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전차공격 명령 내린 만취 수경사령관

    -전 육군 헌병감 신윤희 장군의 ‘12.12’ 때 현장수기-

  • ▲ 신윤희 장군ⓒ
    ▲ 신윤희 장군ⓒ

     강산이 세 번 변해서야 ‘12.12’ 때 진실이 담겨있는 책 ‘12.12는 군사반란인가’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전 육군 헌병감을 역임한 예비역 육군 소장이요, ‘12.12’ 당시 수경사에 소재한 헌병단 부단장인 신윤희 중령의 手記(수기)에서 발췌,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인사들의 ‘12.12’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지만, 당시 정승화 참모총장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차로 청와대 쪽을 향해 발사하고, 반대편 장군과 영관급 고급장교들을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수경사령관을 직접 체포 연행한 신윤희 중령의 手記가 중심이 된 책은 처음이다. 晩時之歎(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 이 책의 지은이는 신윤희이고, ‘도서출판 be'에서 펴냈다. 정가는 12000원. 판매처 연락전화는 대불총(02 2265,0570)이다.

     주지하시다시피 ‘12.12’ 사건은, 당시 정보부장 金載圭(김재규)가 삽교천을 순시하고 돌아온 朴正熙대통령을 정보부가 관장하는 궁정동 안가에 모셔 만찬을 대접하면서 돌연 권총을 뽑아 차지철을 쏜뒤 박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발사하고, 확인 사살로 朴대통령의 頭部(두부)를 쏘아 시해한 사건이 원인이다.

     金載圭는 朴대통령을 시해하기 전에 용의주도하게 자신이 朴대통령에게 추천하여 참모총장에 오른 심복인 정승화 참모총장을 만찬장의 지근거리 옆 건물에서 당시 김정섭 정보부 차장보로 하여금 식사와 술을 대접하게 하고 있었다. 金載圭는 朴대통령을 시해한 직후, 하얀 와이셔츠에 朴대통령의 피가 튀어 흠뻑 묻은 채로 정승화에게 달려와 허겁지겁, 마치 “나의 상황은 끝났다”는 보고식 발언을 하고, “이제는 당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듯 정승화의 차를 타고 육본으로 달려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동안 ‘10.26’ 사건을 기술하는 저자들은 金載圭가 총을 뽑은 것은 차지철이 평소에 대선배인 金載圭에게 무례하게 처신했기에 우발적으로 총을 뽑은 것처럼 기술해왔다. 그러나 金載圭가 시해사건을 일으키기 전의 행동을 분석해보면, 장차 계엄사령관이 될 수 있는 정승화 장군을 육참총장직에 앉도록 공작 하는 등, 군사를 순발력 있게 출동시킬 수 있는 요직에 여타 심복 장군들을 포진 시킨 후에 시해사건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金載圭의 사전 음모설은 2012년, 1월 12일 낮, 필자가 新正(신정)인사와 舊正歲暮(구정세모)인사를 겸해 연희동 全斗煥 전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全대통령이 과거사를 술회하는 과정에서, 金載圭 정보부장이 全斗煥 보안사령관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자신을 朴대통령에게 국방장관이 될 수 있도록 추천해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심증이 굳어졌다. 그는 왜 국방장관을 하려 했을까? 군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이 3군을 통솔하는 국방장관이고, 그 심복 수하는 참모총장일 때, 시해사건을 일으키려는, 쿠데타 성공을 위한 음모였을까?

     金載圭의 국방장관 추천 요청에 全장군은 一言之下(일언지하) 과도한 출세욕에 대한 훈계조의 말만 했고, 자신은 추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金載圭는 실망 낙담하여 국방장관의 희망을 접고, 황급히 ‘12.12’사건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金載圭는 중대한 실수를 범했다. 朴대통령이 혜안으로 평소 아끼고 믿었던 全斗煥 장군을 보안사령관으로 발탁한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호랑이같은 장군이면서 군심을 얻고 있는 全斗煥 보안사령관이 자신들을 一網打盡(일망타진)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통찰하지 못한 채 대형 사고만 친 것이다. 石頭(석두)들의 행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12.12’ 때, 주역중의 주역은 정승화 당시 참모총장이요, 계엄사령관이다. 그러나 朴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대부분 장성과 고급장교, 초급장교, 하사관, 사병들까지를 포함한 軍心(군심)이 朴대통령 시해현장 지근거리에서 金載圭를 기다리면서 술잔을 기울인 정승화 총장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생 군문에서 보낸 총장이 연속 울리는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정총장은 피에 젖은 와이셔츠를 입고 달려온 金載圭의 요청대로 육본으로 달려가 지휘권을 잡아 무언가 하고 싶었겠지만, 대부분의 軍心은 “정총장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異口同聲(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첫째, 통찰력이 부족한 결과요, 둘째, 불운으로 정총장은 총장공관에서 어이없게 합수부원에 연행되는 나약함을 보였을 뿐이다.

