이었다.해운(海運_)기술에 기반한 바이킹들의 개척, 모험정신은 지금도 계속된다. 남극과 북극 탐험의 지도자인 아문젠을 낳은 노르웨이는 인구가 500만 명밖에 안 되지만 세계 최강(最强)의 상선대를 보유한 海洋强國(해양강국)이다.
바이킹 사회는 평등하였다. 노예도, 귀족도 없었다. 모두가 동료였다. 지도자도 지배자가 아니라 동료중의 先任者(선임자)였다. 내각제 하의 수상을 장관중의 선임자(先任者)란 의미에서 Prime Minister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바이킹의 후손들이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복지제도를 정착시킨 것도 바이킹 사회의 전통적인 평등성과 관련 있다고 한다.우리가 북한의 세습을 규탄하는 것도 세습 자체의 後進性(후진성)보다는 그 세습이 불평등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윌리엄 왕(王) 이후 면면히 왕가(王家)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왕(王)들이 김일성 김정일처럼 신민(臣民)들을 굶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