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前총리 “천안함 북한소행이라면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추적” 주장군사 전문가들 “혹시 KNTDS 영상을 인공위성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추정
  • 민통당에서 한반도·동북아평화특별위원장을 맡았다는 이해찬 前총리가 지난 1일 재미있는 ‘주장’을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한반도는) 위성에서 관찰하는 모든 물체가 레이더로 디지털로 기록되고, 그 배가 언제 어디서부터 공격받아서 흘러갔는지 다 나오고, 그게 청와대에 있다. 그런 자료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해서 국민적 신뢰가 흐려진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나라 상공의 정지궤도에 미국이 가진 것보다 더 뛰어난 첩보위성이 있다고?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 때부터 주변국 몰래 NRO(美국가정찰국. 첩보위성 운용을 주도하며 美정보기관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나 NGA(美국가지형영상국. 첩보 위성 운용)라도 만들었다는 말인가.

  • ▲ 미국이 사용 중인 첩보위성 중 형체가 공개된 KH-12의 모습. 500km 상공에서 지상의 자동차 차종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 미국이 사용 중인 첩보위성 중 형체가 공개된 KH-12의 모습. 500km 상공에서 지상의 자동차 차종을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 봐도, 찾아봐도 우리나라가 NRO나 NGA같은 기구를 몰래 설립한 흔적은 없었다. 美NRO는 1961년 U-2 정찰기 등을 운용하던 CIA와 공군 간의 첩보업무를 조정하기 위해 생긴 기관이다. 1992년에야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이 곳은 연간 50억 달러의 ‘공식 예산’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NGA는 과거 NIMA(국가지도영상국)이 이름을 바꾼 첩보기관으로 첩보위성을 통해 원격감시를 하는 곳이다.

    이들 두 기관에서 사용하는 최신 첩보위성(KH-12와 KH-13)은 그 가격이 허블망원경 수준(가격 100억 달러 내외로 추정)으로 지상에 있는 1인치(2.54cm) 크기의 물체를 1개의 점(Pixel)로 인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 얼굴은 못 알아봐도 차종은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미국 첩보위성도 그 자리에 계속 떠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인다. 즉 지상 500km 상공의 타원형 궤도를 90분에 한 번 돌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한반도 위에 그대로 있으려면 지상 35,800km 가량 떨어진 정지궤도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前총리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약 3만6,000km 떨어진 우주에서 깜깜한 밤바다 아래에 숨은 잠수정을 추적하고 실시간으로 보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이미 영화 ‘스타트렉(23세기부터 24세기를 배경으로 한 미국 SF영화)’에 나오는 수준의 첩보위성을 독자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한 말이니 혹시 우리가 그런 위성을 가진게 사실일까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 ▲ 매년 성탄절마다 산타클로스 현재 위치 실시간 중계를 해주는 북미방공사령부(NORAD) 관제실 모습. 美공군시설로 산타클로스 추적은 우스개지만 웬만한 비행물체의 추적은 가능하다. 이 前총리는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 수준의 능력과 시설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 매년 성탄절마다 산타클로스 현재 위치 실시간 중계를 해주는 북미방공사령부(NORAD) 관제실 모습. 美공군시설로 산타클로스 추적은 우스개지만 웬만한 비행물체의 추적은 가능하다. 이 前총리는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 수준의 능력과 시설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 군사연구가들은 “이 前총리가 혹시 KNTDS를 보고 오해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KNTDS(Korean Naval Tactical Data System)’는 한국 해군의 전술데이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합참, 해군본부 등과 연결돼 우리 해군 함정의 위치, 적의 동향 등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KNTDS의 화면에 ‘뜨는’ 전투함의 위치는 해안의 감시체계와 해상 전투함, P-3C 초계기, 해상작전 헬기 등에서 보내는 신호를 반영하는 것이라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육․해․공․우주까지 데이터 통신을 통합한 미국이나 주변 강대국 수준에까지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前총리가 만약 지난 정부에서 이 시스템을 처음 보고선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온 ‘인공위성 추적 장면’을 떠올려 “청와대에서 실시간으로 북한 잠수정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면 그가 안보에 얼마나 무관심했나를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이 前총리가 말하는 것에는 못 미치지만 “인공위성이 적 잠수함의 입출항을 그나마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졌다는 美NRO와 NGA는 지금까지 300여 기의 첩보위성을 쏘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이 前총리 때 정부가 그 만큼 안보 예산-특히 대북정보 예산-을 증액시켰는가.

    이 前총리의 ‘주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만약 어뢰에 의해 공격받은 게 사실이라면 방어전선이 뚫렸다는 것이고, 해군작전사령부와 합참이 책임져야 하는데 앞뒤가 안 맞는 조치를 했다. 군 지휘체계를 점검하고 문책할 사람을 문책해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데 잠수함에 대해 조금만 알면 이게 얼마나 황당한 지 알 수 있다. 잠수함은 은밀성과 치명성 때문에 ‘전략 공격무기’로 분류된다. 때문에 해외수출도 쉬운 편이 아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주요 해군 강국은 상대방의 잠수함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지금도 바다 속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이 前총리의 ‘주장’처럼 잠수함을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세계 각국은 왜 잠수함 건조에 열을 올릴까. 북한은 왜 수십 척의 잠수함 전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란에 반잠수정과 잠수정을 거액에 팔았을까. 북한 잠수함의 몇 배 크기인 美오하이오급 잠수함이나 러시아 타이푼급 잠수함이 ‘그렇게 찾기 쉽다면’ ‘최종병기’라는 이름으로 경외의 대상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좌파 진영, 특히 지난 정권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이들이 선거철을 맞아 ‘안보’를 내세우는 걸 보면 역겹다. 이번 정부의 안보 의식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지만, 지난 정권보다는 그나마 낫다. 지난 정권이 추진했던 전작권 단독행사와 한미연합사 해체, ‘자칭 시민단체’를 국방정책 입안에 끌어들이려 했던 일, 한-미 간의 정보공유 관계 해체, 대북정보망 해체, 대북송금 등에 대해서부터 먼저 반성하는 게 순서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