     정총장과 오십보 백보 같은 통찰력이 부족한 장군이 또 있었다.
     정총장의 심복인 당시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이다. 그는 朴대통령 시해범을 엄정수사하여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합수부의 소신과는 전혀 다른 용기와 뱃장을 보였다. 그는 오직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위해 一片丹心(일편단심)하는 충성만을 보였다. 정승화의 줄에 서는 것이 군대내 진급은 물론 일신의 부귀영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가? 장태완 수경 사령관은 정승화 총장을 구출하기 위해 술취한 삼국지의 장비처럼 부하를 집합시켜 호령하고, 명령했다.

     합수부측이 정승화를 연행하기 전에 장 사령관을 만취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합수부측의 책략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 자리에는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 대령이 准將(준장)으로 진급했기에 진급 축하주를 마시자는 제안아래 “위하여”의 축배를 마셨는 데, 장태완 사령관에게 술잔이 집중되었다. 그가 만취했을 때, 그가 하늘같이 받드는 정총장은 서빙고 분실에서 대장의 군모를 벗기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취중에 정총장의 위기를 보고 받고서야 가까스로 일어나 정총장을 구출하기 위해 수경사로 달려갔다.

     신윤희 장군의 수기에 의하면, 술취한 장태완 사령관은 육본의 동패들인 장군들을 수경사에 불러놓고 회의를 벌이면서, 첫째, 최규하 대통령을 자신들의 편에 서도록 납치를 기획하고 명령했다. 둘째, 수경사 전 병력을 동원하여 정승화를 연행한 자들과 뜻을 함께하는 장군들이 있는 경복궁을 향해 전차포 등으로 발포하도록 명령했다. 셋째, 헌병단장 조홍은 물론, 헌병부단장 신윤희 중령까지 사살하도록 명령했다.

     張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는 장병은 없었다. 오히려 수경사 참모들은 헌병단장 부재시 헌병단을 총지휘하는 신윤희 부단장이 나서 사령관을 무장해제 시키고, 편안히 쉬게 해줄 것을 바라는 장병들이 지배적이라고 판단했다. 술에 만취된 사령관의 명령에 목숨을 거는 장병은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최규하 대통령을 왜 납치를 해야 하며, 청와대 쪽에 전차포와 일반포를 발사하라고 명령 하는 사령관이 제 정신인가?

     그 무렵, 직속 상관인 조홍 헌병단장으로부터 신윤희 중령에게 긴급 전통 명령이 도착했다. 직속 상관의 명령에 의해 신윤희 부단장은 헌병들을 인솔하여 술이 깨어가는 장태완 사령관을 위시하여 동조하는 육본 일부 장군들을 무장해제 시켰다. 그 와중에 하소곤 장군이 저항하다 헌병 대위의 총에 부상당했다. 신윤희 중령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내전으로 벌어질 수 있는 양군의 충돌은 사라졌다. 합수부측의 승리에는 신윤희 헌병 중령이 首勳甲(수훈갑)이다. 바꿔 말해, 장비같은 장태완 수경 사령관은 참모와 부하 장교들의 軍心離反(군심이반)으로 헌병에게 넘겨진 것이다.

     그 후 문민정부 때부터 金載圭를 위시한 그들을 무슨 烈士(열사), 義士(의사), 忠義將軍(충의장군) 처럼 둔갑시키고, 오히려 국가원수를 시해한 범죄자들을 단호히 법정에 세운 진짜 충의 장병들을 모욕하는 ‘드라마’ 등을 만들어 올바른 역사를 망치는 것은, 일부 종북 좌파들이 벌이는 조직적인 농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선거비 3,000억원을 받아 그 돈을 살포하여 대통령이 된 YS가 천하가 인정치 않고 비웃는, 遡及立法(소급입법)으로, ‘12.12’사건을 ‘5.18특별법’에 억지로 끼워 넣어 “역사 바로 세우기로 斷罪云云(단죄운운)” 하는 것은, 첫째, 반공 대통령들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정권에 아부하는 것이요, 둘째, 헌법을 짓밟는 행위요, 셋째, 대다수 국민들의 법상식에 가래침을 받는 추잡한 권력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12.12는 군사반란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12.12’는 반란이 아닌 국가원수 시해범과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이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신윤희 장군의 수기 뿐인가? 정호영 장군, 박희도 장군 외 많은 5공의 장군들이 世緣(세연)이 끝나기 전에 자전적 수기를 하루속히 발간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기를 고대갈망 한다. 부디 이 책을 통해 京鄕(경향)의 독자들이 ‘12,12’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감히 높이 추천하고, 기립박수로 축하하는 바이다.

    李法徹(bubchul@hotmail.com/대불총 지도법사)